이상한 일이었다.

늘 다니던 해안도로의 풍광을 더 운치 있게 만들어주던 섬은 둘이었다. 잔물결에 발을 담그고 물장난 하는 어린 남매처럼 조그만 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정다워 지나다니는 길에 한참을 바라보곤 했던 섬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평소와 너무 다른 그 모습에 나는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문득 섬광처럼 머리를 지나치는 단어. "아, 시간!"

평소에는 오전에 지나다니던 길을 그날따라 일정이 변경되어 오후에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니 썰물이 물러나 바다가 조금 제 비밀을 드러낸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길을 가며 똑같은 풍경을 보았는데 단지 시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그토록 달라져 보인다는 사실. 당황스러움 속에서 내 머릿속의 고정관념 하나가 여지없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만약 그 시간에 그 곳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섬이 둘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굳은 믿음은 단지 시간이라는 단 한 가지 조건이 달라진 상황에서 어이없이 사실이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우리들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때 곧잘 하는 말이다. 하긴 제 눈으로 보았다는데 당할 재간이 있는가. 모든 상황을 종식시키는 한 마디가 바로 이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옳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날 온 마음으로 느꼈다.

생활 속에서 이런 경험을 찾자면 수도 없을 것이다. 어제 보았던 것이 오늘 다르고, 작년에 보았던 것이 올해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는 내 기억에 깊이 박혀 있는 단상에 매달려 그것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 우기며 산다.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 우물에 앉아 하늘 보기다.

여름에 일주일만 사는 매미는 무성한 녹음이 나무의 전부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고, 가을엔 열매와 낙엽, 그리고 겨울엔 나목이 된다. 하루살이가 부화한 날에 비가 온다면 그의 일생 동안 세상은 눅눅하고 습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여전히 해가 뜨고 쾌청한 바람도 불고 있다.

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넓고 깊게 보는 것이고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섬은 밀물과 썰물 때문에 시간에 따라 둘도 되고 하나도 된다. 썰물이 많이 빠지는 날 갯벌은 넓어질 것이고 밀물이 밀려들면 금방 갯벌은 사라진다. 이것이 진실이다. 사람이 생각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더구나 그 생각이 제가 본 것에서 얻은 여지없는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세상은 수많은 설이 난무하고 갖가지 주장으로 어지럽기까지 하다. 이런 때 내 생각만 옳다고,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우기기 전에 '혹시 다른 시간에 반대 면에서 보았다면 어떨까'하고 한 번 쯤 본 것을 회의하는 마음은 꼭 필요하리라 본다.

하늘 아래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섬은 하나이기도 둘이기도 한 것이니까 말이다.

/윤은주(수필가·한국간행물윤리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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