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초등학교 앞

학교에서 동요가 흘러나온다. 곡이 바뀔 때마다 교문을 향하는 아이들 무리는 점점 늘어난다. 아이들이 오는 방향과 반대로 걷던 할아버지는 줄지어 오는 아이들을 보고 혼잣말처럼 툭 한마디 던진다.

"아이고 귀여운 것들."

멀리서 키 차이가 제법 나는 남학생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켰다가 풀렸다가 하며 걸어온다. 같은 신발, 같은 바지, 색만 다른 티셔츠를 입은 두 학생은 생김새까지 따지지 않아도 형제다. 동생이 형 뒤를 졸졸 따라붙다가 엉겨붙으면 형은 귀찮은 듯 털어낸다. 다시 달려들면 밀치기를 되풀이한다. 달라붙는 동생이 귀찮은지 결국 형은 뜀박질을 시작한다. 뒤늦게 출발한 동생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힘겹게 쫓아오는 동생을 형이 멀리서 웃으며 기다린다. 동생이 다가오자 작은 손으로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한 남학생이 요요를 만지작거린다. 옆에 있는 친구도, 뒤에 있는 친구도 같은 요요를 들고 있다. 아까부터 힘껏 아래로 뿌리는데 튕겨 올라와야 할 요요는 아래에서 더듬거린다. 줄이 풀렸다가 말리는 모양이 영 어설프다. 옆에 있는 친구가 시범을 보이듯 힘차게 요요를 뿌린다. 바닥 근처에서 빠르게 돌던 요요는 손목을 살짝 튕기자 위로 빨려들 듯이 올라온다. 옆에서 보기에도 던지는 요령이 분명히 다른데 서투른 친구는 그 차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듯하다. 그 차이를 알 때까지 능숙한 친구는 좀 더 거들먹거려도 될 듯하다.

근처에는 편의점이 있다. 바로 길을 건너야 할 아이들 몇몇이 눈앞에 있는 편의점을 지나치지 못한다. 손잡고 들어간 두 여학생은 편의점 안을 두루 살핀다. 들어갈 때처럼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들은 다른 손에 초코바를 들고 있다.

건널목에는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나와 아이들 안전을 살핀다. 건널목 양쪽에 선 할머니 두 분은 깃발을 들고 있다. 할아버지 한 분은 다홍색 주차봉을 들고 차량 흐름을 통제한다. 학교 앞 제한 속도는 시속 30㎞이지만 언뜻 봐도 이 규정을 지키는 차는 없다. 바쁜 출근길은 아이들 등굣길이기도 하다.

횡단보도 앞에 선 아이들. /이승환 기자

노란색 불이 들어오자 호루라기 소리가 분주해진다. 할아버지는 크게 팔을 휘두르며 차 진행을 막았다. 건널목 양쪽에 선 할머니들은 동시에 기를 내리며 운전자에게 멈출 것을 주문했다. 아이들이 출발하려는 순간 차 한 대가 건널목을 거칠게 가로지른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바빠 보이는 차는 건널목에서 20m도 떨어지지 않은 교차로 앞에서 멈춘다. 어르신들은 거친 운전이 영 못마땅하다. 한쪽 건널목에 서 있는 할머니는 옆에 서 있는 어른을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한다.

"얼마 전에도 사고가 안 났소. 요 근처에 아파트가 생기더니 차가 더 많이 다니는 거라. 조금만 천천히 가면 되는데 뭘 그렇게 빨리 가겠다고…. 저 차도 결국 요 앞에 안 섰나. 참 못 됐다."

건널목을 건너는 아이들이 인사를 건네자 잔뜩 찌푸렸던 어르신들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멀리서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가까이 지나가는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번 신호에 건너지 못한 아버지는 큰딸을 왼쪽에 작은딸을 오른쪽에 서게 하고 손을 잡으며 신호를 기다린다. 어르신들 깃발이 다시 자동차 진행을 멈출 때 아버지와 딸들은 길을 건넌다. 건널목 중간 정도를 지나자 두 딸은 손을 놓고 교문으로 뛰어간다. 종종걸음으로 뒤를 쫓던 아버지는 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두 딸은 교문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돌아보며 아버지에게 손을 흔든다. 표정없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아버지는 양손을 치켜들어 크게 흔든다. 큰딸은 다시 돌아서고 작은딸은 조그마한 손으로 하트를 한 번 만들고 나서 언니 뒤를 쫓는다. 학교 앞에서 처음 들었던 동요가 다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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