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성공비결은 긍정과 칭찬의 바이러스

한국만큼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곳도 드물다. 특히 식당은 너무 많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해 창원시내 식당을 조사해봤더니 일반음식점만 1만 3141개였고, 그 중에서도 마산합포구가 2949개 업소로 가장 많았다. 전체인구 62명당 음식점 1개꼴이고, 경제활동인구로 치면 28명당 1개꼴이었다. 당연히 장사가 안 돼 개업 후 1년 안에 묻을 닫는 비율도 가장 높았다.

이런 곳에서 단기간 안에 가장 잘 나가는 쇠고기 전문 식당으로 자리잡은 ‘삼가황토한우식당’이 있다. 2008년 개업한 후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창원 의창구에 넓은 가게를 하나 더 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마산여성회관 맞은편 ‘삼가황토한우식당’은 창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쇠고기 전문 식당 중 하나다. 식육점도 겸하고 있다. 창원 반지동에도 같은 상호의 식당이 있다. 둘 다 이민희(54) 대표와 아내 신외선(51) 씨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민희, 신외선 부부./김구연 기자

나는 지난해 11월 최규정 기자가 <경남도민일보>에 맛집으로 소개한 기사를 보고 이 집 단골이 되었다. ‘생고기’ 메뉴가 반가워서였다. 내가 아는 한 광주·전남에선 ‘생고기’, 대구에선 ‘뭉티기’로 불리는 이 메뉴를 경남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생으로 먹기 때문에 지방이 가장 적은 엉덩이 안쪽 살(우둔 또는 함박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경남에서도 이 부위를 가늘게 썰어 오이와 배, 양념 등을 버무린 육회로 먹기는 하지만, 생고기로 바로 내놓는 식당은 찾기 어렵다. 물론 여기도 육회 메뉴가 있는데, 똑같은 생고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내가 실제 삼가황토한우식당에서 가장 많이 먹은 건 숯불구이다. 구이만 먹어도 횟간과 천엽이 서비스로 나오는데다, 이 집의 메인은 역시 다양한 부위의 육질을 맛볼 수 있는 구이이기 때문이다.

/김구연 기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워낙 장사가 잘 돼 항상 손님이 붐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끄럽다. 방이 몇 칸 있긴 하지만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도떼기시장’ 같은 홀에서 먹을 수밖에 없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고기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마산 본점보다 넓고 깨끗한 창원점으로 가는 게 좋다. 물론 거기도 가급적 예약을 하는 게 낫다.

상대방 추켜세우기의 달인

이민희 씨./김구연 기자

이토록 장사 잘되는 식당을 두 개씩이나 운영하고 있는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국장님 같이 높으신 분이 저 같은 사람을 인터뷰는 무슨…. 그러지 마시고 오늘 그냥 저하고 편하게 술이나 한 잔 하입시다.”

이민희. 58년 개띠.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그는 인터뷰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별로 내세울만한 게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추켜세운다. 처음 이 식당을 출입할 땐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서너 번쯤 갔을 때였던가? 손님 중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가 마침 이민희 사장과도 아는 사이여서 인사를 나눴다. 그 때부터 내가 식당을 찾을 때마다 너무 깍듯이 대하는 바람에 민망하고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유심히 보니 다른 분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한결같았다. 비로소 그의 그런 태도가 가식이나 장삿속이 아니라 오랜 세월 체질로 굳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서 머슴을 둘이나 부렸던 비교적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이만기 선수를 키워낸 황경수 감독으로부터 씨름을 배웠다. 지금도 합기도와 배드민턴, MTB를 즐기는 운동광이다.

아내 신외선 씨./김구연 기자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김경선이라는 여선생님, 영어선생님이셨는데, 하루는 저하고 허종태라는 친구, 이렇게 딱 두 명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버지가 참 반듯하고 훌륭한 분일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시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촌로였을 뿐인데 선생님의 과분한 칭찬을 받고 보니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이 때 들은 칭찬이 이후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음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그 선생님 성함과 함께 칭찬받았던 친구까지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걸 봐도 그렇고, 본인 스스로도 남을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게 체질화해 있음을 봐도 그렇다.

“저희 아버지는 거러지(거지)가 와도 상을 차려 밥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소 없이는 농사를 못 지었는데, 우리 동네에 소 없는 집도 많았어요. 그 당시 우리 소는 동네 소였습니다. 소 없는 집에 다 빌려줬으니까요. 아버지는 배운 건 없지만 마음이…. 제가 아버지에게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철학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인연’ ‘상생’ ‘더불어 살기’ ‘좋은 사람’ 등이었다. 그는 승용차도 있고 쇠고기를 운반하는 냉동탑차도 있지만 시내에서 움직일 땐 택시를 탄다.

“얼마 전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님이 서울 손님들을 모시고 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 귀한 분들께 뭘 좀 대접해드릴까 생각하다가 어시장에 해산물을 사러가면서 택시를 탔지요. 기본요금(2200원)밖에 안 나오길래 기사님에게 4000원을 받으라며 1만 원 짜리를 드렸는데, 이 분이 잘못 들었는지 4000원만 거슬러주데요. 그래도 아무 말 안하고 받았지요. 상생해야죠.”

“저는 인연을 소중히 여깁니다. 한 번 알게 된 좋은 사람은 기쁜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합니다. 기쁜 일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나쁜 일은 나누면 절반이 되니까요. 저는 꽃을 많이 이용하는데, 세상에 꽃을 받아 기분 나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꽃집도 좋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좋고, 그 화환에 ‘삼가황토한우’가 적혀 있으니까 우리 식당 홍보가 되어서 좋고 일석삼조 아닙니까?”

학교 졸업 후 잠시 마산 코리아타코마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던 그는 스물아홉에 아내 신외선 씨와 결혼, 진동면 소재지에 빵집을 열었다. 상호는 ‘에펠베이커리’였는데,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철학이 장사에서 빛을 발했다.

“장사가 엄청 잘됐습니다. 지금은 진동우회도로가 나는 바람에 그쪽 상권이 많이 죽었는데, 그 때만 해도 아침에 빵을 만들면 포장도 하기 전에 다 팔려나갈 정도였으니까요. 재료상에서 ‘이번 달 마산에서 랭킹 1윕니다’ 하더라고요. 가게에서 파는 것도 그렇지만, 기업에 납품하는 빵이 더 많았는데, 매일 창원공단과 수출자유지역, 진사산업단지, 진북농공단지까지 빵을 배달했어요. 학교 행사에도 많이 납품했고요. 당시 사천시내에 빵집이 없어서 저에게 시켰겠습니까? 창원에 빵집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그만큼 저를 아껴주는 고마운 분들 덕분이죠.”

빵 가는 곳에 우유도 따라간다. 우유 소비가 많아지니 우유회사에서 대리점권을 주겠다는 제의도 올 정도였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설 명절 외에는 휴일도 없이 일했다. 너무 혹사당한 탓일까? 아내 신 씨가 덜컥 병이 났다.

“아내가 없으면 아무 일도 안 되는데, 이러다가 사람 죽이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딱 접었죠.”

가게를 넘기고 아내의 건강 회복에 전념했다. 어느 날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고깃집을 해보자는 거였다. “우리가 고깃집을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모르면 배우면 되지.” “아! 그렇네.”

쇠고기 하면 합천 삼가 한우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아내와 함께 합천 삼가면으로 찾아갔다. 거기에 밀집한 식당 중 상구황토한우라는 식당에 가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청했다. 월급 없는 종업원이었다. 그렇게 1년을 매일 출퇴근하며 청소와 주방 설거지부터 고기 등급과 부위 선별법, 고기 써는 법을 배웠다. 인근의 대가식당에서도 좀 배웠다.

이렇게 하여 2008년 개업한 식당이 삼가황토한우였다. 처음엔 창녕 도축장에서 소를 사왔지만 지금은 경북 고령 도축장에 전속 경매사를 두고 소를 마리째 사온다.

“창녕은 규모가 작아 제대로 수급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고령 도축장이었습니다. 마리당 1000만 원이 넘는 투 플러스 등급 소만 사옵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마리도 모자라지만, 초창기엔 한 마리를 사서 탑차에 싣고 오는데, 소 한 마리가 코끼리 한 마리처럼 여겨졌어요. 이걸 언제 다 파나…. 그런데, 지금은 소 한 마리가 염소 한 마리 같아요. 하하.”

내 몸에 좋은 걸 손님상에 내놓는다

소 한 마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역시 국거리다. 국밥용으로 소비하고, 식육점을 함께 운영하며 판매한다. 현재 마산점에 4명, 창원점에 6명의 종업원이 있는데, 월급을 책정하는 방식도 특이하다.
“면접을 볼 때 원하는 월급 액수를 물어봐요. 일하는 걸 보고 잘하면 더 줍니다. 그리고 월급 외에 손님에게 더 잘하라는 친절수당 10만 원도 더 줍니다. 가장 경력이 오래 된 실장님은 월급이 400만 원입니다.”

/김구연 기자

단시일 안에 가게를 하나 더 낼 정도로 성공한 비결을 물었다.

“고깃집은 역시 고기를 좋은 걸 써야죠. 우리는 지금 대통령이 와도 똑같은 고기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합천 삼가에서 배워왔지만, 도시지역에서 장사하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초창기엔 시행착오가 많았죠. 조금씩 변화시켜 가면서 자리를 잡았죠. 운동도 마찬가지지만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있나요. 안 해서 안 되는 거지.”

그는 “돈은 써야 모인다”고도 했다.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는 지역 로터리클럽을 통해 소년소녀가장 돕기, 국제봉사기금, 심장재단 등에 기부하는 돈도 상당한 듯 했다.

“제가 풍수지리 공부를 좀 했는데요. 심장재단에서 장기기증 약속을 하라는데, 그건 못하겠더라고요. 풍수를 하다 보니 사람이 죽으면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장기기증 대신 돈을 내기로 했지요. 하하.”

/김구연 기자

이야기를 나눌수록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참 재미없는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그는 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소주와 맥주는 원래 입에도 안 댄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직접 담근 ‘야관문(夜關門)’이라는 술만 먹는다. 그것도 하루에 한 두 잔이란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중 그는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소주를 이렇게 많이 마시네요. 국장님이 소주를 좋아하니…. 덕분에 제가 지금 취했나 봅니다.”

아하! 그랬구나 싶어 급히 소주를 물리고 야관문 한 병을 청했다.

야관문은 ‘밤의 빗장을 열어주는 약초’라는 뜻으로 ‘천연 비아그라’로 불린다. 그는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직접 탑차를 끌고 가 자신만이 아는 군락지에서 야관문을 채취해온다. 이걸 술로 담궈 손님에게 서비스로 내놓는다. 물론 남자 손님에게만 권한다. 야관문의 효능은 자신이 다니는 합기도 도장에서 만난 ‘약초박사’와 ‘약초도사’에게 배웠단다.

이민희 씨가 직접 담근 술./김구연 기자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는다

삶의 재미는 운동에서 찾는다. 어릴 땐 씨름, 그 이후엔 합기도와 배드민턴, 요즘은 MTB 자전거에 푹 빠져 있다. 최근엔 마산 산복도로 만날재 입구에서 꼭대기까지 그 가파른 곳을 한 번도 쉬지 않고 4회 왕복을 했다고 자랑했다. 보통사람은 걸어서 오르내리기도 힘든 곳이다. 10회 왕복까지 도전할 계획이다.

이런 운동은 식당 문을 닫은 뒤,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아침 9시에 다시 식당 문을 연다. 놀랄만한 체력이다. 그는 이게 야관문과 꾸준한 운동 덕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나 후회스러운 일은 없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런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산을 올라 봐도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는데…. 그런데 그런 일은 생각이 안 납니다. 저는 그냥 잊아뿝니다.(잊어버립니다.) 어려운 일, 후회스런 일을 왜 기억합니까? 좋은 일만 기억해도 머리 용량이 모자라는데. 안 좋은 일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실 식당 해가지곤 한계가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죠. 그럴만한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집사람이 여기에 만족하자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면 뭘 하고 싶을까?

“더 많은 사람과 나눠야죠. 그리고 65살이 되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전원생활을 하며 산에도 다니고 그렇게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내가 죽고 난 뒤 ‘그 친구 참 좋았는데’라고 기억해주면 되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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