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26) 밀양 호박소와 계곡

내린다던 비는 며칠의 된더위를 견딘 후에야 시원스레 쏟아진다. 마른 장마로 애를 태우더니 하늘은 갑작스레 비를 뿌린다.

수분을 머금지 않았던 더위는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이번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꿉꿉한' 여름이 시작될 태세다. 한껏 올라간 기온 탓에 쏟아지는 비에도 상쾌함을 찾기란 어렵다.

숲이 주는 청량함과 청류를 느끼기에 계곡만큼 좋은 곳이 있겠는가. 그래서 찾아간 곳은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로 334-1에 있는 호박소와 호박소 계곡.

호박소는 '영남알프스'라 일컫는 1189m의 재약산 자락과 1240m의 가지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 있는 가운데 해발 885m의 백운산 자락 계곡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계곡이 아무리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아도 접근이 어려우면 '그림의 떡'이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에 올라갈라치면 '철인 3종경기'를 앞두기라도 한 듯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억겁의 세월 동안 물에 씻겨 비경을 이룬 소. 그 모양이 절구의 호박같이 생겼다 하여 호박소라 불리는데 지척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 면에서 호박소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얼음골 종점 인근에 자리한 '호박소' . 입구에서 주차비를 내고 달리면 넓은 주차장이 펼쳐진다. 차를 대고 짙은 숲의 향기를 따라 초록의 숲에 들어가면 호박소 돌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목탁 소리와 스님의 염불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백운산 백연사 돌기둥도 호박소 돌기둥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백연사 옆으로 대나무 숲길과 조화를 이룬 그늘진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내 시원한 물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화강암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돌들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계곡이다.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는 보는 것만으로 눈이 시원하다. 속도가 붙은 물줄기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을 내며 거침없이 아래로 쏟아진다.

신부터 벗어 놓는다. 적당히 달궈진 돌들 위로 맨발을 대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맑디 맑은 물이 이내 유혹한다.

얼른 발부터 담가 보았다. 햇볕은 따가운데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화강암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돌 위로 흐르는 맑은 물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점심 때가 채 되지 않았는데 성질 급한 사람들은 벌써 계곡 속에 몸을 맡기고 물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계곡은 무릎 높이의 적당히 발만 담그기 좋은 깊이부터 어른 키 높이만큼 깊은 곳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낯선 아이들도 이내 밖으로 나올 줄 모른다. 간단히 요기할 것과 간식을 챙겨간다면 계곡을 오르내리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호박소계곡에는 청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계곡 옆으로 산책로로 잘 닦인 데크로드도 좋고, 반들반들한 돌들을 허리를 숙여 짚어가며 조심조심 5분 남짓 걷다 보면 절경이 펼쳐진다.

'시례 호박소(詩禮 臼淵)'.

억겁의 세월 동안 물에 씻겨 지름이 30m나 되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암반형 소(沼)를 이루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절구의 호박같이 생겼다고 하여 호박소 또는 구연(臼淵)이라고 한다. 이를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오고 더위는 족히 열 발짝은 뒷걸음질치며 달아난다.

명주실 한 타래가 들어갈 만큼 깊었다고 전해진다는데, 호박소 앞에는 '절대수영금지' 엄중한 경고문이 비경 앞에 걸음을 멈추게 한다. 수심이 6m가 넘고 수온이 극히 낮아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 물이 아래로 흐르며 조금은 순하게 변해 더할 나위 없는 피서지를 제공하는 이치다.

이런 신비스런 곳에 사연이 없을 리가 없다. 동국여지승람 구연 기우소(臼淵祈雨所)에 따르면, "세상에 전하기를 이곳에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으며,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가뭄에 범의 머리를 넣으면 물이 뿜어 나와서 곧 비가 되는데, 연못 속에 더러운 것이 들어오면 그것을 씻어 내고자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다"라고 전해 온다. 그 때문에 호박소는 오랜 가뭄이 계속될 때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소(祈雨所)였다고 한다.

후텁지근한 무더위에 지칠 때마다 절로 생각나게 할 짙은 녹음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맑은 물이 인상적인 호박소와 호박소계곡. 복잡한 생각이 중단되고, 지친 몸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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