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트위터에는 서울로 거처를 곧 옮긴다는 경상남도지사의 글이 올랐다. 아래에서부터 시작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이름없는 들꽃들이 행복한 평등의 시대를 열겠다는 글과 함께….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특정 당에 입당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뒤로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고, 도지사직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로하고 사퇴 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다. 도무지 입맛이 쓰다.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뉴턴에 의하면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고 했다. 원리적인 수준에서 보면 특정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땅에서 처음으로 야권통합의 이름으로 당선된 지사를 잃게 생겼다. 그리고 다시 얻기 어렵다는 자조가 남았다.

물론 같은 이치로, 세상을 바꾸려면 지금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작용이 없는데 반작용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보면 고립된 물리계에서 운동량이 생긴다면 그와 똑같은 크기의 운동량이 반대 방향으로도 생긴다. 그것이 우리가 우려하는 야권연합의 몰락이고, 처음으로 당선된 야권연합의 도지사를 잃는 것이다.

어떤 것이 참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개인에게는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는가. 신화를 만들기에도 적당하고 손해 볼 것이 적은 판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를 지지했던 경남의 유권자들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살다보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주는 만큼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보면 결국 문제는 반작용이다.

스스로 지적처럼 아직 내용적으로 미완인 지방자치를 완성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철학을 완성했어야 했다. 그것이 그를 지지했던 많은 경남 사람에 대한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인 것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리얼리즘이다. 이유는 리얼리티(Reality)의 문제 때문이다. 현실을 평가하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논쟁의 여지가 적어 보이는 이 현실의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보이는 시각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세잔은 형태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자연의 형태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제거했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단순화시켜서 진실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경남도지사직 인수위원회에 참가했던 죄로 성찰의 시간과 위로를 위한 단순한 환원이 이리도 어렵고 지난하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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