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휴가철을 맞이하여 오늘은 괜찮은 여행상품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한다. 상품명은 '뻗치기투어'. 우선은 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뻗치기'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기다리며 한없이 대기하는 것을 일컫는 언론계의 은어다. 정치적 이슈가 발생하거나 연예인 스캔들 등이 터지면, 기자들은 기삿거리가 될 만한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몇 시간 혹은 며칠씩 당사자의 집이나 사무실 앞에서 진을 친다.

진실은 책상머리나 인터넷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것이기에 뻗치기는 사실보도를 위한 중요한 취재 과정이다. 보통 신입기자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고, 기약 없는 뻗치기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기자다운 기자로 성장한다.

거제 와현고개 길섶에 놓인 전망 좋은 벤치. /경남도민일보DB

'뻗치기투어'는 이를 응용한 것이다.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다. 집 근처 쌈지공원, 산이나 계곡, 크고 작은 섬이나 심지어는 외국의 관광지도 나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몇 시간쯤 앉을 수 있는 벤치나 그와 유사한 구조물, 그리고 지루함을 달래줄 책 한 권과 허기를 채워줄 약간의 간식이면 족하다. 굳이 명상이니 참선이니 거창하게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고, 몸이 저절로 뒤틀리고, 이런저런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개의치 않으셔도 된다. 눈이 뜨이고 귀가 뚫리기 위한 일종의 '명현반응'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자연이 본래 가지고 있었으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혜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뻗치기투어의 진정한 완성이다.

최근 들어 공정여행, 힐링투어, 템플스테이 등 새로운 여행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이들 여행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정서는 '느림'이다. 여행은 일상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때문에 현실보다 더 빡빡하고 고단한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느림을 추구하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당연한 수순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Pierre Sansot)는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인간이 수동적으로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에 쫓겨 다니지 않는 지혜와 능력을 느림"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느림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시간이고, 인간과 자연이 지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뻗치기투어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느림에 익숙해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다.

뻗치기투어 경험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반딧불이의 빛나는 날갯짓을 목격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경주 감은사지에서 "너 오기를 천년을 기다렸다"는 감은사 탑의 목소를 들었다 하기도 하고, 새벽녘 주남저수지의 물안개를 찍으러 갔다가 결국엔 사진기를 내리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 때 보이는 것은 분명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쪼록 올 여름에는 일정에 쫓기고 교통체증에 시달리기보다는, 느려터진 휴가를 한번 즐겨 보실 것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박상현(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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