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상습 정체 구간

운전자가 창을 내린다. 창밖으로 길게 나온 손끝에는 방금 불을 붙인 담배가 있다. 손이 차 안팎을 들락거릴 때마다 운전석은 연기로 가득 찬다.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차 안에 가득 찬 연기를 밖으로 밀어낸다. 바로 밑으로 던진 꽁초를 뒷바퀴가 지나갈 때까지 한참 걸린다. 멀리 눈이 닿는 곳에 있는 차들도 별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뒤쪽 정체는 더 오래 이어질 듯하다.

정체 구간에서 차들은 잠시 평등해진다. 덩치가 크든 작든, 비싼 차든 아니든, 새것이든 말든 어떤 능력도 막힌 길에서는 두드러질 수 없다. 고작 자동차 맵시 정도가 눈에 띄는 차이일 텐데, 그 생김새라는 게 정체를 해결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오랜만에 전진을 한 차 뒤로 옆 차로에 있던 차가 밀고 들어온다. 뒤에서 잠시 방심한 운전자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경적 소리가 날카롭게 퍼진다. 입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는 험한 욕이 차 안에서만 맴돈다. 경적 소리는 전혀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 주변 운전자들 신경만 더욱 날카로워졌다.

고속도로에 심한 정체가 빚어지고 있다./경남도민일보DB

젊은 운전자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핸들에 두었던 양손은 모두 스마트폰 위에서 놀았다. 더딘 전진은 발에 힘만 줬다 빼도 교통 진행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않았다. 조금 집중했는지 앞차가 출발했는데도 따라붙지 않았다. 여지없이 뒤에서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이어진다. 틈을 준다는 것은 끼어들기를 허용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몇 분은 손해라는 게 뒤에 붙은 사람들 계산이다. 금세 앞차를 따라잡은 운전자는 다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이쪽 길과 저쪽 길이 만나는 지점 구석에는 소형 트럭이 서 있다. 트럭 뒤에는 밤과 밤을 담는 봉투와 밤을 굽는 기계가 있다. 밤을 파는 아저씨는 밤을 담은 봉투를 들고 차와 차 사이를 돌아다닌다. 닫혀 있는 창문을 두드리며 봉투를 내밀자 운전자는 손을 젓는다. 뒤에 창을 열어놓았던 운전자 몇 명이 창을 올리기 시작한다. 운전석 쪽 창을 계속 두드리며 밤을 파는 아저씨는 지나간다.

누군가에게는 짜증만 쌓이는 공간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삶을 꾸리는 현장이 된다. 그 자리는 곧 과일을 파는 자리가 될 것이다.

평소 겪는 정체보다 더 길고, 진행이 더욱 더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꽉 막혀 있는 차 틈을 견인차가 비집고 들어온다. 줄지어 늘어선 차들이 오른쪽 왼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만든 틈을 파고들어 온다. 그 뒤로 따라붙으려 했던 차들이 앞서 움직이는 차에 도로 막힌다. 뒤에 있어야 할 차를 먼저 지나가라고 허락하기에는 인내는 바닥났고 짜증은 쌓였다.

   
 

시간이 더 흐르자 견인차와는 박자가 다른 사이렌 소리가 또 멀리서 들린다. 길을 닫았던 차들이 다시 좌·우로 벌어지며 없던 길을 만든다. 이번에는 경찰차가 멀리서 다가온다. 경찰차 뒤를 다시 따라붙으려 했던 차들이 또 앞에 서 있던 차에 막힌다.

운전석 창문을 열어놓은 차가 많아졌다. 밖으로 담배를 쥔 손들이 또 들락날락한다. 차 안에서 빠져나오는 연기가 차 주변을 맴돌다가 사라진다. 전화를 거는 운전자도 많아졌다. 저마다 늘 있는 것 같은 일을 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설명해야만 한다. 이 또한 정체만큼 사람을 버겁게 만드는 일이다.

일반적인 정체는 앞으로 진행할수록 수월해진다. 교차로 신호 때문이라면 한 번 신호가 바뀔 때마다 전진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난다. 그 거리 변화에 따라 운전자는 정체를 벗어나는 시간을 셈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때문에 생긴 정체는 현장이 정리되기 전에는 더딘 흐름이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대형트럭 소형차 추돌사고'.

스마트폰에 뜨는 교통정보가 평범하지 않은 정체를 다시 설명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정체를 벗어난 차들이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제시간에 일상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불안이 가속을 부추긴다. 여기에 오랜 정체에 대한 보상심리까지 더해진다.

막 정체 구간을 벗어난 차들은 차로를 이리저리 옮기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목적지를 향한다. 그런 가속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이라 해야 고작 10분 안팎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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