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거리 모금하는 이인옥 씨

늦은 밤 마산 번화가에는 법복을 입고 모금을 하는 여성이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댓거리, 토요일에는 합성동에 나간다. 모금함에는 '배고픈 아이를 도와주세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가 모금을 한 지는 올해로 8년째다. 한 달에 25만 원 남짓한 돈이 모이는데 이 돈은 어려운 처지의 아동들을 위한 식재료비 등에 쓰인다. 더러는 아동센터, 복지시설 등에 기부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해외 어린이들을 위해 모금을 했는데 요즘은 불쌍한 우리나라 아동들을 위해 모금을 합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괜스레 시비를 걸고 욕을 하고 갈 때는 마음이 안 좋지요."

그는 이름이 이인옥(56)이며 법명은 정음행이다. 이 씨는 불교대학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했고 '정음행'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스님께서 내 목소리가 안 좋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고치자는 뜻에서 바른 목소리로 좋은 일을 행하라고 법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이 씨가 불교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도편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절에 간 이 씨는 큰 스님에게 평생 승복을 입고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스님은 11살 꼬마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이 일은 이 씨 평생을 좌우하게 됐다. 아직도 이 씨에게 스님 말씀은 풀리지 않는 화두다. 그러던 중 동생들 뒷바라지가 끝나고 38살 되던 해에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출가를 결심한다. 하지만, 1년간 수행생활을 끝으로 퇴속(승려가 다시 속인이 됨)하고 만다.

"수행자 생활이 저에게 맞지 않았는지 중도에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이 씨 본업은 이발사 보조다. 마산 자산동 한우아파트 입구 '새한우이용원'에서 10년째 손님 머리를 감기고 면도도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을 하고 있다. 마산에 와서 식당일도 해봤고 이발소를 경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상하게도 이 일(이발사 보조)을 가장 오랫동안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발소 곳곳에는 이 씨가 봉사활동을 해서 받은 표창장, 상장, 성철 스님 다비식 사진 등이 걸려있다.

이 씨는 모금을 하는 일 이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헌 옷을 모으고 손질해 어려운 아동들에게 입힌다. 이 씨 꿈은 작은 법당을 세워 버려지고 소외받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실제로 2년 전부터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을 데려다 키우고 있다.

"우리 아들이 공부도 썩 잘합니다. 얼마나 잘생겼는지 몰라요. 사춘기라서 혹시 상처받을까 봐 노심초사하지만 바르게 자라주고 있어서 기특합니다."

그는 가족사도 남다르다. 6남매 중 둘째딸인 이 씨는 실향민 딸로 태어났다. 이 씨 양친은 삼팔선 이북 강원도 통천에서 6·25전쟁을 만나 원주로 피란을 왔다.

"어려운 시절에 한겨울에 삼베옷을 입고 겨울을 났다는 어머니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는 현재 거제에서 교회 권사를 맡고 계십니다."

오빠는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선문대학교에서 일하기도 했다. 가족이 각각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다.

이 씨 집은 이용원과 불과 10m도 안 되는 곳에 있는 목욕탕 지하방이다. 그는 가난을 자랑이라도 하듯 어둡고 컴컴한 지하방에서 생활을 거리낌 없이 공개했다. 곰팡이가 슨 벽지와 어수선하게 걸려있는 연등이 이곳이 가정집인지 법당인지 헷갈리게 했다. 그는 하루 일과를 매일 새벽 5시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해 이용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 마무리 예불을 하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이곳 지하방은 겨울에 손발이 시릴 정도로 춥습니다. 저처럼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남을 위해 작은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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