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야기가 있는 맛집-'라멘 한 그릇에 사케 한잔, 어때요?'

일본라면은 ‘라멘’이다. 일본은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라멘이 있다. 그 중에서도 3대 라멘이라면 당연 돈코츠라멘, 미소라멘, 쇼유라멘이다. 이 3대 라멘을 일본 현지에 가지 않고 진주 시내에 있는 ‘일본라면 코멘샤’에서 손쉽게 그리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평일 한가한 저녁 시간 그곳에 잠시 들려, 따끈한 야끼차슈 한 접시에 잔술로 파는 사케나 일본 맥주를 곁들여 먹으면 그날 하루치 노동이 행복감으로 밀려올 것이다.

“시내 옛 명동빌딩 뒷골목을 따라가면 ‘라멘요정’이 하는 일본식 ‘라멘집’이 있는데 맛이 아주 좋고 젊은 주인도 맘에 들어요. 언제 같이 가요.”

‘라멘요정이 하는 라멘?’

내 기억엔 딱 한 번, 몇 해 전 후쿠오카 시내의 유서 깊은 라멘집에서 먹은 라멘이 떠올랐다. 솔직히 그때 먹은 라멘맛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돼지기름 둥둥 두른 돈코츠라멘은 내 혀와 입 안을 고문했던 것이다. 그때 같이 간 현지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끝까지 먹어야 했던 그 맛.

5월 초, 친구들이 날 잡아 불러줄 때까지를 못 기다리고 위치를 더듬어 혼자 찾아 가보았다.

20대 연인에서부터 4~50대까지 다양한 손님들

'코멘샤'를 운영중인 김재훈 씨./권영란 기자

진주시 대안동, 차없는 거리로 들어서기 전, 사람 두엇 간신히 지날 골목길이었다. 길목에 들어서니 고요했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속에서 현실이 아닌 환상세계로 들어서는 입구 같았다. 시내에 아직 이 골목길이 남아있었나 싶은 묘한 기분에 휩싸여 걸어드니 긴 골목 중간쯤에 유리문을 열어젖힌 가게가 있었다. 일본라면 ‘코멘샤’였다. 한자로는 ‘호면자’라 써여 있었다. ‘면을 좋아하는 사람’?

점심시간을 훌쩍 지났는데 식당 안은 붐볐다. 20대 연인에서부터 4~50대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식탁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나는 주문을 망설이고 있었다.

“저희 집이 처음이세요?”

두리번거리는 나를 향해 다행히도 주인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키가 크고 건장한 젊은 주인장의 말투는 의외로 소년의 순박한 억양을 지니고 있었다. 파마기의 긴 머리칼이 목덜미를 덮고 이마에 두른 띠와 앞치마 때문에 일본만화나 드라마에서 본 식당 주인을 연상케 했다. 주변에서 ‘라멘요정’이랬는데, 팅크벨족은 아니고 알라딘의 램프 지니족이었다.

“라멘을 잘 모르는데 무얼 먹는 게 좋을까요?”

“그럼 미소라멘보다 돈코츠라멘을 먼저 먹어보세요.”

./권영란 기자

주인장이 권하는 메뉴에 선선히 응했다. 그러고는 메뉴판을 살펴보니 차슈미니덮밥에 일본 맥주, 사케 잔술 등이 적혀있었다. 라멘종류 세 가지, 부메뉴 2가지, 간단한 술이 전부였다. 깔끔하고 단출한 가게 분위기만큼 메뉴도 단출했다. 비로소 실내를 휘 둘러보니 작은 탁자가 너댓 개, 요리를 하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 수 있게 주방을 ㄴ자로 둘러싼 바와 의자들이 놓여 있고 일본 현지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자잘한 소품들이 식당을 채우고 있었다.

“코멘샤가 한자로는 호면자인가요?”

“예. ‘면을 좋아하는 사람’, 호면자를 일본어로 ‘코멘샤’라 해요. 식당 앞에 조명등 같이 거린 게 제가 직접 제작한 거예요. 멋있죠?(하하하)”

모든 재료는 큰길 건너 중앙시장서 매일 구입

바의 한 쪽 귀퉁이 의자를 차지하고 주문한 라멘과 차슈미니덮밥을 기다리며 요리를 하는 주인 ‘라멘요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재훈(35) 씨. 그는 라멘 그릇을 데우고 소스를 붓는 등 손을 놀리지 않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잠시 후 주문한 라멘이 나왔다. 들여다보니 면 위에 차슈와 숙주나물, 목이버섯, 파, 반숙달걀 반쪽을 토핑한 후 마지막으로 살짝 깨를 뿌렸다.

./권영란 기자

“이거 어떻게 먹는 게 맛있게 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으려 하니 재훈 씨가 막는다.

“라멘은 국물을 먹기 전에 면을 먼저 먹는 게 좋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물부터 먹고 면을 먹는데 그러면 면 맛을 느끼기 전에 싱겁다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면을 먹고 국물을 떠먹으면 면과 국물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어요.”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좀 알아야 하는 구나는 생각을 얼핏 했다.

조금은 가늘다 싶은 면발은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국물은 느끼하지 않았다. 그리 탁하지도 않은 국물은 구수하고 담백했다.

./권영란 기자

“국물이 다른 데요. 텁텁하지도 않고 비위 약한 사람도 잘 먹을만치요. 어떻게 하는 거죠?”

“육수를 잘 내어야지요. 일본 현지라멘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는 육수를 내는 거지요. 일본의 유서깊다는, 몇 대째 한다는 라멘집은 우리가 가서 먹어보면 텁텁하고 비릿하고 솔직히 맛있다는 생각이 안 들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육수를 낼 때 돼지고기 피와 기름기를 신경쓰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가 않아요. 우리는 피와 기름기를 완전히 없애야 해요.”

“재훈 씨만의 방법이 있나요?”

“집에서 잔치할 때 수육 만들잖아요. 그것 만드는 법이랑 비슷해요. 토막낸 돼지 사골을 물에 담가 피를 뺀 후 30분 동안 끓이고 다시 찬물에 깨끗이 씻어요. 그리고는 다시 솥에 넣어 양파, 파, 생강 등 야채를 넣어 13~4시간을 끓이는 거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끓여야 하나요?”

“그 정도는 끓여야 해요. 24시간, 48시간을 끓인다고 광고하는 집도 있는데 그건 잘못 된 것 같아요. 소 사골은 2번, 3번 고아먹지만 돼지 사골은 오히려 많이 끓일수록 텁텁하고 군내가 나는 것 같아요.”
고명으로 얹은 차슈는 굉장히 고소하고 부드러웠고, 면과 함께 먹는 숙주나물은 입 안에서 씹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식감이 좋았다.

./권영란 기자

“식자재는 어디서 구입하나요?”

“큰 길 하나만 건너면 중앙시장이 있잖습니까. 그날그날 시장에서 구하지요. 모든 재료는 ‘진주 중앙시장 아줌마표 재료’들입니다. 우리 집 재료 하나만은 신선도 100%인데요.”

“혼자서 합니까? 식자재 구입에서부터 요리도 서빙도 모두…. 메뉴가 단출해서 다른 사람 손을 안 써도 될만한가 봐요?”

“무슨 말씀을….”

재훈 씨가 눈이 동그래지며 정색을 했다.

“그건 라멘을 모르고 하는 소리지요. 인스턴트 라면을 떠올리니 수월할 거라 여기는데, 실제 라멘집은 준비해야 할 일이 많고 엄청 힘들어요. 그래서 주방일은 남자가 해요. 사실 라멘은 남자들이 만들고 남자들이 먹는 ‘마초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어요. 묵직하고 깊은 맛이 그렇지요. 근데 여자 손님들이 맛있어 하고 많이 오네요.”

그러고 보니 라멘집은 물론이고 웬만한 식당의 요리사는 남자인 것 같았다. 한 가정의 부엌은 지금까지 여자가 대부분 차지했지만 대량 요리를 하는 식당은 요리사가 남자인 걸 보면 노동 강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미각이나 맛을 내는 재능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노동 강도를 감당하는 건 아무래도 그것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서 배운 게 아니라 호타루에서 배웠다

“언제부터 어떻게 라멘집을 하게 됐나요?”

재훈 씨는 전문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지만 관련업계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았다며 경비업체 직원으로 수 년 동안 일을 했다 한다. 그는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일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식당을 하셔서 그런지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했어요. 20살 이후엔 가끔 요리를 해서 형제들이나 친구들을 불러 같이 먹으며 놀고는 했지요. 아마추어 요리사 정도는 됐을 걸요. 뭔가 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식당을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권영란 기자

“식당도 여러 분야가 있잖아요? 굳이 라멘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라멘은 정통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지요. 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라멘은 완성 된다는 것보다 진화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만큼 만드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맛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가 라멘집을 생각하게 된 것은 ‘라멘이 굉장히 다양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라멘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라멘집을 하기 위해 전국의 맛있다는 라멘집은 다 다녀본 것 같아요. 아내와 딸을 데리고 같이 다녔지요. 대부분 하카타 스타일인데 솔직히 느끼함과 비릿함 때문에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아요. 우리 집은 굳이 얘기하자면 도쿄 스타일이지요. 도쿄 스타일은 전국에 몇 군데뿐 일거예요.”

“그럼 라멘을 일본 현지 가서 배웠어요?”

그러자 그는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특이하게도 그에게 라멘요리를 가르쳐 준 스승은 부산 사람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부산 광안리 호타루라는 가게에서 라멘을 먹다가 그 맛에 빠져버렸어요. 순식간에 꽂힌 거죠. 주인을 붙들고 가르쳐달라고 아예 바지가랑이를 잡았어요. 계속 안된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처자식을 데리고 전국을 돌고 있는 저를 믿어준 거지요. 그날부터 제가 ‘싸부님’으로 모시게 됐죠. 석 달 동안 광안리 근처에 방을 구해 가게 일을 도와주며 라멘을 배웠어요. 계속 요리를 해왔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요. 물론 ‘싸부님’한테 배운 걸 이제는 제 스타일로 바꾸었죠. 광안리 ‘호타루’와 우리 ‘코멘사’의 라멘은 맛이 다르지요.”

입맛 까다로운 어머니를 감동케하는 라멘

“장사는 잘 됩니까? 단골 손님이 많을 것 같은데….”

“우리 식구 먹고 살만큼 수입이 나오지요. 우린 검소합니다.(하하하) 보통 봉급자만큼은 법니다. 은행 빚 없고 아이들을 상전으로 키우진 않을 거니까, 이 정도면 되지요. 11월이면 셋째가 태어나는데 아내도 나도 편하게 삽니다.”

“주위에 은행도 몇 있고 상점들이 많아 직장인들이 많이 오지요?”

“처음에 여기 가게를 열 때는 저도 3~40대 직장인 손님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20대 여성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이 사진을 찍어 자기 블로그에도 올리고 그러데요.”

./권영란 기자

“메뉴가 너무 단출한 거 아닌가요? 3종류 뿐인데?”

“라멘 맛을 느끼기엔 사실 그 정도도 충분합니다. 깊은 맛을 가진 쇼유, 풍부한 맛을 내는 미소, 매우면서 맑은 맛을 내는 카라미소…. 근데 최근엔 저도 아이디어가 떠올라 지금 새로운 메뉴를 두어 개 개발 중이에요.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맛을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번에 한 번 왔다가 문이 닫혀있어 허탕을 친 적 있어요. 유리문에 ‘일본 출장갑니다’라 써여있던데 메뉴 개발 때문에 간 건가요?”

“딱히 그건 아니고 바람도 쐬고 라멘 맛도 볼 겸 간 거지요. 국회의원들 표현으로 말하면 ‘선진라멘 견학’이지요.(하하하) 지난번엔 힘들었어요. 한나절 동안 라멘집 몇 군데를 돌면서 일곱 그릇을 먹는데 나중엔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선진라멘 견학’, 그것 아무나 못해요.”

./권영란 기자

“근데 문 닫아놓고 가버리면 괜찮아요? 쉬는 날이 있나요?”

“평소엔 오전 11시 문 열고 오후 9시 되면 문 닫고 매주 화요일은 쉽니다. 저도 좀 여유를 갖고 또 가족과 밥 먹고 놀고 함께 있는 시간을 위해 야간업무 많던 회사 그만두고 이 가게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제대로 쉬어야지요. 월요일 저녁 한 주 동안의 장사 준비까지 하고나면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당구치며 맥주도 마시고…. 이 시간은 공식적으로 아내한테 허가받은 거지요. 화요일 하루는 내내 가족들과 뒹굴거리거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가거나 그러지요.”

재훈 씨, 11월이면 셋째 아이가 태어난다는 젊은 가장은 활달하고 순수했다. 자신이 만드는 라멘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처음 먹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라멘, 식당을 하는 입맛 까다로운 우리 어머니를 감동시킬 수 있는 라멘을 만들어야지요. 사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라멘일 거라는 거만함(?)이 제 자랑이에요. 딱 깨놓고 저희 집 라멘, 전국구예요(하하하).”

./권영란 기자
./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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