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경남의 맥-의령 치실 망깨다지기

의령군의 전통 민속놀이 ‘치실 망깨 다지기’는 자굴산 권역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주민들이 전통의 명맥을 잇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되살린 것이다.

‘치실’은 의령군 칠곡면의 옛 이름이고, 망깨 다지기는 땅을 다지기 위한 커다란 나무토막으로 일꾼들이 사방에 새끼줄을 달아 동시에 내리찍는 것을 말한다.

옛날 우리 선조가 새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다질 때나 소류지·저수지 등 못 막이를 해 못 둑의 속흙을 다질 때 또는 큰 말뚝을 박을 때 대개 큰 바윗돌이나 큰 통나무 토막에다 질긴 새끼줄을 매달고는 여러 사람의 일꾼들이 들었다 놓았다 하며 땅을 단단하게 다지게 되는 작업이다.

치실 망깨다지기가 시작된 정확한 연대 고증은 어려우나 신라 신문왕 5년(685년) 장함현의 현청이 있었던 치실마을 자굴산 밑 자굴티 못막이 때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 제작하고 모든 과정 고증하고 각색하고

치실 망께 다지기 재현 모습. /의령군 제공

전임수(60·사진) 치실망깨다지기 보존회장은 “지난 1999년 의병제전에서 시연한 이후로는 제대로 시연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명맥이 끊긴 지 10년. 그러한 치실 망깨 다지기가 최근 다시 재연된 데는 전임수 회장의 공로가 컸다. 전 회장은 치실 망깨 다지기가 지난 1998년 경상남도 예술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에도 행사 전체를 진두지휘했다. 그의 열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치실 망깨 다지기는 지난해 ‘2011 대장경 천년 세계 문화축전’ 행사장에서도 천 년 역사의 향기를 진하게 뿜어냈다. 전임수 보존회장이 이끄는 180여 명의 공연 팀은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 대장경축제 주행사장에서 40여 분간 국내외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굴티 못막이’를 원형 그대로 재연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행사에서 재연팀은 대부분 70대 의령군 칠곡 면민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천 년 전부터 지역에서 전승되어온 고된 노동의 지루함과 고통을 흥으로 이겨내는 치실 망깨다지기를 행사 당일 뜨거운 햇살 아래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신명나게 선보였다. 이날 소리는 앞소리꾼으로 불리는 김상복·이기연 부부가 맡았었다.

전 회장은 “TV에서 전국민속경연대회를 봤는데, 강원도 횡성의 회닫이가 상을 받았지. 회닫이는 관을 땅속에 내리고 회를 넣어 다지는 것인데, 그 정도면 망깨 다지기가 못할 것도 없다 싶어 재연을 시도하게 됐다”며 재연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 회장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마을에서는 망깨 다지기를 통해 못막이(둑)를 다졌고, 그때의 경험을 하나하나 되살려 고증하기 시작했단다.

전 회장은 1인용 매, 2∼3인용 들망깨, 4인용 줄망깨 등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직접 망깨를 제작했다. 전 회장이 재연해 낸 망깨 다지기는 총 5과장으로 구성돼 있다.

전임수 회장.

1과장은 어디에 못을 박을 것인지를 정하는 위치 선정, 2과장은 못 둑으로 망깨꾼들이 입장하는 과정, 3~4과장은 긴소리 과장과 짧은 소리과장, 새참 과장으로 구성되고, 마지막은 뒤풀이 과장이다. 막상 만들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모든 과정을 고증하고 각색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 망깨의 종류로는 생솔을 베어 만든 매, 2인 들망깨, 3인 들망깨, 4인 들망깨, 4인 줄망깨 등과 돌을 줄에 묶어 만든 돌망깨, 말목을 박을 때 사용하는 천근망깨 등이 있다. 천근망깨는 그 무게만도 무려 천근이 되므로 고증제작은 돼 있으나 운반 상의 어려움이 있어 선보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망깨소리는 이러한 고된 작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계속 반복되는 노동의 지루함이나 피로함을 덜고 신명을 돋우는 한편 일치된 동작으로 일의 능률을 도모하기 위해 노래(앞소리)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젊은 사람들에게 전승하는 길을 찾아야

어렵게 부활한 치실 망깨다지기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최근 열린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80여 명. 전국대회 출전 당시 184명이었으니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망깨 다지기는 사람이 적어도 100명은 넘어야 제대로 시연할 수 있다”며 “이번 재연에 87세 할머니가 최고령으로 참가했고, 나보다 어린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망깨 다지기 못지않게 망깨 소리도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망깨 다지기에서 중요한 역할인 선소리꾼에는 김상복·이기연 부부가 제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 이들을 대신해 선소리꾼 역할을 이어갈 사람이 나타날지 미지수여서 망깨 다지기 전승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

전 회장은 “이젠 젊은 사람들에게 전승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망깨 다지기를 재연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망깨 도구도 많이 훼손돼 돈을 들여서라도 제작을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치실 망깨다지기가 명맥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 회장은 오는 6월 1일 ‘의병의 날’ 행사 때 망깨 다지기 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기념일인 의병의 날에 ‘많은 물을 가두어서(어야라 망깨)/ 이들 저들 물을 대어(어야라 망깨)/ 풍년 농사가 될 것이라(어야라 망깨)’라는 망깨 소리와 함께 망깨 다지기가 시연되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치실 망께 다지기 재현 모습. /의령군 제공

요즘은 현대화와 기계화로 제방공사와 건물의 건축공사에서는 기계소음만 있을 뿐, 망깨나 망깨 다지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땀 흘리는 노동 뒤에 막걸리 한 사발과 노랫소리의 정취도 흘러가는 역사와 함께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남은 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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