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몽고정·임항선에 얽힌 추억

내 쌍둥이 언니들은 무학초등학교로 입학했다. 내가 살던 추산동 집과는 무학초등학교가 더 가까웠지만, 행정구역상 추산동 내 입학 예정자들은 성호초등학교에 가게 돼 있었는지 3년 뒤 나는 성호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요즘처럼 놀이터가 흔한 시절이 아니어서 방학 때면 무학초등학교로 그네를 곧잘 타러 다녔다. 겨울이면 그네 쇠줄이 무척 차가워 손이 시렸지만, 그네 타는 즐거움에 비하면 손 시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도 새벽에 일찍 가지 못하고 해가 뜬 다음에 갔다간 한참이나 줄을 서야 탈 수 있었다.

당시에도 요즘 '일진'이라 불리는 짱 먹은 남자 애들이 있었다. 이들은 줄을 서 있는 도중에 예쁜 여자애들이 있으면 "야! 너 먼저 타"라고 새치기를 하게도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못했다.

무학초등학교로 가는 중간에 몽고정이란 큰 우물이 있었고, 간장 냄새 풍기는 몽고간장 공장 커다란 문도 지나야 했다. 나는 그 문 앞을 지날 때마다 공장 안에서 풍기는 간장 냄새가 싫었다. 몽고정은 동네 빨래터이자 우물터이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출입금지 구역으로 막아버려 많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필자(왼쪽)와 언니들이 1969년 상남동 집 앞에서 찍은 사진. /정상희

어느 다른 우물보다 크고 깊은 몽고정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대체 얼마나 깊을까?" 상상도 많이 했다. 더불어 오다가다 더우면 우물물을 길어 마시며 목을 축이고 가기도 했었는데, 출입금지를 해 막아버려 목이 말라도 그냥 지나치려니 "도대체 왜 막은 거야!"라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마산의 문화재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멀쩡한 우물을 출입금지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 뒤쪽으로는 수도산이 있었다. 아마도 정수장 시설이 있어서 수도산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창동 노스탤지어 여행 때 회원현성지와 문신미술관 관람 후 산 아래로 내려오니 어릴 적 내가 놀던 수도산 입구가 나타났다.

회원현성지와 문신미술관 아래 수도산은 그 당시엔 정수장시설이 있었다. 산 위쪽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철망과 커다란 출입문이 있었고, 아래쪽으로는 가운데 계단이 있고 양쪽으로는 물이 내려가는 배수로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려 우리는 걸레나 양말 같은 걸 가지고 빨래놀이를 하고, 머리를 감기도 했다.

옆 철길(이번 여행에서 그 철길이 임항선이란 걸 알았다)에서 돌멩이를 주워다가 공기놀이를 하며 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옆 숲으로 가서 풀 이파리를 뜯어다가 소꿉놀이도 하며 놀았다.

하루는 공기놀이를 하다가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지 시커먼 증기 기관차가 바로 옆까지 오는 것도 모르고 놀다 기관사 아저씨께 붙들려 혼이 나기도 했다. 이번 창동 노스탤지어 여행에서 문신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창동-오동동 탐방과 미션수행 코스로 발길을 옮기며, 마침 그 계단과 철길을 지나게 되어 어찌나 반갑던지…….

필자의 추억 속 임항선은 어린시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를 하고 옆 숲에서 풀을 뜯어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다. /경남도민일보 DB

다시 와서 보니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리던 배수로는 말라서 흙만 보이고, 공기놀이를 하던 깨끗하고 넓은 시멘트바닥은 흙바닥으로 변해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조금 떨어져 있었다고 생각했던 철길은 공기놀이하던 시멘트 바닥 바로 옆이었다. 응? 이렇게 가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릴 때는 크고 넓고 멀리 보이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 보니, 조그맣고 가깝게 보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흙과 풀들이 나 있는 철길을 걸으며 또다시 그 시절만큼, 온전히 즐거운 날이 또 있을까 생각하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추산동 앞뒤로 철길이 있어서 1년에 한 번쯤은 기차 사고가 났던 것 같다. 기차사고가 났다 하면 온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경을 갔고, 그런 때 우리 언니들은 절대 빠지지 않고 구경을 갔지만 원래 겁이 많은 나는 절대 가지 않았다.

/정상희(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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