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자신을 조절하고 꿈도 키우고 있어요"

“양주여고 뿌리가 정보과학고잖아요. 그러다 보니 진학반 4반, 취업반 5반으로 돼 있는 지금도 아이들이 처음부터 주눅들어 있거나 학교에 정을 못 붙이는 경우가 많았지요. 관악연주가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정을 주고 나아가 특기도 길러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은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양산 양주여고(교장 배선웅) 관악부 지도를 맡고 있는 김영일(31) 교사. 98년 10월 이 학교에 처음 와 지난해부터 관악부 창단을 준비했다.
시작은 특기적성 교육. 악기라는 게 원래 비싼 물건이어서 처음에는 좋은 악기를 쓰지 못하고 ‘피페’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클라리넷 비슷한 악기를 골라 학생 10여 명에게 가르쳤다.
“게다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도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게 현실이잖아요. 제대로 된 교육이라 할 수는 없는 현실이죠. 양산은 특히 음악 쪽으로는 관심도 떨어지고 공연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요, 나중에 졸업하고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바탕은 갖춰야 하겠다는 생각이죠.”
그러다가 지난해 8월부터 본격 창단에 나섰다. 동창회의 지원을 얻어 플루트와 클라리넷.색소폰.호른.트럼펫 등 19가지 악기 1000만원 어치를 사들였다. 학교 당국으로부터도 운영비 지원을 받아 날마다 연습에 열중했다. 고3(당시 고2) 6명에다 고2(당시 고1) 5명을 더하고 올해는 1학년 12명을 오디션을 거쳐 뽑기도 했다. 또 마산시향의 단원 5~6명에게 도움을 부탁해 악기별로 무료 교습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여름방학 때는 강원도 춘천의 한 고교로 1주일 동안 ‘전지 훈련’을 떠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오후 6시부터는 동료 학생과 학부모.선생님 등 700여 명이 몰려 2층 객석까지 메운 가운데 학교 다목적관에서 창단 연주회를 치러내기까지 했다. 11월 7일 수능 시험을 마치고부터는 창단 연주회를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다. 학생들 실력은 어떨까.
“모두 처음 악기를 만져보는 애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1년 연습한 것 치고는 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도해 주시는 마산시향 선생님들 말씀도 한결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모르던 이들 가운데 3학년 1명과 2학년 2명이 대학에 가서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꿈꿀 만큼 달라졌다. 아마 내년이 되면 지금 1학년 가운데도 음악 전공을 생각하는 이가 틀림없이 생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밝고 활달해졌어요. 늦게 마쳐 걱정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학부모들 반응도 아주 좋고요.”
실제로 만나본 임아름(2년).권은화(3년) 악장 등 23명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맑았으며 관악부에 커다란 애정을 품고 있었다.
“학교 오기 싫어도 관악부 때문에 오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옛날에는 교실에만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선후배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좋습니다.” “학교 규정을 어기고 싶을 때도 간혹 있는데 관악부 명예에 먹칠을 할까봐 참습니다.” “아주 슬프거나 할 때는 예전에는 감정 처리를 잘 못했는데 관악을 하고부터는 음악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됐어요.”
아직도 입시 위주로 움직이는, 수능 점수에 모든 구성원이 일희일비하는 고등학교 교육현장. 특기적성교육은 말뿐이고 자율이란 이름으로 보충수업이 강요되는 현실에서 양주여고에서는 학생과 선생님이 믿음 속에서 특기를 가꾸며 삶의 활기를 키워가는, 중요하지만 아직은 조그만 변화가 싹트고 있었다. “창단도 했으니만큼 대회에 나가 인정도 받고 싶고 친구나 시민들한테 좋은 음악 들려주고도 싶어요.” “돈이 없어 질이 낮은 악기를 샀는데 학교 지원이 크게 늘어나 좋은 악기를 다룰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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