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타고 가는 통영 강구안 일대 밤마실

같은 장소라 해도 시간이 다르면 그 느낌 또한 달라지게 마련이다. 여름철이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산자락이나 바닷가라면 한낮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무덥거나 선선한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낮에는 불지 않던 바람이 저녁이나 밤중에는 부르지 않아도 달려오고 숲 속 나무와 바닷물이 주는 시원함도 제대로 끼쳐온다. 이런 까닭으로 아름다운 '바다의 땅'으로 이름높은 통영의 항구와 언덕으로 '밤마실'을 나온 것이다.

오후 6시 30분이 지난 강구항 일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들의 느긋함과 늦은 장을 보는 아낙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함께 어우러져 들어온다.

이제는 강구항 명물이 된 톱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하루 일을 마치고 끌고 온 손수레에다 차곡차곡 짐을 싣고, 마지막으로 좌판으로 쓰는 평상을 한쪽으로 세워두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갈무리한다. 손수레를 끌고서 할아버지는 또 다른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도시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통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통영에는 통제영이 있고 한산도도 있다. 강구항에는 관광용으로 만들어 놓은 거북선과 판옥선이 떠 있다. 저녁 6시 이전이면 들어가 거북선 판옥선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아이들이 즐거워할 것 같다. 가족이 함께 나서도 이곳저곳 두루 누릴 곳이 많은 항인 것이다.

조금씩 어둠이 내리는 강구항을 따라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롭다. 자리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 앞으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품에 안긴 동생과 함께 어린아이가 지나간다.

'추리닝'을 입은 채 슬리퍼를 끌며 지나가는 중년, 밤 데이트라도 있는지 정장 차림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지나가는 젊은 여자의 모습도 보인다.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웃으며 걷는 모습 속에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위로 눈길을 던지는 노인도 섞여 있다.

어슬렁거리며 사람 구경 시장 구경을 하다 주변에 널려 있는 물건들과 가게 간판에 한눈을 팔며 동피랑 마을로 올라갔다. 이미 전국에 벽화로 이름 나 있는 마을이다. 여기 벽화는 얼핏 보기에도 허투루 그려진 녀석은 없고 또 마을이랑 또는 사람이랑 잘 붙어 있다.

들머리 담벼락에는 날개 두 개가 그려져 있는데 사람이 그 사이에 들어가 서면 날개 달린 천사가 된다. 동피랑을 찾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날개 가운데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동피랑 속의 명소라 할 수 있겠다.

조그맣게 짐승 발자국이 찍힌 콘크리트 바닥에 그려진 고양이가 여러 벽화 속에서 유독 눈에 담긴다. 일부러 고양이를 풀어서 발자국을 남기게 하고 그 위에다 그려넣은 고양이 그림이, 동피랑의 벽화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통영이 내세우는 음악가 윤이상도 나와 있다. 다양한 표정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를 따라하는 젊은이와 그것을 찍는 모양이 한꺼번에 다 귀엽다. 옆에 붙어 있는 창문을 통해서는 할머니가 물잔을 든 채 내려다보는 표정이 재미있다. 이 할머니는 동피랑 할매로 유명하다.

벽화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에서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들어가 보면 사방 바람벽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나랑 동생이랑 언니랑 오빠랑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그려져 있다.

알맞추 어둑어둑해지자 다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남망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들머리가 가풀막으로 시작되는 길이지만 느기적느기적 걸으면 전혀 힘들지도 않고 땀도 나지 않는다.

조금 오르면 오른편 커다란 나무 아래 사람들이 앉아서 노닐 수 있는 자리가 여럿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통영 부두와 앞바다를 바라보며 일행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바다에는 둘레 건물에서 밝혀 놓은 불빛들이 스르르 내려앉아 가볍게 출렁인다.

마실 나온 사람들은 이런 풍경들을 여유롭게 눈에 담는다. 이들 틈에 끼여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람들 주고받는 얘기들이 하나 같이 평화롭지는 않았다. 물론 즐거움을 나누는 말들도 오갔지만, 세상 잇속을 따지는 낱말들도 많이 들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닭살이 돋을 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보니 8시가 좀 넘어 있었다.

다시 동피랑에 올랐다. 통영 바다 밤풍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두셋씩 무리를 지은 젊은이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어떤 남녀는 마치 싸우는 듯한 큰 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이들 앞에는 맥주 캔이 몇몇 놓여 있었다.

동피랑 마을 꼭대기는 옛날 통영성 동포루가 있던 자리다. 통영은 지금 통제영 당시 성곽을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인데, 동포루는 북포루·서포루와 함께 통영성 안팎을 이어주고 잘라주는 세 성문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여기 서면 통영 부두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망산 공원에서 보는 앞바다는 가로로 기다란 연못 같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제대로 바다 같이 보인다.

이렇게 끝나는 통영 밤마실은 저녁 6시 30분 넘어 시작됐지만 처음 중앙시장 도착은 4시 20분 즈음이었다. 죽림동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서 105번 시내버스를 타니까 20분이 걸렸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시장 안쪽을 오가다가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으로 장어구이를 먹었다.

1인분에 5000원이라 해서 속으로 이렇게 싼 데도 있나 싶었는데 알고 봤더니 장어는 손님이 시장에서 사 와야 하며 다만 그것을 장만해 주고 채소와 양념을 주는 대가가 5000원이라 했다. '양념집'이었던 것이다.

살갑게 구는 아주머니한테 부탁을 했더니 장어를 대신 사와 줬다. 1kg이었는데 1만 원을 줬다고 한다. 장어구이와 함께 소주를 한 잔 걸쳤다. 장어는 보기 드물게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고, 살짝 구운 살점은 씹지 않아도 입 안에서 녹았다.

시내버스 차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통영종합버스터미널 가는 것도 많고 중앙시장 가는 버스도 많기 때문이다. 자가용 자동차를 버리니 이렇게 즐겁고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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