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총회…이사장에 이순항

옛 마산이 낳은 한국의 대표 진보정치인이자 노동운동가인 소담(昭潭) 노현섭(1920~1991) 선생을 기리고, 그의 업적을 연구·계승하는 기념사업회가 조직됐다.

'(사)소담 노현섭 선생 기념사업회'는 지난달 5일 마산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총회에는 유족, 경남항운노조 관계자 등 130여 명이 참석해 기념사업회 출범에 힘을 보탰다.

이순항 기념사업회 발기인 대표는 "노현섭 선생은 엄혹한 시절 일본 유학생으로서 평온한 삶을 마다하고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념사업이 선생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더 밝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도록 성원해달라"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총회에서 정관을 심의·확정하고 임원을 선임했다. 임기 3년인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는 이순항 발기인 대표가 추대됐다. 감사는 최종형 경남항운노조 부위원장과 이정기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경남본부장이 선임됐다.

기념사업회는 또 학술세미나와 노현섭 선생 평전 발간 등 하반기 주요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학술세미나는 '한국 노동운동의 선구자 소담 노현섭 선생의 업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이달 29일 오후 3시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노현섭 선생 평전도 세미나 개최일에 맞춰 발간돼 같은 장소에서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현재 홍중조 경남지역사 포럼 대표가 평전을 집필 중이다.

이순항 노현섭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인터뷰

   
 

"지역을 넘어 한국 현대사에 큰 자취를 남긴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정치인인 노현섭 선생을 기리는 일이 제가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항(79) 노현섭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잔잔하지만 결연한 말투로 뜻을 밝혔다. 노현섭 선생이 남긴 업적에 견줘 지역에서 그를 기리는 작업이 소홀했다는 아쉬움도 섞여 있었다.

"제가 평기자 시절 노동 담당을 하면서 노현섭 선생을 처음 만났어요. 파업 개념이 없던 시기였는데 미창, 그러니까 지금 대한통운에서 노동쟁의를 했어요. 노동자들 임금을 조금이라도 올리고자 사측을 꾸준히 설득하면서 다녔지요. 홀로 그 지겹고 힘든 싸움을 해가며 결국 동의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지요."

이순항 위원장이 기억하는 노현섭 선생의 삶은 늘 지역민을 향해 있었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고 그래서 늘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지식인이었다. 노동운동, 교육, 의료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은 하나같이 지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쪽으로 향했다. 마산상업학교 교사, 부산부두노조 마산지부장, 대한노총전국자유연맹 위원장, 마산자유노조 위원장, 사립마산고등공민학교 교장, 마산시 교육위원, 노동병원 설립 같은 행적이 그런 삶을 증명한다.

지역 사회에 헌신하는 지식인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은 국가였다. 정확하게 박정희 군사정권이었다. 6·25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에 앞장섰던 선생을 용공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군사정권은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민간인학살유족회 간부들에게 사형·무기 등 중형을 선고했다. 노현섭 선생은 15년형을 선고받고 8년 정도 복역하고 나서 주거 제한 조건으로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교도소에서 모범수에게 휴가 같은 것을 주는 게 있었어요. 한 일주일쯤 나왔나. 선생이 나올 때면 당대 지식인들이 선생을 맞았어요. 그렇게 술자리가 만들어지면 저를 꼭 불러주셨죠. 교도소에 계셨던 분이 술을 몇 잔이나 드시겠어요. 취하면 제가 댁까지 모셔드렸어요."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노현섭 선생은 꼬장꼬장했다. 지인 가운데 누군가가 술자리 안주 투정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나무랐다. 주변에 헐벗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치스러운 말을 하느냐며 정색을 했다.

옥살이 후유증에 시달리던 노현섭 선생은 1991년 타계한다. 선생이 타계한 뒤에도 한동안 민간인 학살 유족회 사건은 어둠 속에 묻혔다. 노무현 정부 들어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됐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나섰다. 하지만, 진실화해위가 사건 재심을 권고한 것은 2009년 10월 21일. 노현섭 선생 타계 20년을 앞둔 해였다. 그리고 지난 2010년 6월 선생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무죄 선고 이후 노현섭 선생을 기리는 모임은 탄력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열린 '노현섭 선생 추모회'가 그 시작이 됐다. 노현섭선생기념사업회추진위원회를 결성한 것도 그 즈음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