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부엌가구 매장 점장 김경표 씨, 밤이 되면 연극배우로 변신

여기 '이중생활'을 즐기는 젊은이가 있다.

낮에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인테리어 매장에서 손님을 맞는다. 계약도 체결하는 어엿한 점장이다. 하지만, 오후 8시가 넘으면 껌을 씹고 맥가이버칼을 들고 다니며 '행님'을 부르는 건달로 변한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서 김경표(34) 씨를 만났다. 30대 중반이라는데 동안이다. 작은 눈에 장난기가 넘쳐 보인다. 김 씨가 명함을 내밀었다. 'APID' 팀 매니저라고 적혀 있다. 주소는 마산합포구 산호동이다. 김 씨는 "부엌가구 매장입니더. 인테리어를 하고 있거든예. 한샘 본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4년 전에 지인이랑 이 가게를 차렸습니더. 지는 점장인데 월급쟁이 사장이라고 보면 되예"라고 말한다.

   
 

그는 오전 9시 출근해 먼저 공사 현장을 챙긴다. 이후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계약을 성사하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오후 6시 매장 정리를 서두른다. 그리고는 창동으로 발길을 향한다.

그는 이렇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는 창동예술소극장으로 들어갔다. <레젼드 오브 타짜> 무대가 보인다. 여기저기서 배우들이 목을 풀고 있다. 오후 8시 공연 준비에 다들 바빴다. 그는 연극 팸플릿을 보여준다. 그런데 배우 소개란에 그의 얼굴이 보인다. '첫 데뷔작'이라고 적혀 있다. "카메오로 10분 정도 출연합니더. 극 중 가위손의 부하인데 건달이지예. 대사는 딱 6줄. 사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역할이지만 관객 반응은 최고라예. 가장 매력적인 배우 1위로도 꼽히고."

정식 연극배우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신마산에서 'GODO'라는 바를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데, 손님으로 자주 오던 연극인을 만나 오늘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처음에는 연극 표를 팔아주려고 했지예. 창동을 살리려고예. 어렸을 적 창동이 저의 놀이터였거든요. 창동을 사랑하는 마산인의 책임감 같은 거지예. 그러다가 문종근 선생님을 만났습니더. 몇 년 만에 창동에서 복귀작을 준비한다고 하데예.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예. 그래서 처음에는 홍보를 맡겠다고 했습니더.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대학 후배들에게 표를 팔기도 하고예."

그는 그러면서 연극에 대한 욕심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무대에 서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다고 했다.

"문종근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지예. 극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작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예. 그래서 건달을 맡게 된 겁니더. 오늘 무대가 다섯 번째로 할 때마다 기분이 달라예. 재미있고. 또 무대 뒤편의 세상도 매력적입니더. 많은 배우가 긴박하게 의상을 갈아입고 대사를 확인하는 모습은 본 무대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지예. 이런 게 좋습니더."

그에게 물었다. 인테리어 점장, 바 사장, 연극배우 중 어떻게 불리는 게 좋은지.

   
 

"지금은 김 배우라고 불러 주이소. 레젼드 오브 타짜를 위해 창동을 위해 열심히 뛸꺼라예. 그리고 나중에 연극 함 보고 가이소. 웃긴 데 눈물도 나고 재밌습니더."

김 씨말대로 동네 사람 인터뷰를 마치고 연극을 봤다. 건달이 언제 나올까 기다리면서. 연극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화투판을 전전하는 박문호가 상대편 조직인 가위손파에게 잡혀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로 손을 잘릴 위기에 처한 것. 이때 한 가위손의 부하인 건달이 무대에 등장해 주인집 아저씨를 찾는다. 박문호가 과거 화투판의 큰손이었던 주인집 아저씨를 걸고 넘어진 것이다. 이 건달이 바로 김 씨였다. 등장하자마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껌을 씹고 요리조리 걸어다니며 협박을 하는데 어딘가 어설프다.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김 씨 입속에 있던 껌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 그는 의연하게 껌을 주워 다시 입속으로 넣는다. 온 객석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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