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며 함께할 수 있는게 행복"

시뻘건 양념에 묻힌 떡을 주걱으로 뒤집자 뽀얀 김이 올라온다. 생김새는 그렇게 매울 수가 없는데 막상 먹으면 달콤한 맛이 매운맛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온갖 재료를 넣고 자글자글 끓이는 국물 있는 떡볶이가 대세일 때도 있었다. 그런 떡볶이 가맹점이 좀 많았나. 하지만, 길에서 먹는 떡볶이는 빨갛고 걸쭉한 양념에 버무린 것이 제맛이다. 그 모양새와 맛이 집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비법인데 어떻게 가르쳐주나. 집에서 다 그렇게 해먹으면 우리는 장사 어떻게 하라고. 밖에서 사먹으면 되지 뭘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고 하노."

떡을 뒤집던 박봉자(59) 씨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부림시장 입구에서 10년째 떡볶이와 어묵, 튀김, 김밥, 순대를 팔고 있다. 천막으로 만든 손수레 지붕 쪽에 낯익은 사진이 보인다. KBS <1박 2일> 멤버와 찍은 사진이다.

   
 

"시청자와 같이 여행 갈 때 우리 11남매가 참여한 기라. 그때 3박 4일 동안 찍었는데 참 재미있었지. 먹는 게 아쉬웠던 거 빼고. 그때 몽이랑 종민이가 참 살갑게 잘해줬는데…."

박봉자 씨는 11남매 중 넷째다. 첫째부터 다섯째까지가 딸이고, 여섯·일곱째가 아들이다. 다시 여덟째가 딸, 아홉·열째가 아들, 막내는 딸이다. 고향은 고성인데 9남매, 10남매는 있어도 11남매는 박봉자 씨 가족뿐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밥을 그릇에 안 먹었어. 쭉 앉혀놓고 양푼 3~4개를 놓으면 거기서 알아서 퍼먹는 거라. 나중에 딸들이 결혼하고 사위들이 와도 그렇게 음식을 내놓았지. 오죽하면 우리 남편은 남들에게 처가에 가면 세숫대야에 밥을 준다고 했어."

가지가 많아도 너무 많은 나무다. 바람 잘 날 없었을 듯한데 박봉자 씨는 손사래를 쳤다. 제때 끼니 챙겨주기도 버거웠을 자식들에게 부모님은 딱 한 가지만 가르쳤다. '남매가 항상 잘 어울리고 윗사람이 어떤 잘못을 해도 아랫사람이 덤비지 마라'. 농사일도 하고 고기도 잡으면서, 그렇게 얽히고설키던 11남매는 그 가르침만은 미련하게 지켰다. 가르침은 습관이 됐고, 습관은 곧 가풍이 됐다. 첫째가 64살, 막내가 44살이다. 20년 터울이 지금까지 형제·자매 가리지 않고 서로 엉겨붙고 편하게 말을 주고받아도 부모님 가르침만은 어기지 않았다. 자식 덕을 보기도 전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렇게 11남매는 서로 의지했다.

"우리는 해마다 자기 가족 다 두고 딱 11남매만 항상 여행을 간다 아이가. 3박 4일씩 놀러 가면 남동생들이 버스 빌려서 내내 운전하고 다녀도 좋단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방에서 뒹굴어서 다 커서도 한방에서 자는 게 어색하지도 않아. 동생들이 다 잘 풀렸는데 언제나 다른 형제들을 잘 챙겨."

11남매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서로 줄 것만 생각했지, 뭐 받아서 챙길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11남매 중에 누구 하나 큰 고비 없이 무난한 삶을 산 것도 복이라면 큰 복이다. 각자 아쉬울 게 없고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으니 세월이 흐를수록 쌓이는 것은 정뿐인 듯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분이 떡볶이 한 접시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부림시장에 와서 떡볶이를 먹어본다고 했다. 맵지 않으려나 걱정하니 박봉자 씨가 당장 면박 아닌 면박을 준다. 떡볶이 먹고 매워서 속 쓰리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면서. 한 아주머니가 자주 안 먹어서 매울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자주 먹으면 될 것이라고 받는다.

자랑만 듣다가 질려 거듭 물었다. 정말 싸운 적 없느냐고, 형제보고 싸우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그렇게 살아지느냐고 또 물었다.

"사실 나는 좀 왈가닥이어서 부모님 안 보실 때 일 나가서 성질나면 언니들 한 대씩 때리고 했다. 그래도 부모님 앞에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했지. 그런데 나만 그랬고 다른 누이나 동생들은 절대 안 그랬다. 그렇게 살아지더라."

   
 

박봉자 씨가 장사하는 자리는 원래 둘째 언니가 장사하던 곳이다. 둘째 언니는 20여 년 전부터 장사를 했다. 지금은 부림시장 안쪽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박봉자 씨도 곧 분식집에 들어가서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부림시장 입구 앞길도 지붕 공사가 계획돼 있기 때문이다.

"몸 안 아프고 건강하고 자식 잘되면 아무 걱정 없지. 바라는 게 뭐 있나. 그나저나 아들 둘이 어서 장가를 가야 할 텐데…."

30대 중반을 넘긴 아들 걱정이 잠시 얼굴에 스쳤다. 하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한 마디 던졌다.

"나는 몰라도 떡볶이는 잘 나오게 좀 찍어주소. 떡볶이 많이 팔아야 할 거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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