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사천특산 전통옹기’ 강길부 씨

옹기 만드는 일을 고집하며 한평생을 살아가는 강길부(72·사천시 사천읍 두량2리) 씨가 운영하는 ‘사천 특산 전통옹기’.

올해 마흔세 살인 아들 문용 씨까지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 할아버지 때부터 치면 4대째 가업을 잇는 셈이다. 강 씨의 할아버지는 산청군 덕산에서, 아버지는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에서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왔으나 정확한 내력은 잘 모른다. 당시는 하루하루를 넘기는 일이 더 급했던 탓에 옹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할 여유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옹기를 구워내는 옹기장이라는 이곳에 가까워질수록 봄기운을 약간 담은 바람에 실려 ‘쨍쨍쨍’ 하고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완성된 옹기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리다. 잘 구워진 옹기에서는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마침, 강 씨는 옹기 굽기를 하는 중이다. 불때기라고도 하는데, 옹기를 1150℃ 고온에서 16시간 정도를 구워내는 작업이다. 아직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강 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연방 땀을 닦는다.

옹기 장인 강길부 씨./박일호 기자

강 씨는 “그나마 겨울철에는 조금 나은 편이다. 여름철에는 상상 그 이상”이라며 “다행히 여름철에는 주문이 뜸하고, 김장철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옹기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옹기는 흙으로 빚은 것을 잿물을 발라서 고온의 불에 구워서 만든 그릇으로 아득한 옛적 토기의 전통, 그리고 그것이 발전된 도기의 전통 속에 있는 그릇이다.

옹기는 크게 잿물을 친 오지그릇과 잿물을 바르지 않은 질그릇으로 구분된다. 잿물을 친 오지그릇이 일반적인 옹기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빚은 다음 잿물을 입히지 않고 구워내는데, 겉면에 윤기가 없다. 오지그릇은 진흙으로 빚어 구운 다음 잿물을 입혀서 다시 구워내는데, 검붉은 윤이 나고 질그릇보다 단단하다.

옹기를 만드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흙이다. 물론, 다른 작업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강 씨는 물레에 처음 올라간 그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옹기장을 꾸려나갈 능력이나 기술이 모자라 남의 집 옹기장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50년 여 물레질…‘옹기의 달인’

그는 산청군 덕산, 고성군 월평, 진주시 정촌 등지의 옹기장을 전전하다 스물여섯 살 때인 1965년, 문을 닫으려는 현재의 옹기장을 인수해 '사천 특산 옹기'라는 간판을 달고 본격적인 옹기 제작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는 이곳에서 가까운 마을 인근 두량저수지 상류에서 생산되는 진흙을 사용했다. 품질이 좋으면서도 운반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 일대에 경지정리가 이뤄지면서 진흙 채취장이 논으로 바뀌는 바람에 지금은 김제와 나주 경주 등지에서 진흙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 흙은 점토수비, 깨끼질, 뚝메질 등을 통해 벽돌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수비는 흙을 물에 넣고 휘저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말한다.

옹기 장인 강길부 씨./박일호 기자

강 씨는 이 벽돌모양 진흙으로 질판을 만들고, 질가래를 만든 뒤 양쪽 소매를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옹기 제작에 들어간다. 물레에 앉은 강 씨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옹기 모양은 물레의 속도, 손놀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레를 돌리는 발과 진흙을 주무르는 손이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이상하다. 물레 방향이 다른 것 같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걸까. 강 씨가 “도자기는 물레가 시계방향으로 돌고, 옹기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돈다. 이것이 바로 도자기와 옹기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도자기와 옹기의 차이점에 대해 들려준다.

강 씨는 “옹기는 오랫동안 음식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식물성 유약인 천연 잿물을 바르고 흙속에 있는 공기구멍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기 때문에 숨 쉬는 그릇”이라며 옹기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강 씨는 어릴 때부터 집안에 널린 진흙과 옹기 조각을 갖고 놀며 작업장에서 심부름을 하고 자랐다. 이 때문에 언제부터 옹기 만드는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열 살 무렵부터 그릇 만드는 심부름을 했는데, 물레에 처음으로 앉은 것은 열일곱 살 때라고 한다. 그때부터 쳐도 거의 50년이 되는 셈이다. 가히 옹기의 달인이라고 불릴 만하다.

옹기 장인 강길부 씨./박일호 기자

옹기는 자연에서 가져온 그릇

그에게도 항상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작업이 있다. 바닥 만들기, 몸체 만들기, 전 잡기이다. 이 작업을 옹기성형이라고 하는데, 성형기법에는 썰질법과 타림법 등이 있다고 한다. 썰질법은 점토판을 물레판 위 중앙에 방망이로 두들겨 붙인 후 타래를 1~2겹 겹쳐 붙이고 물레를 돌리면서 기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타림법이 큰 기물 성형에 사용한다면 썰질법은 작은 옹기를 만들 때 사용한다.

옹기 장인 강길부 씨./박일호 기자

강 씨가 만들어낸 옹기는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 어깨 부위가 잘 발달해 있으며, 입지름과 밑지름이 좁은 편이다. 대체로 원형에 가까워 달덩이 항아리로 불리는 전라도 지역 옹기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이 옹기는 초벌 말리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1차 건조인데 6시간 정도 걸린다. 초벌 말리기 과정을 끝낸 옹기에는 유약을 바르는데, 천연 유약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우리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

나뭇재와 약토를 물에 풀어서 만든 것으로 보통 잿물이라고 부른다. 나뭇재는 주로 소나무, 참나무 등을 태운 것이고, 약토는 주로 소나무가 많은 산에 나뭇잎이나 풀뿌리 등이 오랜 시간 쌓여서 썩은 흙으로 철분 함량이 많은 부식토나 부엽토를 말한다.

강 씨는 “나뭇재의 비율을 높일수록 잿물이 잘 녹는데, 약토와 나뭇재의 비율을 잘 조절해야 한다. 옹기의 색에 영향을 준다. 재를 많이 넣으면 옹기의 색이 노랗고, 약토의 비율이 높으면 붉은색이 난다”고 귀띔했다.

유약을 바른 뒤에는 유약이 흐르기 전에 옹기 전면에 손가락으로 재빨리 난초를 친다. 곧바로 응달로 옮겨 7일 정도 재벌 말리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옹기 굽기를 통해 자연으로부터 최소한의 흙, 물, 불, 바람을 빌려와 만든 서민들의 그릇인 옹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옹기는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다.

강 씨는 지난 2002년 공예품 지정업체로 선정된 것은 물론 2002년에는 경남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입상까지 할 정도로 옹기 제작 기술에 대한 그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아들인 문용 씨가 가업을 이어갈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다. 문용 씨는 항아리 뚜껑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일손이 부족해서 다른 기술을 배울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강 씨의 걱정거리다. 그러나 강 씨의 옹기사랑은 끝이 없다.

“지금까지 도내에서 살아남은 옹기장은 이곳밖에 없을 정도로 사양산업이지만 최근 들어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적인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옹기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옹기 장인 강길부 씨./박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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