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회적 인식 일반화…독립적 존재로 설 때까지 유보

우리 집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쯤 같은 반 친구가 이번 겨울방학에 포경수술을 할 예정이라 겨울방학이 두렵다면서 자기도 포경수술을 시킬 거냐고, 안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 종교와 담배와 포경수술은 네가 스무 살이 지나면 스스로 선택하고,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너 스스로도 선택을 유보했으면 한다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말한 그대로 옮기자면 포경수술 안 시키고 종교 강요 안 할 테니 너도 스무 살 되기 전까지 담배 피우지 말고 성인 되거든 네가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정도였을 것이다.

포경수술을 해야 하는지, 언제 하는 것이 적당한지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한의사가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포경수술을 언제 시키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의학적 견해가 아닌 아이를 인격적 존재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어른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포경수술은 할례라는 종교적 행위에서 나왔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포경수술은 전통으로서 행해지고 있다. 이슬람권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포경수술이 광범위하게 시술되고 있는 나라는 미국, 필리핀, 우리나라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인 남성의 포경수술이 당연시 되고 있는 이유는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미국식 의료체계(의학체계가 아닌 의료체계다)가 일반화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포경수술은 의학적 필요의 부분보다는 종교적이거나 사회적 인식의 부분이었던 것이 세월을 지나 일반화되면서 남들 다 하니까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

의학적으로 포경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1% 정도라 한다. 그것도 사춘기 때 안 하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 볼 여지도 있는 것이라고 하니 포경수술이라는 것이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 하는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는 아닌 듯하다.

아이란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부모에게 의존적인 존재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부모란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이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다. 힘을 가졌다고 그 힘으로 아이를 강제하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의존적인 존재인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어른들이 해야 하는 것은 도움과 이해와 설득이 아닐까 한다.

포경수술에 선택권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아이 본인에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나이까지 유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아니고 빨리 한다고 그만큼 큰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 포경수술을 아이의 의지와 선택을 무시하고 서둘러 강제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마음이다. 남들 다 하니까 무조건 할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꼭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알아보자. 그런 다음에도 선택권은 아이에게 주자. 왜냐하면 아이의 몸은 부모님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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