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창립…재야인사 결집

진주지역 재야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민족문제연구소 경남진주지회(민문연 진주지회) 창립, 반(反) 민족문제 해결과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서기로 결의했다. 이 소식에 ‘너무 늦었다’라는 이도 있고, ‘이제라도 괜찮다’는 이도 있었다. 모두 반가움의 장탄식이다.

민문연 진주지회는 지난 3월 3일 오후 4시 경남과학기술대학 산학협력관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다. 이날 창립대회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박한용 연구실장, 송기인 부산교회사연구소 소장,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김수업 공동대표, 경남문학관 박노정 관장을 비롯하여 진주지역 시민사회·정치·농민·노동 등 단체에서 활동하는 100여명 시민들이 참석했다.

이날 민문연 진주지회는 이기동(전국자치분권연대 집행위원장) 씨를 진주지회장으로 추대했다. 이 지회장은 “민족문제연구소 사업목적과 그 실천에 적극 동참하여 진주 사람들이 모였다. 진주에서 민족내부의 역사적·문화적 공감대 형성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지회장은 “진주대첩, 진주민란, 형평사운동으로 이어지는 저항 도시 진주에서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서자”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현재 진주지역에는 5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이날 지회 창립을 계기로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창립 기념사진./권영란 기자

이어 축사로 나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친일청산은 여전히 현실정치의 과제”라며 “지부 창립에 잘 참석하지 않으나 이곳이 경상도여서, 진주라서 왔다. 그만큼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진주에서 20년 동안 못한 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행사에 같이 참석한 박한용 민문연 연구실장은 현재 서울에서 진행 중인 ‘시민과 함께하는 바른 역사관 건립’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친일청산이란 친일파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대한민국 현실과 싸우는 것”이며 “우리가 당한 민족차별 역사에서 지금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기인 신부와 임헌영 소장./권영란 기자

“남인수 생가 정비사업이 말이 됩니까?”

진주지회 강호광·조한진·정원학 씨

창립대회가 끝난 며칠 후,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를 창립하는데 발 벗고 나선 강호광·조한진·정원학 회원을 만나보았다. 이들은 제각각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30~40대 직장인들이었다.

“첫 발 떼는 게, 참 수월치 않았어요.”

진주지회 강호광 총무의 첫마디다. 같이 자리 한 조한진, 정원학 회원이 머리를 끄덕이며 이 말에 맞장구를 친다. 수년간 주춤거리다가 어렵게 결성된 거라 한다.

“2007년인가, 진주에서 ‘논개영정폐출사건’ 벌금모금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여기 모인 우리 셋은 전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각자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활동을 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논개영정 폐출사건’이란 진주성 의기사 안에 있던 논개영정이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의 그림인 것으로 밝혀져, 2005년 지역 43개 시민단체에서 직접 강제철거를 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 이를 막으려는 경찰, 공무원과 몸싸움이 있었고, 주도했던 네 사람이 불구속 기소돼 2007년 항소심에서 각각 벌금 500만원, 총2000만원을 선고받았던 일이다.

“당시 진주신문 보도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벌금이 수백만 원씩 떨어졌는데, 당사자들은 벌금 안 내고 노역장에 가겠다하고, 시민들은 벌금모금운동을 벌이는데 뒤늦게 거기 동참하게 됐어요. 우리 셋도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된 거지요.”

정원학, 강호광, 조한진 씨(사진 왼쪽부터)./권영란 기자

하지만 진주지회가 결성되기까지는 그러고도 수 년 동안의 공백이 있었다.

“서로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고, 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도 했지만 실제로 지역 안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는 막막하더군요”고 조한진 씨는 동안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신흥무관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차원으로 답사를 갔다왔어요. 그때 진주지회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연구소에서도 적극 지지해주었지요.”

강호광 총무는 원래 창립은 올해 상반기쯤으로 얼추 예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서둘러 창립대회를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말 진주참여연대에서 발표한 올해 진주시예산에 ‘남인수 생가 정비사업’이 포함돼 있는 걸 보고서였다.”

‘국민가수’라 불리는 남인수가 ‘친일인명사전’에도 오른 친일가수이며, 일본군의 활약을 노래한 ‘강남의 나팔수’, 징병지원을 축하하고 독려하는 ‘혈서지원’ 등의 노래를 부른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어떤 시정조치도 하지 않고 오히려 세금으로 생가 정비사업을 한다는 데서 분노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 진주시 문화관광과 과장을 면담하기도 하고, 문화재청에도 전화를 해봤어요. 그런데 한국근대문화재로 이미 등재돼있고, 현재로는 문화재 폐기 조건이 안 된다는 말만 들었어요.”

현재 생가 소유주가 문화재청에 폐기요청을 하면 세 사람은 앞으로 회원들과 논의해 ‘남인수 생가 문화재 등록 폐기’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그렇다면 민문연 진주지회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로 이어졌다.

“먼저 ‘친일인명사전’에 진주지역과 관련된 인물이 있는 지 검토하고, 그 명단들을 정리 작성하여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나갈 작정이에요.”

남인수처럼 왜곡된 사실로 말미암아 숭배 또는 미화된 인물이 있다면 그 실체를 알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18년간의 대장정 속에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지역 내 각 학교나 도서관에 반드시 비치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강호광 총무는 이 사업은 교육청과 각 학교장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시민역사관 건립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는데, 건축비만 총 50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진주지역에도 왜 건립하는지를 알리고 시민운동 차원으로 모금운동을 적극 펼쳐나갈 계획인데, 10만원만 내면 시민역사관 건립 발기인이 됩니다.”

자리를 뜨기 전, 조한진 씨는 “인터넷에서 민족문제연구소(www.minjok.or.kr)로 들어가면 지금까지 진행사항을 알 수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만 클릭’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창립 기념사진./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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