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송전탑 주민들 고통에 피눈물 납니다"

송전철탑 공사에 항의하다 분신해 숨진 고 이치우 씨의 분향소가 차려진 밀양시청 앞. 고인의 명복을 빌고 한국전력과 정부를 규탄하는 하얀색 펼침막이 만장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김영기 도의원(무소속·밀양1)은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울분을 토했다.

“기초의원이든, 도의원이든, 시장이든, 국회의원이든 간에 우리가 일을 잘못해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국책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밀양시민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김영기 경남도의원

고인이 분신 사망한 지 10여 일이 지났지만 송전철탑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과 정부는 주민들과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 끌어왔던 문제가 고인의 죽음으로 다시 지역사회에 이슈화되긴 했지만 뚜렷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김영기 의원은 지난 2월 16일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산외면 보라마을 분향소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분향소를 밀양시청으로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민 대책위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대안을 모색해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가 않다. 지역 정치인들이 미리미리 주민들의 민원 해결을 위해 나서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정치인들한테 싸늘합니다. 저희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니까 감수합니다. 죄송한 마음입니다.”

김영기 경남도의원

김영기 의원은 오는 2월 경남도의회가 열리면 밀양 송전철탑 해결을 위한 대정부 결의문을 발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미미한 활동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미 밀양시의 손을 떠난 일이라 주민들의 배신감이 더욱 큰 상황이기도 했다. 일례로 부산 기장군은 "주민들과 협의가 없다"는 이유로 송전선로 공사를 인가하지 않았고, 법원으로부터 한전에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김 의원은 송전철탑이 건설되는 산외·산내·단장·부북·청도면 일대 주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영기 경남도의원

“어르신들이 밭일을 하다가도 공사 차량이 들어온다는 동네 방송이 들리면 산으로 뛰어올라갑니다. 젊은 사람들은 20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1시간 30분씩 걸려 힘들게 올라갑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지팡이 짚고 산 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모 올메나 살겠노, 너거덜 잘 되라고 지랄하는 거 아이가. 니가 도의원 아이가, 뭘 좀 해봐라’ 이런 소리를 들으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밀양시 중에서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산외·산내·청도 등지에 송전철탑 69개가 들어설 계획이고 각 면마다 주민 대책위가 활동하고 있다.

김영기 경남도의원

“정부가 국민들을 너무 천대하는 것 같아요.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데 실제 경남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답답할 따름입니다.”

밀양시의원으로 4년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도의원으로 당선된 김 의원은 밀양 '송전철탑 사태'를 겪으며 지방의원이 겪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고충을 경험해야 했다. 서울시민들이 사용해야 하는 전기를 위해 전 국토가 몸살을 겪어야 하는 ‘서울 공화국’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국책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개발사업에 주민 대표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기 경남도의원

“한전 사장과 지경부 장관이 와서 공식 사과를 하고 대책위와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무리한 부탁이 아닙니다. 정부 사업이 영향을 미쳐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장관이 사과하러 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한전 사장은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분향하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있어야 떳떳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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