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굿이란 원래 권하는 사람이 없어도 구경할 만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고도 굿판이 벌어지면 이웃이나 근동에서 마음써 보아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경사 굿은 경사 굿대로, 흉사 굿은 흉사 굿대로 서로 한 자리에 마음을 모아 축하를 하며 즐기고, 애도를 하며 즐겼다. 아무리 가슴 아픈 흉사 굿이라 하더라도 무당의 혼신을 다한 매듭매듭풀이를 따라 굿은 흥겨움으로 막음막음 하게 마련이어서, 가슴 미어지는 슬픔이나 아픔으로 시작된 굿도 어깨숨 내쉬며 더덩실 춤추는 기쁨을 서로 나누고 즐기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당의 신통력이었고, 사람들은 그 신통력을 믿었고, 의지했다.
- 조정래 <태백산맥> 6권. 제3부 분단과 전쟁-5. 소화의 씻김굿 중 일부.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연극 등 공연예술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하나 있다. '굿쟁이'. 무지렁이인 기자는 처음엔 이 말이 예술인들이 자신을 스스로 낮춰 부르는 속어로 생각했다.

'영혼의 전달자', '이상의 실현자' 같은 멋들어진 수식어가 좀 더 세련돼 보이고, 나름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여러 예술인을 만나다 보니 내가 좋아한 수식어들이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상투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굿쟁이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예술인은 자기가 행하는 예술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한국연극사> 등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역사를 되짚은 책들은 하나같이 고대에 행해진 '무속신앙' 속 '제의'에서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는다.

제의는 훗날 '굿'이란 이름으로 전승됐고, 굿을 주도하는 '무당'은 신의 매개자이자 영혼을 표현하는 가장 뛰어난 '연희자'였다. '굿판'은 경사 굿이든 흉사 굿이든 곧 한바탕 연희가 펼쳐지는 무대이자 온 마을 사람이 함께하는 한바탕 잔치판으로 기능을 해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들어온 서구 종교문화는 당시 지배계급의 무분별한 숭상 바람을 타고 점차 우리 무속신앙과 제의가 가진 역사적, 민속적 헤게모니를 잠식해갔다. 더불어 종교문화와 함께 들어온 서구 문화예술은 당시 1%와 99%의 차이를 표현하는 상징물로 작용했다.

이렇게 점점 우리 전통연희문화는 농촌 등 한데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한 것으로 전락했고, 그 빈 공간을 서양식 연극, 무용, 클래식 음악 등이 대신하게 됐다.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안타까운 것은 현재 진정한 우리 문화는 '보존'도 힘에 겹지만, 고도로 상업화된 외래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대중화·세계화 바람을 타고 '우리 것'이라는 가면을 쓴 채 우리 문화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더해 강력한 중앙집중화는 지역전통문화는 아예 그 이름도 내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경남 문화 발굴·보존의 산증인

경남문화재단 전정효(63) 대표이사. 전 대표는 이처럼 오랫동안 잊혀 온 (경남)지역의 전통문화와 민속을 발굴·보존에 힘쓴 산증인이다. 그는 지난 1976년 마산MBC에 입사한 이후 31년 동안 재직하면서 경남 18개 시·군에서 어쩌면 사라졌을 수도 있는 지역 민요를 1000여 점이나 채록, 그 명맥을 이어놓았다.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입사 이후 10여 년간 기자생활을 하다 갑자기 라디오 PD로 자리를 옮기면서 '남도 300리'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이 때문에 민요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됐다. 카세트 녹음기를 들고 그는 우리 가락이 있는 곳이면 18개 시·군 어디든 찾아갔다. 안방이나 툇마루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터져 나오는 구성진 가락을 주로 녹음했지만, 밭 갈고 논 매는 곳에도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텀벙텀벙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채록된 경남지역 민요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남도 300리'라는 5분짜리 라디오구성프로그램으로 청취자들에게 수년간 전해졌다. 교통수단도 많지 않던 그 시절 박봉의 취재비에도 그를 민요의 세계로 내몰았던 것은 '아 이런 것을 정규교육과정에 가르쳐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움과 사명감이었다.

지난 1992년에는 그가 발품을 팔아가며 채록한 1000여 점의 민요를 모은 총서 <구야구야 지리산 갈가마구야>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그의 이런 노력은 한국방송대상 라디오 작품상, 시민불교문화상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과 경륜이 그를 자연스럽게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라는 자리로 이끌었다.

전 대표는 경남문화의 원형은 '굿'에 있고, 이를 현대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이 경남문화의 맥을 잇는 것으로 생각한다. "경남에는 상업적이지 않고,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경남은 '남해안'이라는 문화예술적 환경을 소재로 해 발현할 수 있는 문화 형태가 많고,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굿'이 아닌가 싶습니다. '굿'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봤을 때 주민자발적인 축제문화의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경남 문화계는 이런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지난해 이와 관련된 성과를 이뤘다.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사천 극단 '장자번덕'이 제29회 전국연극제에서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로 대상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는 전통가무악극으로 한 편의 연극 안에 '남해안별신굿보존회'가 직접 연희를 선보이고, 사천 지역 타악 연주단 '마루' 단원들이 연주와 연기를 겸하는 등 경남이 가진 전통연희 콘텐츠를 적절히 조화시켰다.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 대상 수상은 경남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이 전국 무대에서 그 우수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 문화를 이해하려면 우리 '굿'을 이해해야 합니다. 외래 종교에서조차도 굿의 행태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굿을 종교가 아닌 문화예술적으로 접근해 주민들 그리고 세계인들이 동참하는 살아 있는 문화로 만들고, 그것을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화예술정책에 정치적, 행정 중심의 프로젝트들이 많은 것은 부적절하며, 이를 바꾸어나가는 것이 재단의 임무 중 하나라는 게 전 대표의 생각이다.

경남문화예술정책의 바탕은 '도민'

마산MBC를 떠난 후에도 (사)경남전통문화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하며 우리 문화를 연구해 온 전정효 대표. 지난해 6월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 심정은 어땠을까?

"처음 취임했을 때는 문화에 관심을 둔 세월이 30년이라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맡고 보니 재단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아 관에서 해오던 지원 사업 중심이었고, 문화예술 쪽 사업 역시 기존에 관에서 해 오던 사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취임 이후 꾸준히 고민해 온 '재단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풀어놓았다. "포스트모던사회에서는 모든 게 상업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은 상업화로 흐르는 일방적인 사회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요. 따라서 문화예술이 정치나 다른 분야에 왜곡되게 활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인도 도민입니다. 그러니 '도민이 경남문화예술정책의 바탕'이라는 인식으로 각 장르를 어떻게 구현해 낼까, 도민들의 보편적 문화 생산과 향유를 위해 어떤 정책을 세우고 사업을 해 나갈까 고민하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자 정체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취임 반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재단의 역할에 대해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전 대표는 먼저 경남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남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은) 재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도내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제작해 왔는가에 대한 것은 기록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자산으로서 가치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어 "경남문화예술 아카이브가 구축되면 '문화 장터'를 온·오프라인으로 열어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공급의 터미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도 했다.

도민과 문화예술인들이 문화 장터 통해 문화정보를 알선·매매·인적 교류하면 문화 수요자와 공급자의 만남이 수월해지고 활성화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문화예술인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 해법을 제시했다. "문화예술인 복지 문제는 기본권과 생산과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단에 들어온 후 양대 노총을 통해 문화예술인 협동조합 설립을 제안했지만, 잘 안 됐습니다. 차선으로 신협을 통해서라도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자조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문화예술인들은 현실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인 만큼, 사회 문제에 대한 예술적 표현에만 머물지 말고, 자신의 기본권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애인 예술인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장애인 문화예술정책이 '장애인 문화 향유'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장애인 중에서도 문화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예술가들이 있는 만큼 이들을 발굴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학교 폭력은 문화예술교육의 부재 탓

앞서 말한 대로 전 대표를 경남지역 민요의 세계로 내몰았던 것은 '아 이런 것을 정규교육과정에 가르쳐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움과 사명감이었다. 하지만, 아직 국내 제도권 교육은 그의 바람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항상 그 점이 아쉬운 전 대표는 최근 언론에서 집중조명되는 '학교 폭력' 문제의 원인이 문화예술교육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폭력 등 사회 문제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입니다. 우리 교육이 너무 입시 위주에 틀이 박혀 있기 때문이지요. 미술 시간이 아깝다고 수학 보충수업을 하는 등 인성발달에 벗어난 교육을 하기 때문에 모순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그는 문화예술교육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게 아닙니다. 태아 때부터 이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치원, 초등학생들에게 문화예술이 별도의 장르가 아니라 생활 속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 선조의 모든 짓거리에는 악과 놀이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학교 폭력' 문제도 이런 선조의 전통을 잊고 이를 아이들로부터 앗은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문제 어른은 있어도 문제 학생은 없는 법입니다."

전정효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마지막으로 이전까지와는 달리 ‘언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는 지난 1988년 결성된 마산MBC 노조를 비롯해 지방문화방송노동조합협의회(지문노협) 위원장과 언론노련 부위원장을 역임한 언론노동운동의 산증인이다. 전 대표가 언론계를 떠난 지 5년. 그러나 그의 퇴임과 함께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언론악법 통과, 종합편성채널 사업 특혜, 미디어렙법 입법 논란을 일으켰고, 이것이 관철되면서 '언론공공성 약화'가 야기됐다. 이렇듯 언론환경 전반은 그가 언론계에 몸담았을 때보다 엄혹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는 현재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풀려면 언론인이나 언론기관이 '언론의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의 패러다임이 이제 감시·비판에만 머물지 말고, 독자나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단선형 패러다임으로 가야 IT 시대에 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편 특혜는 잘못하면 언론의 양극화(정보의 이념적 편중)를 정부가 부추기는 꼴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은 언론기관들 스스로 타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대안언론, 지하언론, SNS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언론인 스스로 치열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이슈와 정보에 대해 독자와 시청자 등 언론수요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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