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삼천포와 삼천포 서부시장

만물이 겨울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한들한들 봄바람이 불어와도 좋으련만 아직 볼을 스치는 바람은 차다. 하지만 남쪽 어디에선가부터 봄은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꽃망울을 틔우려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봄꽃을 보기에는 여전히 이르고, 향긋한 봄바람도 기대하기 어렵다. 둔한 몸이 봄을 느끼지 못한다면 먹는 봄을 찾아 떠날 수밖에.

생명이 펄떡이고 기운이 넘치는, 또한 제철 맞은 싱싱한 해산물로 입부터 즐거워질 곳을 찾아 떠난 곳은 사천시 동동 삼천포서부시장.

활어전문 어시장인 삼천포 서부시장은 40여 년 전만 해도 인근 어촌마을과 도서지방에서 밤새 잡은 생선을 사고팔던 포구 물양장이었다. 싱싱한 생선이 들어오니 진주·남해 등지에서 상인과 주부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레 장이 만들어졌다. 1978년 정식으로 장이 서면서 삼천포 서부시장은 서부 경남 지역의 중심 어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삼천포 서부시장./최규정 기자

밤새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다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 선박들이 항구에서 쉬고 있다. 여명조차 움트지 않았을 이른 새벽, 그들이 쏟아낸 싱싱한 해산물이 좌판, 상점 할 것 없이 넘쳐난다. 선명한 주황빛을 드러낸 멍게와 살이 오른 도톰한 해삼이 지천이다. 쉼 없이 쏟아지는 바닷물을 받아내며 여전히 건재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손바닥만 한 꼬막과 처음 보는 생선들도 볼거리다. 인근 부두에서는 갓 잡아올린 멸치를 선별하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제철 맞은 멍게…야경이 멋진 실안 선상카페

멍게 특유의 향이 코를 간질인다. 이 또한 봄의 향기가 아니던가. 군침이 돈다. 제철을 맞았으니 인심도 후하다. 터질 것 같은 팽팽한 배를 가르고 오렌지빛 통통한 살을 건져내는 상인의 손길이 바쁘다. 해삼과 멍게를 각각 1만 원어치만 담았을 뿐인데 손이 묵직하다.

삼천포 서부시장의 멍게./최규정 기자

인근 제철 해산물로 그때그때 메뉴를 내놓는다는 식당을 알아두고 발길을 돌렸다. 5분 거리에 닿아있는 실안해안도로를 달렸다. 바다가 에메랄드 빛이다. 제주도에서 보았던 신비한 그 빛 그대로다. 해안도로를 따라 유채꽃을 심었다 하니 좀 더 봄이 가까워지면 유채꽃과 에메랄드 빛 바다 사이를 달리는 운치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실안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삼천포대교 아래 대교 공원은 ‘일몰이 아름다운 거리’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공원 주차장에는 커다란 거북선이 놓여 있어 쉬 지나치기 어렵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거북선을 출전시킨 곳이 사천해전이란다. 실안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다. 저 멀리 삼천포대교가 보인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삼천포대교는 ‘초짜 사진사’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한 장 찍어보고 싶은 장관이다.

인근 대방진굴항과 대방 군영 숲도 볼거리다. 대방진굴항은 고려 시대 말에 남해안에 극성을 부리던 왜구를 막으려고 설치한 군항 시설로 이순신 장군이 수군 기지로 이용했다. 오래된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는 인근 대방 군영 숲은 대방진굴항에 상주하던 군인들의 훈련장과 휴식처였다는데 양팔 가득 들어오는 우직한 나무들 틈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 바다 한가운데 박아둔 나무말뚝들이 눈길을 멈추게 하는데 인근 섬들과 바다와 어우러져 그림을 이룬다. 나무말뚝은 바로 죽방렴. 죽방렴은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원시어장이다. 말뚝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에 맞춰 V자로 벌려두고 끝에 원통형 대발을 설치한다. 그러면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힘을 잃은 물고기가 대발에 모인다. 이 죽방렴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해질 무렵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더욱 아름답다. 실안 낙조가 사천 8경의 하나인 까닭도 바다에 동동 떠있는 죽방렴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와 바다의 아름다운 조화 때문이란다.

./최규정 기자

실안해안도로 끝에 자리한, 예전 한 드라마에 나와 더욱 유명해진 실안선상카페도 추억의 한 장소로 삼기에 좋을 듯하다. 실안 낙조야 사천 8경의 하나이니 일몰을 기다리며 삼천포항→오복식당→대방진굴항→삼천포대교→실안해안도로→실안선상카페로 일정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인근 맛집 - 오복식당>

서부시장 골목 뒤 오복식당(사천시 동동 184-2, 055-833-5023)은 제철 해물로 한 상 차려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메뉴도 해물정식(1만 원)뿐이다.

그때그때 메뉴가 바뀌니 새삼 기다리는 것도 즐겁다. 멍게와 해삼, 빙어와 숭어 등 싱싱한 해물들이 상에 놓였다. 쫄깃하면서 탱탱한 맛이 입안을 채운다.

시장을 휘둘러보며 눈만 즐거웠다면 이번엔 입이 호강이다. 밑반찬들도 봄과 바다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굴무침, 살이 도톰하게 오른 갈치구이, 장어구이, 봄나물들. 젓가락만 바빠진다.

쑥과 시래기로 끓인 된장국과 돔 매운탕이 상 위에 올랐다. 숟가락으로 한 움큼 떠지는 보드라운 돔살을 얼큰한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정갈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맛이다.

오봉식당 해물정식./최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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