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 기자가 추천하는 경남여행]산청 탑동에서 남사마을까지

산청에는 신라시대 지었다는 단속사터가 있는 탑동과 옛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남사마을이 있다. 이번 걷는 길에는 처음과 끝에 이 둘이 달려 있다.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담아 놓은 여정이다.

12월 4일 아침 8시 30분 산청 단성면 소재지에 가 닿았다. 10분 남짓 단성 장터 일대를 돌면서 시골 번화가 그럴 듯하게 남은 모습을 눈에 담다가, 8시 50분 즈음해 탑동 마을을 거쳐 청계리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찻삯은 1400원이고, 시간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탑동 가는 진주에서 출발해 단성을 거치는데, 하루에 오전 8시 50분, 오후 1시 40분, 5시 15분, 7시 55분(단성 기준) 넉 대밖에 없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왼쪽이 서탑).

마을 앞에는 석탑 둘이 나란히 서 있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인데 동네 어른들은 그냥 수탑과 암탑이라 이른다. 동탑은 꼭대기 머릿돌이 거의 깨어지지 않아 관(冠)을 쓴 것 같아 수탑이고 많이 깨어진 서탑은 모자를 쓰지 않은 민머리 같아 암탑이다.

탑 뒤쪽 민가 있는 자리가 금당터인데 아직 주춧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이른바 정당매(政堂梅)가 있다. 고려시대 단속사 들어와 공부하던 강회백과 회중 형제가 심은 매화로 640년 가량 됐다. 강회중의 벼슬이 정당문학이었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바람 불면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단속사지 당간지주.

탑동은 느낌이 아주 좋다. 조용하고 그윽하고 아늑하다. 바깥에서는 차게 몰아치는 바람도 여기 들면 잦아들 것 같다. 햇살도 따사롭게 내리쬔다. 남향이면서 동쪽으로 트여 있고 서쪽 산이 높지 않은데다 마을이 둘레보다 봉곳하게 솟아 있는 지형 덕분이겠다 싶다.

어쨌거나 단속사(斷俗寺)는 말이 좋아 속세(俗)와 끊어졌지(斷)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신라 경덕왕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는 얘기나 고려시대 왕사(王師)였던 스님 탄연(坦然)을 기리는 탑비가 여기서 수습된 점이 그렇다. 속세 권력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절인 배추를 흐르는 냇물에 씻고 있는 일가족.

벼슬을 노리고 공부했을 이들이 심었다는 정당매도 속세와 끊어지지 않았던 증거가 되고 마을 들머리 시비에 새겨져 있는, 남명 조식이 여기를 찾아온 사명대사에게 줬다는 한시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석가모니 원래 가르침에는 속세와 속세 아님의 구분이 없으니 단속이니 아니 단속이니 하는 자체가 시빗거리는 될 수 없는 노릇이겠다.

단속사지가 있는 탑동 마을 한 집의 농기구 창고. 무청이 널려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눈맛을 즐긴 다음에는 아래쪽 소나무 우거진 데로 나아간다. 곧게 선 잘 생긴 당간지주가 둘레 풍광과 잘 어울린다. 잠시 노닥거리다 옆으로 눈길을 주면 사람들 심은 무들이 머리가 잘린 채 널려 있다. 잘라낸 무청들은 커다란 포대에 담겨 있다.

아스팔트길로 내려가 내처 걷기 시작한다. 아래쪽 운리마을 너른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한 대 와 있다.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고 싶은 일행들은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배낭을 고쳐 멘다. 조금 더 가다가 마을 하나를 오른편으로 넘긴 다음 남사천을 따라 나 있는 둑길로 올라선다.

둑길 따라 늘어선 갈대. 꽃술을 털어낸 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둑길은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다. 얼마 못 가 둑이 끊어지고 길도 끊어진다. 여기에도 즐거움은 있다. 푸른빛이 비치는 하얀 바위들이 좋고 호암(虎岩)마을 주민들 기우제단도 있다. 크지는 않지만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도 하나 있다.

물가에 늘어서 있는 갈대들도 괜찮은 볼거리다. 하얗게 꽃을 피웠던 자취를 말끔하게 털어냈다. 꽃술이 보풀보풀 일었을 때는 모든 갈대가 다 그럴 듯하지만, 그 꽃술을 제때 털어내지 못하면 곧바로 아름답지 못하게 된다. 때가 되면 머물지 말고 떠나야 하며, 때가 되면 붙잡지 말고 놓아야 하는 것이다.

광제암문.
둑길 끊어지는 데서는 아쉬움을 품지 말고 곧바로 논두렁을 타고 아스팔트길로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헛고생만 하게 된다. 나와서 내달리다 보면 왼편에 단층짜리 건물인데도 '오시면 기분 좋은! 포장마차'라는 간판이 걸린 집이 나온다. 야트막한 고개 즈음인데, 오른편에는 잘 자란 정자나무가 심겨 있다.

물론 스쳐지나가도 그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놓치면 아까운 물건이 오른쪽 개울가에 있다. 정자나무 뒤 끊어질 듯한 오솔길을 따라 30m 정도 내려가면 선돌이 하나 있고 개울로 내려서서 비탈 쪽 바위를 보면 왼쪽 위에 '廣濟岩門'(광제암문) 네 글자가 단정하게 새겨져 있다. 옛날 단속사의 출입문인 셈인데 '넓게 구하려고 드나드는 바위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개를 넘으면 입석리 용두마을이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둑길을 걷는다. 들판 툭 트인 시원함과 쏟아지는 햇살이 주는 따뜻함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김장철을 맞아 절인 배추를 흐르는 냇물에 씻는 요즘 보기 드문 장면도 마주친다.

여기 둑길은 앞에 둑길보다 길기는 하지만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마찬가지 논두렁을 타고 아스팔트길로 나와야 한다. 아스팔트길도 걷기 좋은 시골길이다. 그러다 지리산 중산리 올라가는 국도와 이어지는 다리가 나오면 왼쪽 둑길을 탄다.

남사마을 풍경.

둑길 끝에는 남사마을이 달려 있다. 옛집 구경하기 즐기는 이라면 남사마을에서 몇 시간이고 전혀 지겹지 않게 보낼 수 있다. 조선 후기 신분 상승 욕구를 도드라지게 내보이는 부농들의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는 곳이다.

밥집에 들어가 떡국을 한 그릇 사 먹고는 단성 나가는 버스(1200원)를 1시 정각에 탔다. 진주 또는 부산과 중산리 또는 대원사를 잇는 버스가 여기 남사 마을에 30분마다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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