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39) 문찬인 하동군 기획감사실장

"30년 정도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공무원이 제 적성에 맞지 않다고 쭉 생각해 왔는데,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대뜸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는 문찬인(59) 하동군 기획감사실장.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장님 같은 분이 그렇게 오래 공무원 생활을 하셨는지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옆에 있던 이종현 홍보계장이 끼어들며 거든다.

문 실장은 올해 12월 말 명예퇴직을 앞둔, 군대로 따지면 말년 병장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미남형 얼굴, 젊은 시절 뭇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을 법한 모습이다.

그는 외모와 달리 업무만큼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그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철저한 업무 스타일이 바탕이 돼 행정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기획감사실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된 것이 아닐까.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직 옷을 입기 전, 그는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대업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성군 옥천사에서 절치부심했던 3년간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7급 공무원 시험이었다. 1980년 창원시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이후 승승장구했다.

23년간 창원시에 근무하면서 주로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굵직굵직한 일들을 해결해 내면서 인정을 받았고, 일명 '기획통'으로 공무원 내부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지금의 창원경륜공단이 있게 한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다.

10년 전, 하동군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여러 부서를 거치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현재 하동군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인 '야생차축제'는 전국 우수축제에서 최우수축제로 선정됐는데, 그가 문화관광과장 시절에 이룬 성과다.

하동 악양을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제안한 것도 그다. 특히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1년 넘게 진전이 없었던 양보면 분뇨자원화 시설 건립은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존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떠나, 주민들 입장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믿음과 신뢰를 쌓았던 그가 가진 소통의 철학이 통한 것이었다.

작년 7월, 그는 선출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부군수 다음으로 높은 자리인 기획감사실장을 맡게 된다. 하동에 전혀 연고가 없는 외지인에게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사였다.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제 아내가 유방암에 갑상선 항진증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어 하동으로 왔습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 안 한 게 있는데, 음…. 개인적으로 마음의 수행을 해야겠다,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그런 공부를 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죠. 지리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하동은 신령스러운 땅입니다. 그래서 하동을 선택했습니다."

창원시에 계속 근무했더라면 탄탄대로를 걸었을 그가 돌연 모든 걸 포기하고 하동군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이유가 그랬다.

창원시에서 근무했던 44살 무렵, 고성 문수암에 잠깐 들른 것이 그의 삶의 궤적을 바꿔 놨다. 문수암에서 기도하던 중 형언할 수 없는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 후, 직장 외 모든 삶을 불교에 투신하는 고행의 길을 택한다.

불교대학에 이어 서울에 있는 법사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을 거쳐 2006년 '법사'라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풍수지리, 음양오행, 주역, 도교, 동양학 공부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는 그이기에 맨 처음 언급한 대로 퇴직을 앞두고도 공무원 옷이 여전히 어색하다고 했다.

그의 호는 '도미'다. 순수 우리말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말뜻과는 달리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직접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공무원, 지인 사이에서 일명 '도인'으로 불리는 그는 그동안 몸으로 익히고 책으로 습득했던 것들을 모아 동양학 관련 책을 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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