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어서

활기를 토해낸 너른 마당,

씨앗 심어

길러낸 초록 꿈들.

분성산 둘레둘레

맑게 울리는 풀들 사이로

불 밝힌 초롱들아,

찰진 바람 솎아

흙으로 빚어낸

곱디고운 소녀들아,

하늘에 별을 던져 심듯

가슴에 사랑을 뿌려 심고

바람보다 너그럽게

달빛보다 은은하게

그릇 하나 빚어보자.

무엇이라도 품어도 좋을

옷깃 하나 지어보자.

 

자신을 사랑하되, 주변에 대한 너그러움을 잊지 말자.

저마다 각기 다른 그릇을 빚어가며 살아가다보면 때론 불안하게, 때론 아파하며 자랄 것이다. 또한 아무 것도 담지 못해서 텅 비어 버린 날들도, 세찬 바람을 솎아내지 못해서 부서질 것 같은 날들도 오겠지만, 그날들이 너희들의 그릇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

-2012.6.5 시 노트 중에서

이번 학기에 실릴 학교신문의 여는 시를 쓰면서, 나는 문득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마다 시의 언어로 지어지곤 했다. 감정에 들뜨고 표현이 거칠긴 했지만 돌이켜 보면, 풍만한 시세계를 가졌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의 가슴 한번 흔들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앉아 시 한 편 쓰려고 하는데도 이제는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서른이 되어서 좋은 것은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서 실수를 덜 하게 된 것이다. 신중해지면서 잃을 것은 적어지고 편안해지는데, 달아오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에도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수업시간에 간혹 만나는 텅 빈 눈동자를 제대로 위로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이 기회를 통해 그 애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애틋한 마음보다 질책만 잔뜩 늘어놓은 건 아닌가 싶다. 정작 나 자신은 주변에 너그럽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조금 울적해지는 오후이다.

/심옥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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