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박성면 NH농협은행 경남본부장

박성면 본부장은 키가 1m80cm로 장신이다. 성격은 차분하다. 부인 조준선(52)씨와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질문을 하자 “금융인이 아니라고 봐야지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창원 사파대동 29평 5층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부인은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 소원이다. 딸은 SK네트웍스에서 의류디자이너로 일한다. 아들은 인하대 나노시스템공학과 3학년이다. 공대생인데도 피아노에 심취해 교내 콩쿨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불교를 믿는다. 가끔 금강경을 베껴 쓰는 것으로 마음공부를 한다. 테니스와 바둑이 수준급이다. 술은 잘 못하지만 분위기 따라 마신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는 편지를 쓴다.

농협중앙회가 지난 3월 구조개편하면서 금융부문이 농협금융지주로 분리되고 NH농협은행 경남본부가 설치됐다. NH농협은행 경남본부를 이끌고 있는 박성면(55) 본부장.

그의 이야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해’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를 키운 8할은 '남해'인 듯 싶다.

박성면 본부장./박일호 기자

본적이 남해군 고현면 남치리인 박 본부장은 2009·2010년 농협중앙회 남해군지부장을 지냈다. 고향에서 훗날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통상 고향 기관장으로 부임하는 것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다. 민원은 많고 잘해도 좋은 소리 듣기가 쉽지 않은, 잘해야 본전인 자리가 고향 기관장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강 이남에서는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인 창원중앙지점장을 지낸 그는 시지역 지부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남해군지부장을 자원했다.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부친 박동식(85·작고) 씨가 작고하기 전 “니는 군지부장은 못하나? 남해군지부장은 안되나?”하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부친은 창원중앙지점장이 남해군지부장 보다 한 급수 위라는 것을 모른 채 막연히 자식이 고향에 와서 기관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박 본부장은 부친이 이미 작고했지만 창원중앙지점장 임기가 끝나자 시지부장을 마다하고 남해군지부장으로 부임했다. 박 본부장은 남해군지부장으로 부임하면서 농협 선·후배들에게 ‘군지부장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부장시절, 남해향토장학회 자동이체완료로 실질적 가동

박 본부장이 남해에서 먼저 시도한 것이 남해군기관장협의회를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남해군기관장협의회는 군수를 비롯해 군내 기관장 40여 명이 참여하는 협의회였는데 박 본부장이 손을 데기 전까지는 보통 시·군에 있는 통상의 기관장협의회와 같았다. 하지만 남해군기관장협의회는 그가 총무를 맡은 이후로 전례없이 활성화됐다. 그는 1대1로 개별 기관장을 만나거나 소모임을 여러 개 따로 만들어 다른 기관장들이 총무 얼굴을 봐서라도 정례회에 불참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 협의회 정례 모임도 모여 앉아서 식사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참석자 전원이 자전거를 타고 남해를 둘러보고, 무인도를 탐사하거나 군내 사찰에서 1박2일 사찰 체험을 하는 등 지역을 느끼고 체험하도록 했다. 그런 과정에서 군내 현안을 공유하고 머리를 맞대 집중적으로 해결점을 찾도록 했다.

시골이라 과외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남해교육청이 만든 ‘별빛마을’에 명문대 출신 향토대대 사병과 남해경찰서 의경이 참여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도록 한 것도 남해군기관장협의회 산물 중의 하나다.

박 본부장은 남해군기관장협의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박성면 본부장./박일호 기자

“만약 전국 기관장협의회 경진대회 같은 것이 있다면 남해군기관장협의회를 출품하고 싶다.”

경남 도내 지자체 중에서 남해군향토장학회 만큼 군민과 출향인의 참여가 높은 곳도 드물다. 군민과 출향인 참여 열기에 불을 지핀 이들 중 한 사람이 박 본부장이다. 당시 남해군향토장학회에 장학금 기부 통장자동이체제도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가 남해군지부장으로 부임하고 보니, 제도만 있을 뿐 단 한 사람도 자동이체를 신청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먼저 군지부 직원들을 설득해 5000원, 1만 원씩 자동이체신청을 하도록 하고 다음은 지역 농협 조합장과 전무·상무를 만나 자동이체신청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모두들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거듭 이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270여 명 남해 군내 농협직원과 출향 농협직원들이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그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자동이체 신청서를 모두 모아서 정현태 남해군수에게 전달하고 언론에도 이를 알렸다. 이 소식이 퍼지면서 교육청, 경찰서 등 군내 여러 기관이 자동이체 신청에 동참했다.

박 본부장은 “우리 남해군민과 출향인을 합치면 50만 명입니다. 그 중에서 1%인 5000명이 매월 1만 원씩 장학기부금을 자동이체 하면 매년 6억 원씩 장학금을 모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거액 기부금도 뜻이 있지만 군민들이 1∼2만 원씩 십시일반 모은 장학금은 더욱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도 더 뜻 깊게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지난 달 경남본부장이 되고 나서 고향 남해를 방문했을 때 정현태 남해군수를 만나 1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것뿐이랴. 그는 아들이 군 복무 기간에 월급을 모은 돈 중에서 30만 원을 떼어서 남해군향토장학금으로 내놓도록 했다. 아들이긴 했지만 강제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남해에서 나고 자라서 농협에서 일을 해 먹고 살게 됐고 지금 이 만큼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남해 덕분이며 그런 아버지 밑에서 너도 공부하고 있으니 힘들게 모은 돈이지만 일부라도 장학금으로 내놓으면 어떨까 싶다.”

아들이 그의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동의했다.

그의 부친은 이미 작고해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그의 큰아버지는 1억 원을 남해군향토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보면 3대가 향토장학금 모으기에 참여한 셈이다.

매출·생산량 전국1위 ‘남해시금치’도 공들인 작품

박성면 본부장 석사학위 논문.

일반적으로 ‘남해’ 하면 마늘을 떠올리지만 시금치도 유명하다. 요즘 대형할인매장에서 팔리는 시금치 중 상당수는 남해산이다. 박 본부장이 남해군지부장 시절 많은 공을 들인 사업 중의 하나가 시금치였다. 시작할 때만 해도 남해 시금치의 연간 생산액은 70억 원 정도였지만 농협이 꾸준히 계약재배를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대형매장에 부침없이 시금치를 공급하면서 거래량이 급격하게 늘어나 지금은 연간 200억 원의 매출과 생산량 전국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창원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는 박 본부장은 지금도 중요한 술자리에는 남해 특산물인 흑마늘진액을 들고 나타난다. 남해 흑마늘진액과 소주, 맥주를 적정한 비율로 섞어 만든 ‘남해흑진주’를 돌리며 드러내놓고 남해사랑을 과시한다. ‘남해흑진주’는 맥주컵에 맥주를 5분의 3정도 붓고 소주 반잔과 흑마늘진액 반 잔을 더한 술이다. 마시면 흑마늘진액 때문에 한약 맛이 나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은 한약을 마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칭찬이 이어지면 “남해가 아니면 이런 술 못마신다. 다 남해 덕분이다”라고 자랑을 한다.

박 본부장의 ‘고향 남해 사랑’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스럽다. ‘뼛속 깊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일에 철저하지만 인간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람개비가 있는데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그렇면 어떻게 해야 바람개비가 돌겠습니까? 당연히 바람개비를 들고 뛰어야겠지요. 지금 시대는 가만히 앉아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시대가 아닙니다. 돌지 않는 바람개비는 쓸모가 없습니다. 항상 변화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박 본부장은 최근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도내 유명기업 대표로부터 농협을 불신하는 말을 들었다. 보통의 기관장이었다면 기분 나빠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그 자리에서 얼굴을 붉혔을 법하지만 박 본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기업인에게 농협을 제대로 알려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박 본부장은 세계 협동조합의 역사와 기능부터 우리나라 농협의 존립 근거와 우리사회에서 농협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까지 상세한 설명 자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해당 기업대표를 직접 찾아가서 준비한 자료를 놓고 브리핑을 했다. 박 본부장의 브리핑을 받은 기업인은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며 앞으로 농협이 하는 일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성면 본부장./박일호 기자

지점장도 아닌, 경남 도내 전체 NH농협은행을 대표하는 본부장이 기업인 한명을 위해 직접 브리핑을 한 전례는 없었다.

박 본부장은 “농협 사람으로서 우리 농협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자세하게 설명을 드려서 바로 알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그 분도 우리 농협은행에게는 소중한 고객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부장이라고 해서 폼만 잡고 있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박 본부장은 2002년 창원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쌀 상표자산의 영향요인과 성과변수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석·박사 논문은 검정색 양장으로 책자를 만들지만 박 본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 본부장은 지도교수에게 논문집을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일반녹색표지 가운데에 잘 익어 고개를 숙인 벼 사진을 넣었다. 기왕 만드는 논문집이라면 검정색 양장으로 불필요하게 무게 잡을 것 없이 보기에도 좋고 일반인도 호기심을 갖고 펼쳐볼 수 있는 논문집을 만들어야겠다고 박 본부장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창원중앙지점장 시절, 지점에서 일하던 계약직 여직원 3명이 정규직 시험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부지점장이 찾아와 엿과 격려금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에게 건의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지점장은 편하면서도 생색을 낼 수 있어 좋지만, 시험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 있는 그들에게 그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면접시험 하루 전날, 이들 여직원 3명에게 면접 복장하고 출근하도록 하고 자신이 직접 면접관이 되어 면접 연습을 시켰다. 그 결과 여직원 3명이 모두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박 본부장은 “고객이든, 누구든 상대방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고객만족이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기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자신의 일에서 ‘변화와 능동’을 화두로 삼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온 박 본부장은 “일에는 철저하지만 인간미가 있는 사람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것이 작은 바람이다”라며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키기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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