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진해식 선술집 '이대포 생선구이'

문득 마산, 통영 등의 술 문화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주인장 맘대로 안주를 내주는 통술과 다찌가 좀 일방적이라면, 각자 취향에 따라 안주를 이것저것 골라 먹을 수 있는 이런 술 문화가 더 ‘진화’된 것이 아닐까.

주머니 사정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꼬막무침, 털게에 막걸리나 소폭 한잔, 뭐 이 정도면 몇 시간은 너끈하지 않겠는가.

1만 원 짜리 안주라고 얕보지 마라

알고 찾아간 집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애초 블로거 실비단안개 님이 소개해준 진해 경화시장의 한 선술집에 가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집은 수리 중이었다. 별 수 없이 다른 식당을 기웃거렸다. 다행히 시장 안에는 ‘대포’라는 간판을 단 선술집이 서너 곳 보였다. 그 중 한 곳이 ‘이대포 생선구이’였다. 실비단안개 님의 블로그에 올려진 ‘꼬막 무침’ 메뉴도 있었다. 우선 그것부터 시켰다. 한 접시 1만 원.

이대포 메뉴표./김구연 기자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1만 원 짜리 안주에 뭘 기대하랴. 못 먹을 정도만 아니길….’

기다리는 동안 밑반찬이 깔렸다. 달래무침과 깍두기, 빨간양파, 생배추 등이 깔끔했다. 막걸리를 두 잔째 마실 무렵, 도자기 접시에 수북이 담긴 꼬막 무침이 나왔다. 한 눈에 봐도 탱탱하고 속이 꽉 찬 꼬막은 살아있는 걸 바로 삶은 게 분명했다. 싱싱한 꼬막 자체의 맛을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삼삼한 양념도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가늘게 썰어 함께 무친 양파도 신선함을 더해줬다. 이게 1만 원이라니. 동석한 세 명의 빠른 젓가락질에 금방 접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인장에게 물었다.

-뭘 하나 더 먹으려는데, 이 집은 또 뭐가 맛있죠?

“오늘 아침 들어온 털게도 괜찮고….”

-그걸로 주세요.

바닥에 남은 양파까지 싹 쓸어먹을 즈음,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털게가 나왔다. 어린애 주먹만한 게 다섯 마리였다. 뚜껑을 벗기려 한 마리를 집어들었다.

“앗! 뜨거.”

털게./김구연 기자

금방 찜통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뜨거울 수밖에…. 조심스레 뚜껑을 벗기고 다리를 찢었다. 비싼 꽃게에 비할 순 없겠지만, 꽤 먹을 게 있었다. 털게가 꽃게보다 좋은 건 껍질이 부드러워 손으로도 쉽게 분질러 먹을 수 있다. 뚜껑에 붙은 알과 내장, 다리의 살까지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도 역시 1만 원.

그제서야 메뉴판을 둘러보니 갈비찜(2만 원), 삼겹수육(2만 원), 호래기회(1만 5000원), 생도다리조림매운탕(1만 5000원)를 빼곤 모두 1만 원이다. 가오리회무침, 골뱅이회무침, 더덕무침, 도루묵조림, 동태찌개, 아구내장수육, 병어회, 생선모듬구이 등이 그렇다. 고갈비(고등어구이)와 명태전, 해물파전은 각 7000원이다. 식사도 된다. 생선구이나 돼지불고기 정식이 6000원이고 바지락칼국수는 5000원이다.

이대포 메뉴표./김구연 기자

매일 아침 직접 시장 가서 좋은 물건 고른다

한쪽 벽에 보니 '오늘의 추천메뉴'도 안내해놓고 있다. 생가자미조림(1만 원), 피조개(1만 원), 우럭매운탕(1만 원), 장어구이(1만 원), 자연산 우럭구이(1만 원)도 있다.

이걸 다 먹어볼 순 없고 마지막으로 생선모듬구이를 시켰다. 가자미와 옥돔, 고등어, 조기 등 그리 크진 않은 다섯 마리가 나왔다. 생선의 종류와 마리 수는 철따라, 시세따라 다르다고 한다.

세 명이 막걸리 세 병을 비우고 일어서니 총 3만 9000원이었다. 나오면서 보니 과연 플라스틱 통에 살아있는 꼬막과 털게가 거품을 뿜으며 숨쉬고 있었다.

이대포를 운영중인 신순자(53) 씨./김구연 기자

-매일 아침 시장에 다녀오시나 봐요?

“예, 마산 어시장에….”

-여기서 몇 년이나 장사하셨나요?

“3년이요.”

-그런데 안주 하나에 1만 원씩만 받으면 남는 게 있나요?

“사람을 안 쓰고 인건비가 안 드니까. 좋은 것 눈으로 보고 싸게 사오니까….”

-혼자 하시나요?

“저녁에는 아저씨가 도와주고…. 낮에는 혼자 하고.”

-아침 시장에는 몇 시에 가시나요?

“여덟 시~여덟 시 반쯤 갔다가 시장 봐오면 열시 반쯤.”

-그 때부터 손님을 받나요?

“준비해야 하니까 점심 식사부터 밤 열두 시까지.”

-그러면 마치고 씼고 자면?

“두 시쯤 잠들죠.”

-그렇게 자고 아침 여덟 시에 시장 가고 하려면 힘들텐데.

“그래서 여기서 잡니다. 힘들긴 하죠.”

-3년이면 그리 식당을 오래 하신 건 아닌데, 식당은 왜 시작하셨죠?

“그냥. (웃음)”

-그 전에는 뭐 하셨는데요?

“우리 아저씨하고 같이 일했죠. 아저씨가 이발소 하는데, 아파서 많이 까먹기도 했고, 요즘은 또 이발소 손님이 없잖아요. 다 미장원으로 가고…. 그래서 제가 식당을 하게 됐죠.”

인터뷰하는 김주완 편집장과 신순자 씨./김구연 기자

-그런데 오늘 안주를 먹어보니 만 원씩 받을 게 아니던데.

“그렇지예? 그런데 우리 경화시장은 어쩔 수가 없어요. 시장이라는 게 비싸게 받을 수가 없어요. 촌에 어른들 와서 먹고 하는데, 너무 비싸게는 못 받겠어요.”

-어른들이 많이 오나요?

“아니,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오긴 해요. 20대, 30대, 40대에서 50·60·70대까지 오시는데…. 그래도 좀 올린 거예요. 명태전은 5000원 받다가 지금 7000원으로 올린 거죠.”

-아까 우리가 먹었던 꼬막은 어디서 사 오신 건가요?

“그것도 어시장에서 사왔죠. 우리가 가면 단골이다 보니 물건이 좋은 걸 줘요. 우리가 직접 갈 때는 좋은 물건 사려고 가는 거죠. 단골이라도 주문을 시켜보면 꼭 안 좋은 걸 보내요. 그래서 직접 가면 좋은 걸 가져오죠. 아구 내장도 우리는 만 원 받지만, 다른 데 가면 2만 원, 3만 원씩 해요. 그래도 올릴 순 없는 게 차라리 양을 줄였으면 줄였지 가격은 올리기 힘들어요. 그 대신 내가 바쁘지.”

이대포 입구./김구연 기자

-그렇군요.

“이것 해주고 저것 해주고 다 하려면…. 보통 네 명 정도 앉으면 하나, 둘 먹고 가는데, 많이 먹는 분은 다섯 가지, 여섯 가지 먹는 분도 있거든요. 그러면 내가 엄청 바쁘죠.”

이쯤에서 기자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지금은 바쁜 것 같으니 언제쯤 편할지 물었다. 하지만 주인 신순자(53) 씨는 극구 사양했다.

“그런 데에 나오면 인식이 더 나빠지더라고요. 신문이나 방송 타고 나면 항상 잘 하다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인식이 더 나빠질 수 있어요. 안 그래도 미식가 동호회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인터넷에 올리고 휴대폰, 내비게이션에도 올려준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와가지고 그날 음식이 좋으면 괜찮은데, 혹시나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 동호회 사람들이 나쁘다고 올려버리면 엉망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무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어요.”

-그 동호회라는 곳에서 혹시 돈을 요구하진 않던가요?

“얼마인가 달라고 하데요. 저는 거절했어요. 지금도 장사는 잘 되는 편이거든요.”

-저희 신문사는 그런 곳 하고 다르거든요. 어떤 시간이 편하시나요?

“지금 이 시간이 편하죠. 점심시간 지나고 서너 시쯤.”

고동우 기자(좌)와 김주완 편집장./김구연 기자

통술·다찌보다 우월한 진해식 선술집

바로 다음날 점심 때 회사 동료 둘과 함께 다시 찾았다. 경화 장날이었다. 신순자 씨의 남편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인근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그는 이렇게 짬짬이 아내를 돕는 듯했다.

다른 메뉴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함께 간 동료들에게도 꼬막무침과 털게 맛을 보여주고 싶어 그대로 시켰다. <경남도민일보>에 ‘초짜 애식가의 음식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는 고동우 기자는 꼬막에 대해 “무침보다 그냥 삶은 게 좋다”고 말했지만, 막상 맛을 본 후 ‘과하지 않은 양념’이라고 인정했다.

막걸리 두 병을 비운 후, 생선구이 정식 3인분을 시켰다. 생선 다섯 마리에 쑥된장국, 머위순무침, 물김치, 깍두기, 버섯무침, 오이무침, 마늘쫑멸치무침, 달래무침, 젓갈 등 10여 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내가 딱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시래기국처럼 된장을 풀어 끓인 쑥국은 밥 먹을 때 최고다.

고동우 기자는 이날 점심 회동 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꼬막무침 1만 원, 오른쪽 털게 1만 원, 점심용 생선구이 정식 1인당 6천 원. 참 착한 가격이다. 특히 서울 쪽에 비하면 거의 반값 수준이다. 쑥된장국도 예술이었다.

문득 마산, 통영 등의 술 문화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주인장 맘대로 안주를 내주는 통술과 다찌가 좀 일방적이라면, 각자 취향에 따라 안주를 이것저것 골라 먹을 수 있는 이런 술 문화가 더 ‘진화’된 것이 아닐까.

물론 한 후배님 말마따나 이건 특별한 술 문화가 아니다. 일본식 이자까야도 그렇고 소위 주점이니 뭐니 하는 집 모두 이런 식으로 술을 파니까.

하지만 해산물을 제대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술 문화를 생각해보면 통술이나 다찌와 비교를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술을 시키는 데 따라(다찌), 혹은 상 단위로 ‘통’으로 안주를 주는 것(통술)보다 훨씬 소비자 중심이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역사적으로 오래된 것은 통술이나 다찌(이건 일본말이고 일본 문화의 영향이 분명 있어 보인다)식이다. 과거엔 안주는 돈을 받지 않았고 술을 시키면 식당마다 ‘알아서’ 안주를 주는 식이었단다. 생각을 더 확장해보면 손님이 뭘 원하거나 말거나 통으로 상으로 음식을 파는 ‘한정식’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상업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주인장 입장에선 진해 이대포식보다 통술, 다찌가 편할 수 있다. 특히 마산이나 통영이 원래 수요자가 많았고 ‘당연히’ 술 문화가 발달했을 것이라 생각해보면 더욱 연관성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난 굳이 고르라면 진해의 대포가 좋다고 말하겠다. 특히 ‘이대포 생선구이’집은 그날그날 좋은 재료를 이용한 ‘오늘의 메뉴’를 메뉴판에 알려주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꼬막무침, 털게에 막걸리나 소폭 한잔, 뭐 이 정도면 몇 시간은 너끈하지 않겠는가.”

./김구연 기자

그의 말마따나 마산 통술, 통영 다찌, 진주 실비에 대항하는 진해의 술 문화로 ‘대포’를 키워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경화시장에만 이런 식의 대폿집이 서너 곳이나 있는 걸 보면 진해 특유의 술집문화로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오는 길에 사진을 찍으려 하자 신순자 씨는 한사코 정면 사진을 피했다. 신 씨의 남편도 손사래를 쳤다. 남편은 “저 사람(아내)이 주인인데 내가 뭘”이라며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참 수줍음이 많은 부부였다.

식당 바로 옆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있으며 아직 출가 전인 두 자녀가 있다고 했다. 아직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이유다. 설과 추석 명절 외엔 연중 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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