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언제나 내 삶은 실컷 잘 쌓아오던 강건한 옹벽을 '쩍' 하니 갈라놓는 균열의 틈으로 붕괴된 성을 다시 쌓고 쌓는 연습의 연속이었노라고, 그리하여 어느 한 순간에도 권태로운 어느 한 옹벽 성에서만 안주해오지는 않았노라고, 그렇게 적잖이 내 자신을 위로해본다.

3주간 병가를 얻었다. 심각한 질병은 아니나 오른발에 깁스를 해야 할 상황이라 김해에서 양산까지 출퇴근 운전을 할 수 없음이 병가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이다.

교직 15년차에게 처음 있는 일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이 중간의 '쉼'이 내게 여간 신기하고 낯선 게 아니다. 기대도 사뭇 크다. 몸 건강도 건강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될 2~3주의 '쉼'이 어쩌면 의심 없이 이어오던 내 삶의 공고한 패턴에 어떤 균열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어서이다. 마치 건강하던 우리 신체를 갑작스런 교란에 빠뜨리는 사소한 감기바이러스처럼 말이다.

문득, 1930년대 흑백무성영화의 대표적 감독인 찰리 채플린, 그의 대표작 〈모던타임스〉가 떠오른다. 〈모던타임스〉는 돈과 기계에 구속되었던 자본주의 사회와 사람을 풍자한 코미디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공장에서 다른 인부들과 똑같이 하루 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을 하고 있던 찰리 채플린은 반복되는 기계적 노무로 인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조여 버리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정신이 이상해져서 정신병원까지 가게 되지만 우리들의 작은 영웅 찰리 채플린, 그의 탁월한 행위의 미덕은 정신의 혼미해짐을 핑계 삼아 강건한 공장기계를 마구 부수고 시스템을 어지러이 교란하는 장난스러움에 있다. 그야말로 그 떠돌이 방랑자, 찰리 채플린은 비인간적인 공간들인 근대적 옹벽의 성을 균열하고 붕괴하려는 감기바이러스와 같은 존재이다.

나는 소원한다. 내게 주어진 2~3주의 '쉼'이 의심 없이 반복되어 오던 컨베이어 벨트 공장과 같은 내 삶의 시스템을 균열하고 붕괴시켜주기를. 그리하여 또 다른 삶의 옹벽을 쌓아줄 수 있는 벽돌들 더미를 낳게 해 주기를.

문득 1994년 어느 봄이 떠오른다. 여대생 휴학이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 나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범생이던 내 삶의 옹벽을 균열하고 붕괴시키는 사고를 쳐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은 달라져 왔다. 또한 다시는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균열하고 붕괴시킨 것은 아니리라. 〈모던타임스〉에서 거리에 나선 찰리 채플린과 소녀는 어디론가 떠나버릴 수밖에 없게 되지만 그들은 절대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나 또한 오늘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절대 사람들 곁을 떠나려하지는 않는다.

/서은주(양산 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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