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첫 국회입성 거제 김한표(무소속) 국회의원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000년 2700여 표, 2008년 700여 표차로 석패했던 거제 무소속 김한표(57) 당선자. 김 당선자는 2012년 4·11 총선에서 세 번째로 출마했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거제에서 단 한 번도 의석을 놓친 적이 없던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진성진 후보,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야 3당이 단일화해 어느 때보다 야권이 파괴력을 갖춘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선거 기간 내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안이지만 단독 1위 혹은 공동 1위를 달리며 결국 당선했다.

거제 선거구는 상대후보도 만만찮은 저력을 드러내며 김한표 35.33%, 김한주32.96%, 진성진 31.69%의 최종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한표 당선자는 2위 김한주 후보와 불과 2.37%, 3위인 진성진 후보와도 3.37% 차이로 끝까지 박빙 승부를 벌였다. 개표율 90%까지 누구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살얼음판 승부였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런 살얼음판 승부에서 마지막으로 웃은 김 후보의 당선은 지난 1999년 거제경찰서장 부임 뒤 철저하게 바닥 민심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터를 닦아온 덕분이었다.

김한표 당선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같은 면이면서 이웃마을인 거제시 장목면 관포리에서 1954년 8월 8일 다섯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관포(冠浦)는 한적한 어촌으로 ‘갓 관(冠)’ 자를 써서 옛 어른들이 ‘마을에서 큰 벼슬이 나올 것이다’ 라는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

장목초교와 장목중학교를 나온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참 평범한 반농 반어촌 마을 아이였다. 학교 마치면 대청마루에 책 보따리(가방) 던져 놓고 친구들과 놀고, 저녁이 되면 몸이 온통 소금기에 절은 채로 돌아오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거제는 인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부산으로 유학을 가 동아고교를 졸업했다. 그 뒤 한국외대 행정학과에 입학해 서울 유학생활을 하고, 졸업 뒤 행정고시를 준비했었다. 그러다가 가세가 기울어 결국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경찰간부 후보생(31기)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첫 발령지는 공교롭게도 청와대 경호실 101경비단이었다. 청와대 발령은 그의 정치적 포부를 품게 한 인큐베이터였다. 중간에 일선 경찰서 경찰 간부로 일하기도 했지만, 전두환·노태우·김영상 등 세 대통령과 함께한 흔하지 않은 이력을 갖고 있었다. 선거 내내 그는 이 이력을 인맥의 기반으로 설명했다.

총경으로 진급한 그는 거제경찰서장으로 1998년 3월 부임하며, 정치 입문을 꿈꾼다. 그 첫 선거인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민국당 소속으로 당시 법무부 장관 출신인 김기춘 의원과 맞붙어 근소한 표 차로 떨어졌다.

그의 또 다른 강점은 이른바 ‘욕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고현지역 한 식당 주인은 “나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당원인데, 윤영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한 만큼 사람은 김한표 씨가 더 나은 것 같아서 누구를 찍을까 솔직히 고민이다”고 말했다.

옥포2동의 한 중년 여성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여기는 야당이 센 곳인데, 야당 후보가 밀린다는 얘기가 있어 ‘사람 좋다’는 김한표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른바 ‘사람 좋은’은 고현에 이어 옥포에서도 비슷했다. 대부분이 그를 ‘넉넉하고 사람 좋은 화합형 사람’으로 보는 거제지역 민심은 이번 당선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선거 유세 장면.

당선이 확정된 12일 오후 거제지역을 돌며 당선 인사 중인 그를 만났다. 그 만남에서 기자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연 경찰 입문, 청와대 근무부터 인생 제3막을 여는 국회의원 당선까지 그가 살아온 족적을 여러 물음으로 살펴봤다.

-청와대 경호실 경비단 근무를 시작으로, 세 대통령을 모시는 경찰로는 흔치 않은 이력이 있는데.

“간부후보생 교육 졸업 뒤 1984년에 청와대 지휘요원의 소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뒤 1988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뒤에는 진급해서 중대장으로 대통령 최측근 경호부대를 지휘했다. 잠시 청와대를 나왔다가 민자당 3당 합당 뒤 1990년에 민자당 최고위원이 되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 경비대장으로 발령받았다. 2년 정도 모시다가 다시 경감으로 진급하고서 부산으로 발령받았다가 그해 9월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 경찰 경호대장을 맡았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뒤에는 처음 청와대로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있다가 뒤에는 가족경호부장으로 일했다.”

-김 전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 씨가 이번 총선 출마를 계속 고집했다면 좀 그랬을 텐데.

김한표 국회의원./김구연 기자

“솔직히 김 전 대통령은 장목초교 대선배님이신 데다가, 평소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모셨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연출됐다면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괴로웠을 것이다.”

-1998년 거제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 거제에서 음주단속 한 번 안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당시 이미 정치에 뜻을 뒀기 때문인가.

“2000년 총선 때부터 나온 허위사실인데, 서장 당시 음주단속을 적지 않게 했었다. 다만, 예전보다 사전 예방활동에 주력한 점은 있었다. 상대 후보가 저를 트집 잡기 위한 풍문일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상대후보가 뇌물수수죄 유죄 판결을 줄곧 제기했다. 그런데 막상 시민들은 그런 제기에 대해 시큰둥하게 반응하더라. 그래도 유죄인데….

“거제시민들이 대부분 저의 억울함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진실 자체도 엉터리거니와 (김기춘 전 의원의) 정치적 보복이었다. 내용도 IMF구제금융을 맞아 짓던 집을 완공하지 못해 돈(5000만 원)을 빌렸고, 이자까지 포함해 다 갚아줬다. 그리고 지인에게서 빌린 1억 원도 다 갚아줬다. 결국, 검찰은 여러 번 공소장을 변경했고, 선고는 특가법이 아닌 일반법의 뇌물수수죄로 됐다.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이, 그것도 현직 경찰서장이 그게 뇌물이면 어떻게 수표로 받았겠나. 그게 말이 되나. 그런 억울한 점을 시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것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700여 표로 낙선했다. 선관위에 당선증을 받으러 가다가 도중에 돌아왔을 정도로 아쉽게 패했다던데, 당시 심정은 어떠했나.

“그때 정말 착잡했다. 그때도 정말 분위기가 좋았는데, 마음이 참 아팠다. 그러나 진인사대천명의 의미를 그 당시 제대로 새길 수 있었다.”

-그와 관련해 이번 선거에는 어떤 득표 전략을 짰나.

“당시 도시지역에서는 이겼다. 농촌지역에서 다소 열세였고, 부재자 투표에서 난 차이만큼 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살아온 인생을 통해 더 서민과 공감대를 확대하고자 했다. 제 자체가 서민의 삶이고, 시민들이 어렵지 않게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경찰서장 출신이자 대통령을 경호하던 이가 택시기사 6개월을 하며 함께 한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그게 주효했던 것 같다.”

-친서민적? 그래서인지 거제시민들 대부분 ‘사람 좋은 김한표’라고 했다. 지역민에게 정말 인심을 얻었던데 비결이 뭔가?

“앞서 얘기했듯이 일반시민, 즉 서민과 김한표는 닮은꼴이라고 많이 생각하신다. 소탈하고, 살갑게 시민과 만나려 했고, 격의 없는 인간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한 결과인 것 같다.”

-선관위에 제출한 재산명세가 -1184만 원이었다. TV토론회에서 상대 후보가 이를 두고 ‘생계형 국회의원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취지로 공격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돈벌이할 데가 없어서 국회 가겠나. 재산이 마이너스인 이유는 선거 후유증으로 뇌물수수죄 판결을 받고, 퇴직금을 환수당하면서 기존 빚에 이자가 붙으면서였다. 그 부분은 정말 억울하다. 한번 맞은 주홍글씨는 평생 간다는 것을 느꼈다.”

-여의도에 간다면 어떤 것부터 하고 싶나.

“뭣보다 우리 정치 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시키고 싶다. 특히 김선동 의원처럼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런 행동(최루탄 가스 터트림)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멱살잡이 같은 행동으로 국민의 눈살은 찌푸리게 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 돈 정치 청산도 마찬가지고.”

-선거 기간에 주요 공약으로 해양수산부 복원, 비정규직 문제 해소, 대우조선해양 매각 문제 해결 등을 얘기했다.

“우선 4면이 바다인 거제 특성상 해수부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부산지역 의원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는 이념 문제가 아니고, 저는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안다. 오히려 당적이 없어 이런 부분 입법 활동이 더 역동적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문제도 최우선적으로 그동안 회사 회생을 위해 고통 분담한 근로자들을 고려해서 해야 한다. 대자본이나 외국자본에 일괄매각을 있어서는 안 되고, 고가매각도 이뤄지지 않도록 힘쓸 것이다. 지분 분산형 전문경영인 체제가 바람직하다.”

-낙선자 두 분에게 얘기를 한다면

“두 분 다 일류대학교를 나왔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훌륭한 인재들이다. 이번 선거가 큰 탈 없이 잘 끝난 것에도 감사하다. 약간의 비방이 없지 않았지만 돈 선거가 사라지고, 상호 비방으로 난장판이 되지 않은 역대 거제 총선 중 가장 깨끗하고 조용한 선거였다. 이를 통해 거제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해졌다. 두 후보자와 거제 발전을 위해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댈 것이다.”

-유세 때 여러 차례 부인 이정숙(57) 씨가 우셨다. 부인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지난 12년간 정치적 아픔을 바로 옆에서 몸소 겪었던 이다. 소회가 어떻게 없지 않겠나. 세 번째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늘 감사하다.”

-새누리당 입당 여부가 선거 내내 입에서 오르내렸다.

“TV토론회에서도 밝혔듯이 현재는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게 시민의 요구이다. 다만, 국가 정치 발전이나 거제시민 요구가 정말 많을 때 그 뜻에 따라 그때 가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다.”

-끝으로 김한표는 거제시민에게 무엇인가?

“거제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희망이다.”

-희망인가? 희망이고 싶은가?

“수정하겠다. 희망이고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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