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첫 국회입성한 김해 민홍철(민주통합당) 당선자

새로운 인물에 기대려는 시민들의 변화의 열풍이 20년 정치관록의 현역의원을 눌렀다. 정치 초년생인 민홍철(51·민주통합당, 김해 갑) 당선자가 정치경륜과 관록을 갖춘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정권(새누리당) 전 의원을 눌러 이변을 연출했다.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여권이 강세인 텃밭이었다. 하지만 이번 민 당선자의 승리로 이곳은 야권의 새로운 정치적 전진기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경남에서 초선이 새누리당 후보를 꺾은 유일한 야당 국회의원으로 이름을 올림으로써 ‘야권정치적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도 관심 사안이다. 그의 당선으로 야당인 현 김맹곤(민주통합당)시장에 야당 국회의원까지 배출해 내 김해가 야권도시로 변화해가는 모습도 새로운 장면이다.

김해동광초등학교와 김해 중·고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석사)한 그는 낙선한 김정권 전 의원과는 김해고 1년 후배다.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도 유년시절에는 찌들린 가정의 ‘가난한 집 우등생’이었다.

아버지가 목재소에서 차상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일곱 식구가 단칸 셋방을 전전하면서 동생들과 함께 가난을 벗 삼아 자랐다. 쓰레기 더미에서 구리와 쇳조각 등을 주워 고물상에 팔기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한 번도 우등생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머리’는 타고 났다. 글짓기에도 재능이 뛰어나 학창시절에 김해 왕릉대회나 진주 개천예술제 백일장 등에 학교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녔다.

민홍철 당선자, 문재인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 김경수 김해 을 후보.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대학은 집 가까운 곳인 부산으로 택했다. 지금의 아내는 대학 때 첫 미팅에서 만나 가정을 이뤘다. 그는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23년을 군에서 보냈다.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뒤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상담을 통해 돈과 권력을 가진자들이 힘을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사례들을 접했다. ‘주먹보다는 법이 가까워야 한다’는 평소 그의 신조가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세상사 잡다한 이런 유형의 일들을 접하면서 서민과 약자계층 보호를 위해서는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계기가 그를 정치에 뜻을 두게 만들었다.

그는 정치적 꿈을 실현하려고 2009년 김해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법률 봉사를 매개로 시민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정치적 보폭을 넓혀갔다. 김해고교 총동창회장도 맡았다. 지연과 학연을 묶음으로써 사람들 간의 간격도 점점 좁혀나갔다. 이런 삶의 궤적을 통해 정치적 야망을 현실로 이어갔다.

그는 한때 새누리당 성향의 인물로 분류됐다. 전 한나라당에 입당과 탈당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중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입당 ‘러브콜’을 받았다.

정치적 방향을 선회하기로 마음먹고는 민주통합당 정책부위원회 부의장 직책을 맡았다. 이번 총선 후보에 나서면서 민주통합당 박영진 전 경남경찰청장과 정영두 전 청와대 행정관을 경선을 통해 차례로 무너뜨렸다. 이후 통합진보당인 전진숙 통합진보당 중앙위원과 야권단일화 후보경선에서도 승리해 마지막 야권단일후보가 됐다. 정치 걸음마 수준이었던 그가 이런 정치적 걸림돌을 모두 뛰어넘고 순탄해진 데는 전적으로 새로운 인물에 대한 김해 시민들의 높은 갈망이 한 몫을 했다.

‘싸움 없는 국회’에 일조할 것

민홍철 당선자./김구연 기자

그는 강인한 군인정신과 법관의 합리적 성품으로 선거기간 내내 지역민들의 호감을 받았다.

오랫동안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제19대 국회에서는 군인인권법을 꼭 만들고 싶다는 야망도 드러냈다.

“국회상임위원회 중에는 어떤 의원들보다 실무와 전문성을 갖췄다”며 “국방위원회나 법사위원회에 들어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여러 법률을 만들고 손질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치 대선배(김정권)를 상대로 경쟁을 펼쳤다는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을 했다. 선배의 낙선에 솔직히 인간적으로 안 된 마음이 든다”며 선·후배 간의 불편한 심경을 털어놨다.

하지만 “김해시민들이 정치적 관록 면에서 크게 부족한 저를 선택한 데는 싸움판 폭력국회에 대해 싫증이 난데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들의 열망을 바탕삼아 국회에 들어가면 정치변화를 통해 ‘싸움 없는 국회’로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며 나름대로 정치적 신념과 결단력도 보였다.

“일을 할(지지) 기회를 줬는데도 제대로 일을 안 하면 유권자들이 가차없이 표로 심판한다는 냉엄한 현실도 이번 선거를 통해 알게 됐다”며 “김해 발전을 위해 내놓은 공약을 실천하는데 올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승리에 대한 시각도 남달랐다. 종전까지는 말만 잘하던 영웅이 주로 당선됐다면 이제는 진실하고 성실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보통(선량의)사람’들이 당선되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요약하면 시민과 한 약속을 잘 지키는 의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승리 보답은 서민·약자 위한 정치

민홍철 당선자.

그는 이번 선거승리는 “제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김해를 바꿔야 한다는 김해시민의 승리…”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서민과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하라는 명령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보답하고자 법과 원칙이 바로 선 대한민국 정립, 언제나 시민과 소통하는 국회의원, 성실하고 겸손한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법률전문가답게 이론보다는 실현성에 무게감을 뒀다.

그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이른바 ‘사람 사는 세상’처럼 ‘다 함께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것은 곧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세상에다 가진 자의 배려심 등으로 요약된다.

그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해 준 잊지 못할 분들에 대해 한분 한분씩 나열했다. “이들에 대해 어떻게 빚을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슴속에 항상 무거운 돌비석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국회의원자리까지 오른 데는 부모와 아내, 가족 이외에 학창시절 때 인생 진로의 ‘멘토’였던 담임선생님을 보은의 대상 1순위로 꼽았다.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공고에 진학하려 했는데 저의 뺨을 후려치면서까지 인문계 고교로 가게 한 중3 때 담임선생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날 저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그는 쉬운 길보다 어렵더라도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강조했다.

김해고교 1년 때 담임선생님도 그의 가슴 한켠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공부에만 올인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사실을 안 담임교사는 그를 김해 어느 독지가와 결연을 맺어주었다. 당시 그의 독지가로 나선 사람은 약국을 경영하는 부부였다. 이 부부는 고교와 대학졸업 때까지 학비와 책값 용돈까지 대 주며 그를 친아들처럼 보살폈다. 민 당선자는 “이런 고마운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세상 빚 갚는 자세로 일하겠다

그는 세상에 진 빚을 앞으로 이자에 이자를 쳐서 갚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노인과 힘없는 약자 편에 유난히 배려심과 관심이 많다. 보통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게 법이다 보니 법률 봉사에 올인하고 있다. 김해노인대 법률고문에서부터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고문변호사, 지체장애인협회 김해시지회 인권위원장을 맡는 등 그만의 사회적 약자 북돋우기 운동에도 열성을 바쳐오고 있다.

아직 그는 정치적 때가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국회입성 후 기존 정치권에 편승해 기득권 정치인으로 동화될지 아니면 법률 전문가답게 김해 현안사업들을 법률적으로 풀어 해결사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민홍철 당선자는 선거 때 제시한 정책공약에 대해 자신감과 강한 실천감도 드러냈다. 공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행할지 인터뷰를 통해 짚어봤다.

-연간 700억여 원을 20년간 물어야 하는 시 최대 현안인 경전철적자부담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경전철부담금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 맺은 불평등계약이었다. 정부가 시범사업으로 추진해 놓고 적자부담금을 해당 지자체에 떠넘긴 것은 문제가 있다. 턱없이 부풀려진 예상승객수도 문제다. 시 예산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비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MRG조항 자체를 조정해 부담금을 인하하겠다. 이를 위해 상사중재나 강제성이 있는 소송 등을 통해 국비지원을 성사시키겠다. 또 적자부담금 지급기간도 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해 시가 어느 정도까지는 부담을 감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

-김해는 동서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 동김해 지역주민들의 불만요인이 되고 있다.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김해지역 개발이 불가피하다. 동김해 지역개발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안동공단 이전문제가 10년째 대물림하고 있다. 대책이 없나.

“일단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안동공단을 부분적으로 이전 가능한 지역부터 차례로 재개발하겠다. 재개발 지역에는 생명특화 연구개발단지와 주거지, 김해컨벤션센터를 건립해 고급 일자리 창출은 물론, 주거와 건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 동서 간 불균형을 개선해 지역 균형발전을 유도할 계획이다.”

-김해는 인구 50만이 넘는 대도시다. 앞으로 인구 80만 명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인구가 늘면서 여러 사건·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법조기관 등이 창원에 있어 김해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주민법률서비스 수혜를 위해 어떤 방안을 갖고 있나.

“50만 도시민의 법률수요를 수용하고자 동김해에 창원지검 지법의 김해지청 지원을 유치하겠다. 유치가 되면 2015년부터는 창원까지 갈 필요없이 김해에서 법률적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재벌개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1% 부자를 위한 경제정책과 부자들의 특권의식은 개선해야 할 사안이다. 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위해 출자총액제를 부활하고, 대기업 간의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겠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확대해 공정 경쟁을 통해 상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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