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율적인 가격 경쟁을 통해 물가안정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착한가격업소'를 지정하고 있다. 외식업, 이·미용업, 세탁업 등 서민생활과 관련이 많은 업종을 중심으로 전국에 3180개 업소를 선정했다.

작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에 최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전형적인 '관·언합작'의 결과다. 모 방송에서 짜장면을 990원에 판매하는 경기도의 한 식당을 소개했다. 경기도는 이 식당을 포함해 '착한가격업소 베스트 10'을 선정·발표 한다. 이어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짜장면을 시식한 후 자신의 트위터에 "990원 짜장면 맛있네요^^"라며 애교 섞인 멘션을 날렸다. 이전까지 잠잠하던 언론은 일제히 '990원 짜장면'으로 대표되는 착한가격업소를 소개하기 바빴다.

얼마 전 방송 촬영을 위해 이 '990원 짜장면'을 먹고 왔다. 프로그램 취지는 990원이라는 가격이 합리적인지 그리고 음식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는지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대권주자와 입맛이 달라서 그런지 내 입에는 전혀 맛있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음식을 두고 맛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민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한데 맛을 떠나 정작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제도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시행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지난 20일 김문수(오른쪽) 경기도지사가 고양시의 한 중국 음식집에 들러 '착한가격업소' 인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경기도정책포털

현재 전국의 짜장면 평균 가격은 4000원이다. 원가를 떠나 990원이면 4분의 1 수준이다. 대체 이게 언제 적 가격이냐 살펴보니 1990년 평균 가격이 1000원이었다. 재료비·인건비·임대료 등이 크게 오른 상태에서 22년 전 가격을 받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이런 음식을 '착한가격'으로 선정·보도하는 것은 비상식적 가격만큼이나 비상식적이다.

물론 개별 업소가 특정 상품을 노마진 혹은 역마진으로 판매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미끼상품'을 통해 다른 상품의 구매를 유도함으로써 총매출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다. 이는 말그대로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자율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나 언론이 무조건 '싼 가격'을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가격규제 정책이 여의치 않자 영세업자들끼리 싸움을 시키는 꼼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줄줄이 인상되는 공공요금, 높은 카드수수료 등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저가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결국 서민들만 피해를 보는 정책이다.

2010년 '롯데마트 통큰치킨'과 '이마트 피자'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공세가 동네상권과 영세상인을 죽인다는 비난 여론이 높았다. 곰곰이 따져보면 당시와 지금 상황은 결과적으로 같다. 차이점이라면 강한 자만 살아남느냐, 혹은 공멸하느냐는 정도다. 초식동물끼리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초원에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를 풀어 놓으나 하이에나 열 마리를 풀어 놓으나 균형이 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착한가격업소' 정책에 대해서는 유독 칭찬 일색이다.

'착한가격업소'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대기업이 난리칠 때는 그나마 데모라도 했는데, 같은 업자끼리 이러니 하소연할 곳도 없다"며 속을 끓였다.

'이마트 피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소비를 이념으로 하냐"며 대응했다. 문득 그의 발언이 새삼스럽다. 영세상인과 동네상권의 공멸을 막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소비자의 '이념적인 소비'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박상현(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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