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 임정향 씨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 참여 후기 3편

행사 이튿날인 12일, 마산 돝섬 둘레길 탐방과 어시장에서 점심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 저도연륙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추억담에 더해 마산 해양관광자연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묻어나온다.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글로 마무리한다.

◇나의 표주박, 돝섬 = 돝섬 하면 여중·여고시절 생각이 절로 난다. 학교가 꽤 높은 곳(산복도로 위)에 있다 보니 마산 앞바다가 훤히 보였다. 그때 내 눈에는 돝섬이 '표주박'을 엎어놓은 형상으로 보였고, 가끔 기분에 따라 속으로 '오늘 니는 새끼 고래야'라고 부르며 지그시 바라보던 때가 잦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마산 앞바다가 정서 함양에 은연중 많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실상 마산에 살았을 때는 언제 가 봤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주 어릴 적에 한 번 가본 듯하다.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 이튿날 배를 타고 들어간 돝섬에서 받은 첫인상은 아담하고 단정한 모습 그 자체였다. 선착장에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가니, '황금 돼지상'이 떡하니 서 있다. 마치 기운차게 코를 씩씩거리는 형상으로…. 뚝심 있게 서 있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묘한 에너지를 전해줬다. 그렇지 않아도 내게 에너지가 절실히 필요한 때에 좋은 기운과 함박웃음 가득한 돝섬 둘레길 탐방이 되었다.

돝섬 들어가는 바닷길. /김상준

돝섬 둘레길은 많은 사람의 노고가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 데크를 따라 한 바퀴 천천히 걸었다. 중간쯤 걸어가니 숲길 같기도 한 것이 제법 나무 냄새와 바다 냄새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몸과 마음마저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한가롭게 아저씨 몇몇 분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풍광도 꽤 멋있었다.

마창대교도 시원하게 보이고, 돝섬에서 바라본 마산 앞바다와 귀산 쪽 크레인 모습 등을 보며 '역동적인 마산'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오염된 바닷물도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더불어 돝섬 내에 오밀조밀 다리도 놓이고, 바람개비 길도 있고, 숲에는 조그마한 연못도 있어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 데이트 장소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젊은 연인 둘이 두 손을 꼬옥 잡고 그리도 좋은지 딱 붙어 앉아 밀어를 나누고 있었다. 새삼 싱그럽고 부러워 보였다.

"이 돼지 섬이 그래서 희망이 있구나."

◇마산만의 음식과 인심 = 워낙 생선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보니 이날 점심메뉴가 '도다리 쑥국'과 '생선 구이'라는 말에 점심이 기다려졌다. 이날 점심 장소는 어시장 앞 해안도로변 '못대'. 점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밑반찬까지 알찬 가정식이 나왔다. 서울에서는 도무지 맛볼 수 없는 핑크빛 선명한 싱싱한 명란젓을 듬뿍 세 번이나 다시 채워주고, 또한, 양념 갈치와 수수부꾸미가 밑반찬으로 나오다니…. 이날 참가자 모두가 기본 반찬들을 여러 번 다시 채웠다. 이런! 반찬 쟁이들 같으니라고. 화려하진 않지만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 조화롭게 나오니 입안이 참 행복했다. 메인인 생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싱싱하고 맛있었다. 갈치와 양념장을 끼얹은 삼치 그리고 꽁치 트리오는 사이좋은 친구들처럼 접시에 참하게 배열돼 있었고, 뚝배기에 구수하게 담긴 도다리 쑥국은 고소했다. 우리 젓가락질은 아이처럼 바빴고, 다들 반주 생각에 누구 할 거 없이 소주를 시켜 몇 순배 돌았다. 입과 뱃속과 마음마저 행복하고 즐거웠던 어시장에서의 점심이었다.

◇어린 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린, 저도연륙교 = 저도연륙교로 가는 길은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어릴 적 '외가댁 가는 길'이라 새삼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구산면 남포리가 외가인 나는 잠시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탔다. 외가에 갈 때면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단팥빵을 사간 기억, 외할아버지가 긴 장대 담배를 피우시는 모습, 방에서 새끼를 꼬시던 모습 등이 떠올랐다.

부지런하셨던 외할아버지가 부엌과 마당에 나무를 한가득 해놓으셔서 외할머니가 수월하게 겨울나기를 했다. 외가 앞마당에는 큰 감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감을 땄다. 부엌 바로 앞에는 맑고 깊은 우물이 있었고,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심어져 식사 때가 되면(방학 때에 놀러 갔었다) "파 좀 따 오너라, 가지 따 오너라"하셨던 외할머니 목소리가 아련했다.

저도연륙교. 일명 콰이강의 다리. /김상준

옛날 초가집 그대로였던 외가 모습이, 엊그제 일처럼 정겨웠던 그 외양이 생생히 기억났다. 이렇듯 디지털 속도 시대에 살고, 세상은 빠르게 변해도 사람의 기억, 추억 속에서 나누었던 정(情)은 세월이 이토록 흘러도 오롯하고 명징하게 가슴 한편에 있음을 버스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들 추억이 마음을 따스하게 감아 안을 즈음 저도 연륙교에 도착했다. 구 다리와 신 다리의 판이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구 다리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연상하게 했다. 다리도 다리지만 다리 위에서 바라본 바다 풍광이 장관이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나름 구도를 잡으며 촬영을 해보았다. 당장 경제 논리로는 타격이 있겠지만 몇 년 전 구산면 수정에 대형 조선소가 들이려던 프로젝트가 취소됐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신 다리 초입에서 일행들은 미더덕을 구경하고 먹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혼자 다리를 건너보았다. 제법 바람이 셌지만 기분 좋은 5월의 훈풍이었다. 아이처럼 혼자 셀카놀이를 해대며 쉬엄쉬엄 걸어 보았다. 다리를 건너면서 고향과 나의 소통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박 2일'. 짧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간,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고향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이 여행을 함께 한 모든 분들 각자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창동-오동동 스토리텔링 사업과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 행사에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끝> /임정향(영화 프로듀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