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둥글게 둥글게' 추억의 공벌레

점심을 먹으면 으레 소화도 시킬 겸 학교숲을 산책한다. 우리 학교 화단 가장자리에는 사랑초(옥살리스)가 많은데 하트 모양의 잎들 사이로 올라온 핑크색 꽃들이 매우 예쁘다. 손으로 슬며시 아기 머리를 만지듯 만지면 보들보들한 느낌이 좋다. 동료 교사에게 한번 만져보라 했더니 나보고 변태라고 한다. 변태 아니다. 한번 만져 보시라. 정말 느낌이 좋다.

사랑초를 느끼며(?) 학교숲 산책을 나섰는데 몇 아이들은 사랑초 앞에 둘러앉아 놀고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집중하고 있어 슬며시 다가가 살펴보았다. 아이들의 놀잇거리는 다름 아닌 공벌레. 나도 공벌레를 가지고 많이 놀았었는데, 아이들에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벌레는 인기 벌레다. 위협적이지도 않고, 느려서 잡기 쉽고, 공처럼 말리는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벌레가 이동하는 모습

아이들이 공벌레를 가지고 노는 방법도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으로 잡아 손가락으로 퉁 튀기거나 만져서 동그랗게 말리게 한 다음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린다.

가만 놔두면 슬며시 웅크렸던 몸을 펴는데 뒤집혀 있으면 몸을 다시 뒤집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우습다. 다시 손바닥을 살살 돌리면 놀란 공벌레는 다시 공모양이 된다.

많은 사람이 쥐며느리가 국명이고 공벌레가 쉽게 부르는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쥐며느리와 공벌레는 엄연히 다른 벌레다.

공벌레가 동그랗게 말려있는 모습.

공벌레가 끝이 둥근 줄줄이 소시지처럼 생긴 모양이라면 쥐며느리는 약간 마름모 모양으로 바닷가 갯강구를 좀 더 닮았고 색이 좀 더 연하다. 언뜻 봐서 잘 모를 때는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보면 안다. 콩처럼 말리면 공벌레고, 도망가면 쥐며느리다.

돌 아래나 흙 속 같이 습한 곳을 좋아하고 야행성이지만 낮에도 쉽게 볼 수 있다. 돌을 들춰보면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사랑초 뿌리 근처에서 잘 볼 수 있다. 사랑초 잎이 무성해 뿌리 근처가 습하기 때문이다.

공벌레의 외모가 썩 호감형은 아니지만, 동물 사체나 식물 등을 먹어 유기물을 배출해 지렁이와 함께 땅을 기름지게 해 준다. 살아 있는 식물을 갉아 먹어 식물을 죽게 하지는 않으니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공벌레가 어떤 위협에도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갔다면 이미 오래 전 멸종했을 것이다.

위협 속에 잠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죽은 척하지만, 곧 허리를 펴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공벌레. 그 사는 모습이 우리네 사는 모습과 어쩌면 비슷하다.

/글·사진 박대현(창원 봉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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