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사랑 위해 상처도 감수하는 큰꽃으아리

5월은 온갖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좋은 계절이다. 봄이 무르익고 땅은 단비로 젖어 자궁 속처럼 포근하고 축축해지면 곳곳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봄숲을 거닐면 국수나무 덤불 너머로 커다랗고 탐스러운 흰꽃이 눈에 띈다. '클레마티스'라고 불리는 큰꽃으아리다. 화사한 미소 같은 흰꽃은 숲을 거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우수고객 유치작전 = 큰꽃으아리 꽃은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열편(裂片)이 무척 넓다. 대부분의 꽃처럼 꽃술이 중심에 있고, 어디서도 금방 눈에 띄는 꽃잎처럼 보이는 아이보리색 꽃받침열편은 8장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넓고 환한 색깔의 이 꽃이 곤충 눈에 잘 띄는 것은 당연하다.

큰꽃으아리 꽃을 찾는 곤충은 대부분 딱정벌레다. 딱정벌레는 벌이나 나비와 달리 좋아하는 꽃에 앉는 모양이 뒤뚱거리며 매우 서툴다.

아이보리색 환한 빛깔의 큰꽃으아리.

그래서 큰꽃으아리의 넓은 꽃받침열편은 착륙이 서툰 딱정벌레를 위한 활주로 역할을 한다. 꽃받침열편마다 3줄로 된 안내 길이 있고, 그 주위에는 빗살처럼 촘촘한 선이 나 있다. 게다가 어찌나 세심하게 배려했는지 이 선에 노르스름한 색깔까지 칠했다.

큰 행사에서 VIP고객을 위해 레드카펫을 까는 것처럼 옐로카펫을 깔았다. 꽃에 찾아든 곤충은 이 선을 따라 꽃 중심부로 모여들고 달콤한 꿀샘을 찾아 꽃 속을 뒤적이며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교묘한 꽃술의 어울림 = 큰꽃으아리 꽃을 보면 사람이 손댄 것도 아니고 동물들이 먹으려고 훑은 것도 아닌데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생식을 위한 큰꽃으아리의 전략이 그 곳에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꽃술의 배치다. 수술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그 둘레로 많은 암술이 빼곡이 둘러서 있다.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꽃술을 오가는 딱정벌레가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잔뜩 묻혀주길 바라서다.

그래서 큰꽃으아리는 얌전한 손님보다는 꽃하늘소처럼 마구잡이로 휘젓는 곤충을 더 반긴다.

화창하게 맑은 날이면 많은 곤충들로 붐볐던 이 활주로는 마침내 찢어지고, 꽃받침열편은 식성 좋은 곤충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식물 하면 꽃을 떠올릴 만큼, 꽃이 주는 인상은 강하다.

왜 식물은 꽃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까? 그것은 꽃이 식물의 생식기관이며, 꽃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꽃가루받이를 위해서다.

그리고 그 꽃가루받이를 위해 식물과 매개자는 서로의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마치 지금 정치판의 정치인들처럼….

/글·사진 김인성(우포생태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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