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휴대폰이 고장이 났다. 비싸게 사서 1년밖에 안 썼고 더욱이 유명 회사의 제품이라 당연히 무상 수리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비스센터 수리 담당자가 휴대폰이 물에 빠져 부속품이 부식된 것이 고장 원인이라며 수리비가 무려 20여만 원은 나오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로부터 휴대폰을 물에 빠뜨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한 가지 짚이는 것은 샤워를 할 때마다 목욕탕으로 들고 들어가 음악을 듣는 딸아이의 습관이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휴대폰이 그렇게 쉽게 부식되어 고장이 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서 한국 최고 회사의 제품이 통상적 상황의 습기 정도도 막지 못하느냐고 역정을 냈더니, 물에 빠진 게 맞는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무상 수리 불가원칙을 이야기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무상 수리 기간 중이고 딸 아이한테 그런 말 들은 적 없다며 마구 쏘아붙였다. 내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고 소비자로서 매우 부당하게 여겨진다는 말까지 하며 한동안 따진 뒤, 수리 여부는 다시 생각해보겠다 말하고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온 딸아이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지난 2월 물에 잠깐 빠졌는데 금방 주워 닦은 뒤 켰더니 곧 전원이 들어와 '별 문제가 없나 보다'하고 그대로 썼다고 말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때 그 말을 나에게도 했다는 것이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결국 나의 건망증 때문에 수리기사를 그렇게 무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순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하기만 했다. 끝까지 모른 척 억울한 척 그냥 있기에는 도저히 양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처지가 바뀌어 내가 당하는 입장이었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혔을까?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론 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다. 먼저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것은 명백히 우리의 부주의니 수리비 고하를 막론하고 수리를 해달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수리 기사는 오히려 자신이 고맙다며 손님에게 이런 전화를 처음 받아본다고 말했다. 명백한 증거를 갖고 말하는데도, 아니라고 우기면 도리가 없는 일.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오후에 수리가 끝났다는 기사의 전화가 왔다. 얼마냐고 물으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돈이 적게 들도록 했지만 최소 부품비용으로 1만 1000원은 내셔야겠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사람이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인간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그럴 수는 없는 일. 실수했을 때 오히려 제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히 사과할 수 있다면 실수로 행복해지기도 하나 보다.

전화기를 찾으면서 음료수 한 상자를 내밀었더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 함박꽃 같았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미안합니다.' 진심이 담긴 그 한 마디의 말이 금세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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