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진주소싸움 해설가 강동길 씨

“소싸움, 그냥 보면 별 재미 없어요. 해설이 가미돼야 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주 진양호 후문에 있는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만난 소싸움 해설가 강동길(51·진주 한일병원 홍보과장) 씨는 소싸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강동길 씨는 현재 진주에서 열리는 각종 소싸움대회의 해설을 맡고 있다.

“아, 들이대자니 대가리가 아프고 도망가자니 안 되고, 참 깝깝합니다.”

“친구야 가라, 니가 가라, 마이 뭇다 아이가.”

강 씨가 하는 해설은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깼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 일색인 강동길 씨의 해설을 처음 듣는 사람은 ‘뭐 저런 해설이 다 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정말 재밌다. 강동길 씨의 입담은 배꼽을 잡고 소싸움에 몰입하게 한다. 축구나 야구 등 기존의 경기해설에서는 상상도 못한 파격적인 해설이 이어진다.

사실 소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 진주 등 남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지만, 서울 등지에서는 소싸움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싸움 해설도 생소하다.

방송·행사진행 경력서 우러난 해설

진주 소싸움 해설가 강동길 씨./박일호 기자

강동길 씨가 소싸움 해설을 시작한 것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행사 사회와 TV 출연 등으로 명성을 쌓아갈 즈음에 진주시청에서 소싸움 경기 행운권 추첨 사회를 해달라고 해서 경기장에 갔다가 소싸움 해설을 들었다.

그때 해설을 맡은 분은 강용기 씨다. 소싸움 해설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이크를 잡는 것만큼은 자신 있던 강동길 씨는 다음 날 녹음기를 들고 가서 해설을 녹음했다.

“행운권 추첨을 재밌게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소싸움장에 갔고, 해설까지도 욕심이 났다. 7시간 동안이나 중계를 들었다. 집에서 해설을 따라 해보고 혼자서 단독으로 중계를 해봤는데, 내가 봐도 내가 잘해. 그래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의 소싸움 경기 해설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저 출전 소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강용기 씨가 재미를 가한 해설을 시작했고, 강동길 씨는 이벤트 진행으로 쌓은 노하우를 해설에 가미하면서 다른 형태의 해설가가 됐다.

“우리 지역에서 소싸움 해설가는 3명인데 모두가 강 씨야. 강 씨가 아니면 소싸움 해설을 못 한다”고 말해놓고는 크게 웃었다.

“두 분은 소를 직접 키우기 때문에 소에 대한 지식은 나보다 낫다. 나도 특기가 있다. 지역에서 20년 이상 각종 행사에서 닦은 사회 실력과 방송 경력 등은 두 분이 따라올 수 없다고 자부한다.”

강동길 씨는 후배 강명철 씨와 함께 해설을 한다. 이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는 면담 형식으로 해설한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완벽한 호흡을 과시하고 있다.

“명철 씨는 아끼는 후배다. 직접 소를 키워서 소에 대한 지식은 많다. 관중을 웃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공부도 해야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순간적인 애드리브가 돼야 한다. 소가 무슨 행동을 하는데 관중을 보고 이것을 모티브로 잡아서 경기상황을 전해야 한다. 그냥 지식이 아닌 관중이 웃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 많이 도와주고 의지가 된다.”

싸움소도 관중도 “감~사합니다”

강동길 씨가 소싸움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자주 사용하는 이벤트가 노래자랑과 울장 마라톤이다.

“원형의 소싸움 경기장 안을 도는 울장 마라톤은 인기 짱이다. 자전거를 걸고 10명 정도 출전하는데 그중 4명은 넘어진다. 모래판이어 다치지는 않는다. 가끔 소똥을 밟기도 한다. 자전거에 목숨 거는 아줌마들 보면 다들 즐거워서 죽어.”

젊은 관중을 위해 개그콘서트 등에서 나오는 유행어도 접목하려고 시도한다.

진주 소싸움 해설가 강동길 씨./박일호 기자

“소가 대가리가 아파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심판이 호각 안 불어, 주인을 얼핏 쳐다보며 ‘도망가도 되냐’고 물어도 주인은 계속 싸우라는 가야. 그래도 안 되면 도망을 가지. 그때 심판이 호각을 불어주면 고맙지, 소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그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 관중들도 같이 ‘감~사~합니다’를 받아준다. 그럼 서로 신이나지.”

강동길 씨는 소싸움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지 7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싸움소와 관련된 정보를 꿰고 있다. 싸움소의 주특기나 나이, 상대전적은 물론이고 우주(소주인)도 소상하게 알고 있다. 소가 싸우는 중간에 이상행동을 하면 곧바로 관중에게 알려주면서 관중이 긴장의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해설의 주요 포인트다.

이제는 싸움소와 경기를 보는 눈이 생겼다.

“소가 청, 홍코너에 들어오면 소 눈을 먼저 본다. 눈을 보면 승부를 알 수 있다. 싸울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대강은 알 수 있다. 또 뒷다리를 보면 살짝 빼는 게 보인다. 눈싸움에서 졌다는 거다. 그 놈은 백발백중 도망간다. 서로 해볼만하다고 생각하면 심판 호르라기 부는 게 늦어, 바로 받아버린다. “소싸움이 사람 싸움과 비슷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소싸움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소는 오로지 뿔과 대가리만으로 싸운다. 사람처럼 흉기를 쓰지도, 물지도 않는다. 소는 져도 졌다고 변명을 안 한다. 그냥 고개를 돌려 도망간다. 둘이 붙어서 대가리가 아파서 도망가면 지는 거고 남아 있으면 이기는 거다. 깨끗한 싸움이다. 짤 수도 없고.”

‘소면 다 소냐,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지금은 멀리 갔는데 ‘메롱’이라는 소가 있었다. 원래 이름은 메롱이 아닌데 내가 붙인 별명이다. 메롱이는 싸우다가 힘에 부치면 도망가다 ‘아, 도망갑니다’라고 말을 하면 돌아와서 싸웠다. 무려 12번이나 그랬다. 마치 사람들이 싸우다가 메롱하고 도망가듯이 12번을 그렇게 하기에 붙여준 별명이다. 결국, 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싸우다가 뿔이 부러지는 일도 있다. 싸움소가 뿔이 날아가면 생명이 끝난다. 바로 도살장으로 가는 운명이 된다.

“진주에 ‘소호’ 라는 소가 있었다. 싸움을 아주 잘해서 가격도 엄청났다. 그런데 싸우다가 발을 다쳤다. 그때부터 슬럼프에 빠졌다. 그 뒤에 재활치료를 하고 1등을 한번 했는데 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그 소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싸움소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신체적으로 좋은 놈을 골라서 전문 싸움소로 키우게 된다. 강동길 씨가 소개하는 싸움소의 조건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목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대가리를 잘 든다. 둘째 눈을 보면 안경 쓴 것처럼 눈 주위에 털이 많아야 하고. 셋째 귀 안에도 털이 많아야 하고, 꼬리가 땅이 닿을 정도로 길어야 한다. 그리고 뿔도 잘생겨야 한다. 뿔은 모양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여인의 비녀를 꽂았다고 해서 비녀 뿔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소는 목을 감아 돌리기를 잘한다. 노고지리 옥뿔 또는 상투 뿔이라는 뿔은 앞으로 곧게 뻗어있어 그냥 대가리만 숙이면 싸움이 된다.

“소들은 뿔이 크든 작든, 뿔의 모양에 상관없이 나름대로 그것에 맞춰서 싸움하는 기술을 스스로 개발한다. 예를 들어 뿔이 40㎝나 되는 소와 10㎝밖에 되지 않는 소가 싸울 때 40㎝ 소는 목을 감아 돌리면 이기는데 유리하지만 상투 뿔을 가진 10㎝ 소가 머리를 박고 있으면 난감하다. 잘못하면 정수리에 찍히기라도 하면 싸움은 끝이 난다. 싸움소는 우선 신체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그래야, 뽑히게 되고, 그 다음이 훈련이다.”

진주 소싸움 해설가 강동길 씨./박일호 기자

강동길 씨는 ‘소면 다 소냐,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강 씨의 비유대로라면 싸움소는 재벌집 아들 정도 된다는 것이다. 고기를 공급하는 비육소는 2,3년이면 생명을 다하지만 싸움소는 최하 10년은 산다. 매일 4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엄청나게 좋은 것은 다 먹는다. 사람보다 잘 먹는다. 사람은 하루 3끼만 먹지만 싸움소는 4끼를 먹는다. 사람들은 밥 대신 국수를 먹기도 하지만 싸움소는 주인이 끓여준 좋은 것만 먹는다. 심지어 여름에 우주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소 대가리 앞에는 반드시 선풍이 틀어줄 정도라고.

“전국대회에 출전하면 우주가 여관에서 안자고 소똥이 있는 소 옆에서 잔다. 소를 사랑하지 않으면 싸움소를 키울 수가 없다. 자식이나 마누라보고 밥 먹었는지 안 물어봐도 소는 잘 먹었느냐고 확인한다. 소가 똥을 싸면 치우는데 1분도 안 걸린다.”

“소 키워 우승해서 시가행진 꿈…”

“진짜 멋진 소를 2,3마리만 키워서 우승해보는 게 소원이다. 전에는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진짜 멋진 소, 비싼 소 키워서 우승한 후 진주 중앙로터리에서 시가행진을 해보는 게 꿈이다, 소원이다.”

강동길 씨는 “딴 동물들은 다 무서운데 내가 소띠라서 그런지 소똥이 냄새가 안 나. 소는 참 순한 동물인데, 경기장에 들어올 때 눈매를 보면 겁난다”고 말한다.

소 대가리에 대한 용어도 정리해주었다.

“소는 원래 대가리가 맞다. 몇 년 전에 인터넷에 ‘해설가가 자꾸 대가리라는 비속어를 쓴다.’라고 올랐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자문한 결과 사람은 머리, 소는 대가리가 정확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때부터 자신 있게 대가리라는 말을 쓴다.”

그는 경상대 사투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역시 사투리가 심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원래 소싸움이 경상도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경상도 용어가 들어가야 맛이 난다. 예를 들어 서울말로 ‘자, 소가 갑니다. 대가리를 박네요’라고 하면 재미가 없다. 소싸움 해설은 경상도 사투리로 해야 제 맛이 난다.”

강 씨는 충북 보은에 초청돼서 원정중계를 4년째 하고 있다. 첫날은 사투리 때문에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튿날부터 알아듣고는 난리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강 씨는 그곳에서도 인기스타다. 소싸움 해설가라는 게 완전히 각인되면서 올해 총선서 모 후보의 선거연설까지도 했을 정도다.

직업은 진주한일병원 홍보과장

강 씨의 직업은 진주 한일병원 홍보과장이고 여기에 장의사, 전문 MC, 소싸움 해설가까지 합치면 1인 4역이다.

진주 소싸움 해설가 강동길 씨./박일호 기자

형이 장의사를 하면서 4대째 장의업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장의업을 형과 함께 했다. 장의업의 인연으로 병원도 근무하게 됐다.

“어디 가면 장의사라고 하지 않는다. 병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의사라고 한다. 의사는 쉬는 날이 있지만 장의사는 장~(늘) 일을 한다. 그래서 장~의사다. 장의업도 웃기면서 한다.”

강동길 씨는 지방연예인으로도 유명하다.

“진주 MBC에서 나를 많이 키워줬다. TV 프로그램 중에서 ‘동네 한 바퀴’가 있었다. 정말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었고 상까지 받았다. 지금 1박2일에서 하는 몸뻬 입고하던 것을 내가 담당했다. 모르는 동네에 가서 할머니들하고 노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때 발탁돼서 영남지역에서는 제법 자주 나오는 지방연예인이 됐다.”

그런 인연으로 유레카, VJ 특공대, 6시 내 고향 등에 모두 출연했다. 광고도 2개나 나온다.

“방송을 하니까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행동을 잘못하면 욕을 먹게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주례도 봤다. 4번씩이나. 정말 소싸움해설을 잘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진주가 소싸움의 발원지이기 때문에 진주에서 자라고 살아온 사람들이 진주 소싸움을 지켜야 내야 한다.”

“진주 소싸움은 그것만으로 큰 재산이다. 잘 키우면 최고의 상품이 된다. 소싸움 경기장이 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외지인들이 많다. 진주, 경남을 홍보한다는 생각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만약 돈을 보고 (해설을)했다면 그만두었을 것이다. 힘이 있는 한 해설은 계속할 것이다.”

강동길 씨는 목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하루 4시간 이상을 계속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대회를 하면 온종일 해설을 해야 한다. 그것도 며칠씩이나. 해설을 끝내면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좋은 목을 준 부모님께 감사한다. 합창을 하면서 소리 잘 내는 법을 배웠다. 타고난 목소리가 커서 소싸움판에서 딱 맞는 목소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진주 소싸움 해설가 강동길 씨./박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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