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독립을 요구하며 100일 넘게 파업 중인 동료들을 뒤로하고 회사에 복귀한 언론인들이 있다. MBC 배현진·양승은·최대현 아나운서가 그들이다. 전선에 남은 다른 구성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기심의 합리화", "마지막까지 뒤통수", "믿었던 우리가 바보"라고 분노했다.

한편에는 MBC노조 파업 와중에 MBC에 '취업'한 언론인들도 있었다. 김재철 사장이 대체인력으로 채용한 임시직 기자·아나운서가 그들이다. 이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영혼 없는 로봇 기자들", "동료로 인정하지 않을 것",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들 모두는 쉽게 말해 '배신자'들이었다. 한데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세 아나운서는 '동료'를 배신한 게 확실하지만 임시직들은 아무리 봐도 그와 무관했다. "동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MBC 노조·기자회의 단호하고 분명한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일 파업 중인 MBC 기자·아나운서들이 회사 측의 프리랜서 앵커 채용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비판 강도도 달랐다. 세 아나운서에 대한 쓴소리는 MBC 기자·아나운서 개개인이 트위터 등에 밝힌 것이지만 후자는 구성원들 대표 조직의 '공식' 입장이었다. 전자에는 그래도 "개인 선택이니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이해와 존중의 시선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임시직들에게는 "파업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면 정상적인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듭된 확인만 있었다.

배현진 아나운서 복귀 이후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밀려난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해선 한 MBC 기자가 이런 말도 했다. "자판기 음료수 깡통처럼 버렸다. 김재철 사장이 임시방편으로 뽑은 그들의 운명이 결국은 어떻게 될 건지 확신하게 된다."

임시직들의 운명은 그러나 김 사장뿐만 아니라 '동료'들에 의해서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선·후배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곳에서 '눈 딱 감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회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MBC 구성원들의 정서는 이해될 만하다. '공정 보도', '언론 자유'라는 대의를 외면한 언론인들의 '영혼'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태생 자체부터 영혼이 없는 언론인은 없다. 유수의 신문·방송사를 포함, 소신과 자존을 올곧게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언론사가 국내에 과연 얼마나 될까. 먹고 살기 위해, 옮길 데가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임시직이든 저임금이든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 아닌가.

이런 현실이 인정된다면, 임시직을 채용한 김재철 사장을 비판할지언정 그들을 직접 겨냥해 '영혼', '로봇', '동료(불인정)' 운운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특히 앞서 세 아나운서와 임시직들에 대한 '온도차'는 소위 '스펙'이나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MBC 구성원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실제 MBC노조는 지난 3월 채용된 임시직 기자 개개인의 전문성과 자격에 직접 시비를 걸었다. 이때 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한 방송사 출신 기자는 아예 언론인 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경남도민일보> 기자들은 어떨까. 같은 언론노조 소속이고 파업에 전폭 지지를 보내고 있으니 확실히 '동료'에 가까울 수 있겠다. 다만 올해 초 미디어렙법 논란 때 지역방송사, 중소언론사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MBC 구성원들의 태도를 보면서는 '과연 그럴까?' 잠깐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부디 계속 잠깐, 아주 잠깐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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