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맥을 찾아서] (17) 창녕군 영산 줄다리기

매년 3월 3일께 3·1절 기념행사로 치러지는 영산 줄다리기는 창녕군 영산면 놀이마당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1969년 2월 11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영산줄다리기는 옛 영산고을의 대보름 축제를 이끌어 가던 대동놀이인데, 영산이라는 공동체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풍요다산을 축원했다.

또한 농민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해의 첫날로 인식하고 있던 대보름에 용신앙(龍信仰)을 바탕으로 줄다리기가 이루어져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해 왔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과 공동체 문화의 해체, 집회금지의 법률적 제약으로 1930년대에 전승이 중단됐다.

해방 후인 1949년 한차례 옛 모습을 찾았으나 6·25 전쟁으로 다시 중단됐다가 1961년 영산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3·1민속문화제가 열리면서 계승됐다.

영산줄의 전승 보존과 후학 양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 영산줄다리기 기능보유자 김종곤 선생.

이 줄다리기는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패로 편을 짜서 노는 편싸움으로, 동서 앙편은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서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전한다.

줄다리기는 줄쌈이라고도 하며 영산 지방에서는 '줄땡기기' 또는 한자어로 '갈전(葛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의 칡넝쿨보다 길게 줄을 만들어 당겼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중부 이남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농경의식 하나로 보고 있다.

줄의 길이는 40~50m이며 몸줄의 지름이 1m가 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이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줄이 커서 손으로 잡아 당길 수가 없기 때문에 줄 중간 중간에 가늘게 만든 곁줄(벗줄)을 여러개 매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든다. 끝에는 꽁지줄이라 해서 가는 줄을 10개 정도 만들어 많은 사람이 매달릴 수 있도록 한다.

동·서 양편의 줄을 제각기 만들어 줄다리기 하는 당일에 연결하는데, 많은 사람이 잡아당겨도 끊어지거나 풀어지지 않도록 비녀목이라 부르는 큰 나무토막을 꽂아둔다. 줄 위에 올라선 대장이 지휘를 하면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각 마을 농악대는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영산줄다리기는 현대에 이르러서 그 규모가 작아졌지만, 용사(龍蛇:용과 뱀) 신앙에 바탕을 둔 농경의례 놀이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체의 민속놀이이며, 온 마을이 참여하는 향토축제로 그 의의가 있다.

줄다리기는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한반도 중부 이남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또 이 줄다리기는 일본, 중국, 동남아의 여러 민족 사이에서도 성행되고 있어서 농경의식의 일종으로 해석되고 있다.

창녕군 영산면에도 옛날부터 전승된 향토놀이의 하나로 나무쇠싸움과 함께 줄다리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래에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행해졌으나 요즈음에는 양력 3월 1일을 계기로 3·1 민속문화제를 열고 그 행사의 하나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줄다리기는 나무쇠싸움에서처럼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 패로 편을 짜는데 출생지가 아니라 거주지로 구분한다.

줄다리기가 있기 며칠 전부터 마을 청소년들은 농악을 치면서 집집마다 찾아가 짚단을 얻는다. 몇 단씩 요청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자진해서 능력껏 기부한다. 이렇게 모은 짚단을 한곳에 모아 청장년들이 줄을 만든다. 줄은 원줄과 원줄 중간중간에 곁줄을 만들어 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든다.

줄의 길이는 40∼50m쯤 되며 양쪽의 줄을 제각기 만들어 두었다가 당일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여성줄인 서부의 줄은 머리 고를 크게 하고 남성줄인 동부의 줄은 여성줄인 암줄의 고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작게 만든다.

매년 3월 3일께 3·1 민속문화제 기념행사로 영산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창녕군

이러한 영산줄다리기의 맥을 이어 오는 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 영산줄다리기 기능보유자인 김종곤(74) 선생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창녕군 영산면 죽사리에서 태어난 그가 줄과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70년이다.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양파 농사를 짓던 중 초대 기능보유자인 일봉 조성국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후 그는 조성국 선생의 전수 장학생으로 줄다리기를 확산시키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또 1999년부터 일본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 큰줄다리기보존회와 상호 교류를 추진했고, 히로시마 수도대학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 하이서울 페스티벌 초청 시연 등으로 영산줄의 홍보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아져 영산줄다리기보존회가 2006년 12월 제3회 대한민국 문화유산 대통령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했고, 2008년 1월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영산줄다리기 명예보유자 인정서를 받았다.

특히 김종곤 선생은 후학들을 위해 영산줄을 기록으로 남긴 점이 돋보인다.

2007년 〈영산줄의 발자취〉, 2011년에는 2007년 이후의 실적을 추가하고 30여 년간 모아오던 행사관련 사진, 기사, 발표 및 투고의 글을 모아 〈영산줄의 발자취 증보판〉을 간행하는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이처럼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적 성격이 강했던 영산줄굿이 오늘날에 와서는 대동놀이 문화로 그 성격이 변모해 지역의 융화를 촉진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으나 점점 전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어 그 원형을 지켜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영산줄의 원형! 영산줄의 전통과 맥은 화려한 장식이나 말의 논리보다는 창녕군민들이 다투어 줄에 직접 몸으로 참여하고 줄을 메고 진잡이도 제대로 하고 줄 걸기의 걸쭉한 마당놀이를 펼칠 때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전통문화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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