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창원센텀병원 이정호 원장

“수술 들어가셨습니다.”

약속 시각에 맞춰 이정호(45) 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간호사가 답했다. 병원 관계자는 순간 난처해했다. 이미 시간 조정이 돼 있었는데 급하게 정해진 일정인 듯했다. 수술은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당연히 의사에게 환자보다 앞서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막 수술을 마친 이정호 원장이 원장실로 들어섰다. 곧 다음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점심때였다.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겠다고 하자 편하게 해도 괜찮다며 책상 위 모니터로 향했던 몸을 고쳐 앉는다. 선한 인상 덕에 잠깐 쫓기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창원센텀병원 이정호 원장./김구연 기자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있는 ‘창원센텀병원’은 척추 전문 병원이다. 이정호 원장은 1개월 전부터 창원센텀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 그전까지 이 원장은 경기도 안산 ‘우리병원’, 인천 ‘검단TOP병원’ 척추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92년 의사 자격을 얻고, 1997년 신경외과 전문의가 됐다. 올해로 의사가 된 지는 20년, 신경외과 전문의가 된 지는 15년이 된 셈이다. 대부분 사람이 별 고민 없이 성공한 직업으로 꼽는 의사. 이정호 원장은 이 길을 어떻게 선택하게 됐을까. “자의 반, 타의 반이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부모님께서 의사 아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정도였지요. 연합고사를 치고 성적에 맞춰 결국 고려대 의과대학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이정호 원장이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꿈은 기술자 쪽이었다.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곧잘 분해·조립하기도 했다. 취미나 적성 모두 엔지니어가 맞았다. 하지만, 결국 향했던 길은 의사였다. 이 원장은 “그래도 지금 신경외과 수술을 하면서 복잡한 기계를 만지니 조금은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했다.

‘생명’ 그 무거운 이름

신경외과 전문의는 뇌를 다룬다. 종양·뇌졸중·외상 등이 주요 진료 항목이다. 요즘에는 척추 신경, 통증까지 아우른다. 이정호 원장은 ‘뇌·척수와 관련된 외과 치료’라고 정리했다. 이 원장은 뇌를 ‘우리 몸에서 가장 예민한 장기’라고 했다. ‘장기’라는 표현이 낯설었지만, 몸속에서 작용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듯했다.

창원센텀병원 이정호 원장./김구연 기자

“신경외과는 훈련 과정이 매우 길고 까다로운 분야입니다. 일반 내과 의사들이 할 줄 아는 분야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하고, 당연히 외과 분야도 잘 해야지요. 다루는 기관 특성상 환자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도 많습니다.”

신경외과는 외과·흉부외과와 더불어 ‘의료 3D’ 업종으로 꼽힌다. 이른바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이다. 이정호 원장도 1986년 대학에 입학해 1997년 신경외과 전문의 자격을 얻었다. 그가 수술을 맡았던 환자는 어림잡아 1500~2000명 정도. 이정호 원장에게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죽음에 대해서는 많이 무덤덤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도 해요. 지금은 어르신들이 모두 계시지만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분명히 의사라는 직업이 죽음에 대해서는 남다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창원센텀병원 이정호 원장./김구연 기자

그래도 이 원장은 첫 수술에 대한 기억을 묻자 분명하게 더듬었다. 처음 절개를 시작했던 떨림부터 순식간에 흘러버린 시간, 그리고 그 환자에 대한 상태, 수술 경과와 결과, 뜻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선임 레지던트가 보는 자리에서 시작했지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습니다. 결과도 좋았고요. 뇌수술 경과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환자께서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돌아가셨습니다. 안타까웠지요.”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보람, 그래서 얻는 성과 같은 얘기는 이정호 원장에게는 오히려 사치인 듯했다. 늘 일상에서 부딪히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지우는 과정은 어느 하나 예사로운 일이 없었다. 환자가 고통을 더는 만큼 의사는 스트레스를 안고 가야 했다.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는 부담이다.

“환자를 보면 볼수록 더 예민해져요. 예전보다 연구를 더 많이 하고, 그런 과정이 쌓이다 보니…. 경험이 많을수록 예민해지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쌓이지요.”

그는 사실 신경외과 전문의를 시작한 초창기에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이 역시 생명을 마주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한번 쯤 겪어야 할 의례였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그렇게 정리되는 것일 뿐 그때는 너무 힘든 벽이었다.

“응급환자 3명이 몰려서 들어왔는데 세 분 모두 오전 중에 돌아가셨어요. 그중 한 분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될 정도로 상태가 괜찮았는데…. 한 번에 그런 죽음을 목격하니 안타깝고, 아쉽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이정호 원장은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 그냥 하늘만 멍하니 보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의사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기도 했다.

차분한 가운 속에 품은 열정

의사라는 이름을 얻은 지 20년. 만약 의사가 아니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이정호 원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웃으며 ‘자동차 정비공’이라고 말했다.

“기계 만지는 게 좋아요. 지금도 웬만한 정비는 스스로 합니다. 자동차 타는 것도 좋아하고요.”

창원센텀병원 이정호 원장./김구연 기자

이정호 원장은 국내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선수 몸 상태를 점검하는 의사로 참가했다며 마니아 기질까지 살짝 드러냈다. 그래서 지금 운전하는 차종을 물었더니 수줍게 웃으며 손사래질을쳤다. 다만, 예전에는 ‘국내형 스포츠카’로 불리는 차를 한참 몰았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더 굉장한 스포츠카를 모는 지, 아니면 지금은 차분한 세단을 모는 지 미소를 머금은 표정만으로 짐작할 길은 없었다.

이왕 병원·환자·수술 얘기를 벗어난 김에 궁금한 것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의사는 의학 관련 드라마, 이를테면 <하얀거탑>, <브레인> 같은 드라마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정호 원장이 부드럽게 웃으며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1994년 SBS에서 <작별>이라는 드라마를 했었어요. 손창민·고현정 씨가 주연을 했던 드라마인데 50대 신경외과 의사가 주인공인 설정이었지요.”

손창민·고현정 씨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라면 이렇게 낯설 리가 없는데….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당시 MBC에서 그해 최고 화제작이었던 <사랑을 그대 품 안에>를 방영했을 때였다.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썼지만 시청률 20%를 넘기지 못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때 촬영을 이대병원에서 했었는데 제가 감수를 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의학 관련 드라마가 전문의에게 감수를 받는 일이 매우 드물어서 상당히 어설펐지요. 요즘 의학 드라마는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세트는 물론 장기까지 제법 똑같이 만들더라고요.”

수술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기 등이 모두 세트고 소품이라니…. 이정호 원장은 옥에 티 정도는 찾아내지만, 재밌게 본다고 했다.

늘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소통

지나치게 높거나 낮지 않은 음성, 또박또박한 의사 전달, 온화한 표정까지 훌륭한 의사이기에 앞서 좋은 가장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정호 원장은 그 질문에 대해서는 멈칫하며 이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좋은 가장은 아닙니다. 밖에서 힘들게 일해서 그런지 집에서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편이에요. 가끔 집에서 누가 아프다는 말을 하면 그 얘기가 그렇게 듣기 싫더라고요.”

창원센텀병원 이정호 원장./김구연 기자

하지만, 요즘은 ‘나쁜 가장’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편이다. 2011년 미국 텍사스 암센터에 연수를 다녀오면서 얻은 경험 덕이다. 그에게 선진 의료기술과 함께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느낀 철저한 ‘가족 중심’ 사고였다.

“미국은 철저히 가족 중심으로 사고합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앞에 두지요. 여유만 생기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전혀 피곤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느낀 게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 다정하게 하려고 애쓰는데 잘 안 되더군요.”

하지만, 이정호 원장은 환자와는 무엇보다 소통을 앞에 둔다고 했다. 환자 고통을 없애는 것은 치료겠지만, 환자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소통이라는 게 이 원장 경험에서 나온 소신이다.

“디스크 환자들이 유난히 불평이 많다고 해요. 아마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치료나 수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환자 만족도가 떨어지면 당연히 불평으로 이어지지요. 디스크 환자 고통을 환자 자신만큼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중요합니다.”

이정호 원장은 충분한 상담을 통해 대체 요법으로 환자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면 그 방법을 권한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수술은 피하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반드시 수술을 해야만 하는 환자도 있다. 그럴 상황이 됐을 때는 환자와 의사가 믿음을 쌓아야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쌓는 과정이 늘 신경전문의로서 어려운 점이다.

“환자 인식과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지요. 요즘은 인터넷, 매체가 워낙 발달해서 수술 장면까지 동영상으로 보고 온 환자도 많아요.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분도 있지요. 그런 인식을 대화로 해결하는 과정이 늘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환자를 대할 때 곧 보람으로 치환된다. 의사라서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다.

“의사를 어려워하지 마세요. 충분하게 자기 병에 대해 묻고 답을 얻으십시오. 자기 몸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이후 정확한 진단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치료 방법을 선택하면 좋을 듯합니다.”

충분하게 들을 준비가 된 의사가 환자에게 당부하는 소통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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