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 임정향 씨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 참여 후기 1편

창원시와 경남도민일보 부설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 주최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가 지난 11·12일 옛 마산 일대에서 열렸다. '창동 노스탤지어 투어'는 마산 출신 출향인들이 고향을 찾아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 마산 출향인 참가자 15명은 이틀 동안 국립 3·15 민주묘지, 회원현 성지, 문신미술관, 창동-오동동, 돝섬, 저도 등을 돌며 옛 마산이 가진 문화예술의 향취와 맛, 그리고 멋을 담뿍 안아갔다. 이들 참가자 가운데 임정향 씨가 행사 참여 후기를 보내왔다. 내용이 많아 모두 3회로 나누어 지면에 소개한다.

마산을 떠나 온 후에도 숱하게 마산을 오고 갔지만, 이번처럼 온전하게 '고향'이라는 콘셉트로 마산에 온 것은 난생처음이라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마산에 있던 이틀 동안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마치 되돌려진 시간 속에서, 없어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변화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등 다양한 감정이 자연스레 들고났다. 마산은 사랑하는 가족의 시작이었고, 우정이 있었고, 나의 성장이 있었기에….

   
 

◇국립 3·15 민주묘지와 의거탑 = 국립 3·15 민주묘지. 명절날 마산으로 올 때면 버스 속에서 멀리서나마 봤던 곳을 처음으로 직접 가보게 되었다. 분향과 헌화로 이어지는 참배 순서는 민주 영령들에 대한 예우를 잘 갖추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어린 시절에도 몽고정 맞은 편에 의거탑이 있었다. 친구네 집에 간다거나 시내를 오갈 때 자연스레 지나게 되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내 역사의식과는 거리가 멀었고, 다리가 아파서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였다. 이때는 '마산 3·15의거'라는 역사적 인식이 와 닿지 않았다. 이 의거가 가진 역사적 무게감은 이후 학교 공부를 통해서 또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는 팔순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됐다. 비록 묘지 조성은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잘 모셔져 있어 감사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민주화 정신의 시발지로서 지역주민은 물론 우리 국민에게까지 이 의거를 올바르게 알리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김주열 열사와 민주 영령들 묘를 둘러보니 우리 역사에 내가 더욱 한 발짝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나의 앞마당, 창동과 부림시장 = 나는 마산 시내 부림동과 수성동, 창동, 어시장, 동마산의 산호동, 신마산의 장군동, 문화동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나는 창동 황금당 뒤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지금의 창동 복희집 근처에서 '진주집 분관'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하셨다. 수성동으로 이사하고 당시 성호 국민학교를 들어가서부터 창동, 부림동은 나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강남극장', '시민극장', '3·15극장', '태양극장'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언니·오빠들 손을 잡고 많이 드나들었다. <정무문>, <썸머타임 킬러>, <썬샤인> 등등 일일이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영화를 봤었다. 창동에는 극장 안팎으로 멋을 잔뜩 부린 젊은 언니와 오빠들이 득시글거렸고, 부림시장에서는 쇼핑하러 나온 인파 속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다녔다.

   
 

특히, 부림시장 귀퉁이의 허름한 죽집에서 팔았던 녹두죽과 담백한 국숫집의 국수 맛은 지금도 기억할 정도다.

또한, '의상실'이란 간판으로 옷을 만들어주는 곳도 많았다. 이 가운데 '나나 의상실'은 어머니가 거래를 하던 곳으로 여기서 가끔 내 옷을 맞추기도 했다. 창동 한 가운데 큰 파초와 함께 있었던 '파초여관', 냄비우동이 기똥차게 맛있었던 '창동 분식', '오동동 약국', 새로운 과자가 가득했던 '오성 상회' 등…. 추억의 장소들이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 없다.

◇추억 한편을 잃다 = 하지만, 마산을 찾은 11일. 주말의 시작인 금요일 오후임에도 마산 중심 시장인 부림시장과 '마산의 명동'이라 불리던 창동이 이렇게나 썰렁한지…. 모든 게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는 게 당연하지"라고 합리화해도 "그래도 이는 좀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단지, 내 어린 시절이 마산 경제와 문화가 역동적이던 시절이지 않았나 하는 혼자만의 두서없는 생각만 되뇌어볼 뿐. 불이 두 번이나 나서 난리를 겪었던 부림시장(그때 우리 집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짐을 쌌던 기억이 생생하다)인데도, 재건을 하자마자 다시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던 곳인데….

또 아쉬운 건 내가 기억하는 극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거다. 사라져버린 창동 시민극장 터를 바라보며 내 초·중·고등학생 시절 추억 가운데 한 부분이 싹둑 잘려나간 느낌이 들었다. 마산 출신이면 누구나 트리오 극장(강남극장, 시민극장, 3·15극장)에서의 소중한 사연들이 다 있을 것이라 장담하는데….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임정향(영화 프로듀서)

   
 

임정향 프로듀서는…

   
 

마산 성호초등학교와 제일여중·고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서울에서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표 참여작으로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죽어도 좋아>(2002), <경의선>(2006) 외 다수가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회원현 성지', '창동 골목투어 미션', '문신미술관', '통술 만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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