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안부를 묻다

◇우주선 지구호

미국이 발사한 우주선이 지구 밖에서 찍어 보낸 사진 한 장에는 푸른 지구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지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도 전에 우주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우주선 지구호'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지구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이 무한하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고, 이 한 장의 사진은 지구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은 세계화가 화두를 차지하던 시대이기도 했거니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번영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환상도 함께 성장하던 시기였다. 우주선이 하늘을 날아 지구 밖으로 간 이유도 그러했다. 그러나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현실은 달랐다. 이제 인류는 유한한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신이 선물한 무한한 자연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구의 날의 의미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지구의 날 행사이다. 지구의 날(Earth Day)은 1969년 존 맥코넬(John McConnell)이 유네스코(UNESCO) 회의가 개최되었던 센프란시스코에서 인류에게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지구의 생명과 환경을 위해 주장했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 게이로드 넬슨(Gaylord Nelson) 상원의원, 데니스 헤인즈(Denis Haynes) 등이 지구의 날의 의미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 본격적인 지구의 날 행사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지구의 날 네트워크(The Earth Day Network)에서 지구의 날을 기념하게 된 연유이다.

1969~70년의 지구의 날 행사의 추진 방식을 보면 새삼 오늘날의 지구의 날 행사, 특히 한국의 지구의 날 행사가 1회성 행사로 그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초기 지구의 날 행사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조직된 것으로 특히 대학생 등 사회의 주요 구성원들이 참가하여 '끝장토론(teach-in)'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주제와 시간의 제약을 정하지 않고 계속되는 세미나라 할 수 있는 끝장토론은 우주선 지구호가 직면한 다양한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후 지구의 날 행사는 지구의 환경, 에너지, 기후 변화 등 우리가 직면한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행사들이 뜸한 4월 22일로 정착되는 에피소드가 있긴 했지만, 지난달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치러진 지구의 날 행사는, 북반구의 경우 지구에 새 생명이 움트는 춘분절을 기리는 고대의 관습을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한한 지구, 무한한 욕망

1970년대 이후 지구의 날과 같은 행사와 더불어 환경단체들이 급성장하게 된다. 세계적인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 지구의벗(Friends of the Earth), 세계자연보호기금(WWF) 등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혁명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우주선이 역설적이게도 유한한 지구의 운명을 세상에 알린 셈이다.

문제는 이 유한한 지구 속에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에 있다. 신이 선물한 것처럼 자연을 무한히 착취하고 이용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눈앞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과학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며 희망을 얘기하기도 하고, 지구 이외의 또 다른 행성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현실성은 떨어져 보인다. 인류의 욕망은 이미 무한대로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되는 시기, 특히 세계경제가 충격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우주선 지구호는 새로운 운명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까지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책임있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있다.

에너지를 비롯한 여러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1900년대 초기와 100년이 지난 지금을 비교하면 인간 사회의 성장, 특히 경제 성장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성장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1900년대 초기 인간 사회를 지탱하던 에너지원의 대부분은 지속 가능한 것들이었으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대부분 지속 불가능한 상태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성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성장의 속도와 기울기만큼 비례해서 에너지가 소비되어야 한다.

경제학자를 비롯해 생태계,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제 20세기 성장의 실험을 멈출 때가 왔음을 경고하고 있다. 경제적 성장의 이론 자체를 수정하고 가격으로 결정되는 시장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 세계가 함께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전 세계인이 한 장의 사진으로 소통하고 해법을 찾아 잰 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어 온 지난 반세기는 단순히 지구의 날을 행사로 맞이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주선 지구호에 탄 운명공동체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2009년부터 지구의 날이 '어머니 지구의 날(International Mother Earth Day)'로도 불리는 것처럼 우리를 먹이고 키우는 어머니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찬혁(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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