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노동자문화센터 새노리 박제헌·송지윤·한은비 단원

대학을 거부하고, 임용시험을 접고, 고졸 검정고시 준비를 하며 뛰어든 세 청년들의 삶터는 ‘노동자문화센터 새노리’이다. 쓰다 버린 폐자재를 활용한 ‘수레악기’를 연주하는 10대 말, 20대 앳된 청춘들. 이들이 문화예술인으로 먹고살겠단다. 잠시라고 여긴 게 평생이 될 지, 평생이라 여긴 것이 잠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지금 자신의 선택이 행복하다고 한다.

“대학 갈 이유 찾지 못해…제빵 창업 꿈꿔”
-입단 3개월 차 박제헌(19) 군

“내 꿈은 제빵사, 제과기능사인데 그건 학원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간을 갖고, 자신있게 대학을 거부했어요. 다들 그나마 살아가려면 최소한 대학졸업장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는데, 대학을 통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던데요.”

박제헌(20) 씨./권영란 기자

박제헌 군. 자신의 대학거부는 단지 대학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들은 대학에 안 갈 이유를 먼저 찾는다고 하는데, 제헌 군은 대학에 가야 할 이유를 먼저 찾아보았다고.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본래의 취지나 기능은 찾아볼 수 없고, 약간의 전문성을 키워주는 학원의 다른 이름으로 전락하지 않았나요? 대학은 기업이 원해서 만든 것이고, 하나의 사업체일 뿐이지요. 그게 한국사회의 현실인 것 같아요. 대학을 안 갈 때 가장 힘든 것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라 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시선을 극복하면 차이라는 것을 없앨 수 있어요.”

제헌은 수원이 고향이지만 아버지 직장을 따라 진주에 온지는 9년째이다. 산청 간디고등학교를 이번에 졸업했고 병역거부 문제를 두고 씨름하는 형이 있다.

중 1학년 말, 평소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가 마침 산청 간디학교를 알아보고 만족해하셨단다. 다행히 학교 성향이 부모님과 비슷했다고. 제헌은 연년생인 형이 먼저 다니는 걸 보고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대안학교에서는 대안적 삶을 사는 것을 끊임없이 찾게 해줘요. 대학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요. 각자의 선택에 맡길 뿐이지요.”

제헌은 군대 갈 때까지는 새노리에 있을 거라 한다. 얼마 전 신체검사 통지서 받았는데, 입영은 연기신청을 생각한단다. 제헌은 형만큼 병역 거부할 만 한 이유를 찾지 못해 좀 더 두고 생각해 볼 작정이다. 신체검사는 기간 내 받는 게 좋다고 주변에서 얘기했다고.

“형과 나는 아직 뚜렷한 신념이나 의식이 있는 건 아니예요. 그저 주워들은 게 많고, ‘입만 산 사람들’ 정도지요.”

하하, 제헌이 덧붙이는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제헌이 짐짓 가지고 있는 여유 같은 것이 엿보였다.

“나는 노래를 잘 듣지 않아요. 귀에서 왱왱거리는 것을 안 좋아해요. 노래 가사가 없거나 사회적 의미를 반영한 노래들은 그래도 들을 만해요. 지금 ‘수레악기’ 중 ‘두둥’과 ‘소동’을 배우고 있는데, 박자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렵지는 않고 충분히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제대 후 제헌의 목표는 창업이다. 제헌은 제과제빵 중에서도 제과에 더 집중한단다. 원래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정작 과자모양은 예쁘게 나오질 않는다고 잠시 안타까워했다. 집에서는 필기위주로 공부하고, 산청 간디학교 제과제빵실을 빌려 가끔 실기연습을 한단다. 제대 후엔 자격증을 따고, 베이커리나 호텔에서 5~6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창업할 거라고 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있어 함께 창업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권영란 기자

“제과제빵은 해외에서도 통하잖아요. 기본적으로 의식주에 들어가니까. 쌀로도 빵이나 과자를 만들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내 입에는 맞지 않아요. 맛이 없던 걸요.(하하) 입에 좋은 걸 만들든지 몸에 좋은 걸 만들든지 이것도 선택인 것 같아요.”

제헌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임용시험 언제든 가능…이건 지금만 가능”
-입단 3개월 차 송지윤(26) 씨

“초등학교 때 사물놀이 한 게 전부일 뿐, 대학 졸업 때까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송지윤(26) 씨./권영란 기자

지윤 씨의 첫마디이다. 지윤 씨는 진주가 고향이다. 경남대 일어교육학을 전공했고, 임용고시 1년 반 정도 준비했었다. 그러다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공부한다고 이 시기에 해야 할 모든 것을 놓치는 것 같았다. 좀 더 새로운 경험, 하고 싶은 것을 찾기로 했다. 임용고시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시험을 접고 “일단 임용은 연기하고,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고, 나를 계발할 수 있는 것을 찾겠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부모님은 큰 반대가 없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임용준비만 하고 있는 딸이, 딸의 청춘이 참 갑갑하셨을 것 같아요. 그러니 아이구 뭐라도 해봐라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지윤 씨는 얼마간 사회 생활을 해보자고 워크넷을 열심히 뒤져보았다. 하지만 올라와 있는 직종은 대부분 단순사무직이라, 자기 발전을 꾀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좀 더 움직이고 활동적인 뭔가가 당시 지윤 씨에게 필요했다고. 그러다가 노동자문화센터 새노리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걸 봤다. 대부분이 단순경리직과 제조분야인데, 고용분야 중 특이해서 눈에 띄었다. 솔깃했다. 그래서 지윤 씨는 주변 사람들한테 ‘새노리’에 대해 물어봤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지윤 씨의 부모님도 알고 계셨다. 부모님은 신부님과 성당을 통해서 새노리를 알고 있어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한다.

“졸업할 때까지 임용을 바라고 임용이 중심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포기하지 않았지요. 교사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거든요.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그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일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미루거나 놓칠 수는 없지요.”

./권영란 기자

지윤 씨는 자신이 다루는 악기로 이제 조금 음을 타고 박자를 느낄 수 있게 됐다. 지윤 씨가 지금 내가 배우는 악기는 ‘은몽’이라는 거다. 처음엔 무슨 이런 악기가 있나 싶고 정말 어색했다 한다. ‘은몽’은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 조금 괴상하다 싶은 모양이지만, 은빛 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맑고 청아한 음을 내는 큰 실로폰 같은 거다.

“이곳 ‘새노리’에서 내가 악기를 배워 공연한다는 것도 멋진 일이고, 동생들과는 달리 다른 사무능력을 보탤 수 있어, 그것도 멋진 일이라 여겨요. 다행히도 내가 쓸모가 있네요.”

“고3 인턴십 기간…고졸 검정고시 준비중”
-2개월 차 한은비(18) 양

은비는 경기도 수원이 집이다. 충북 제천 간디고 3학년인데 지금은 인턴십 기간이다. 동생 때문에 대안학교를 찾던 부모님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곳이 제천 간디학교이다. 그때까지 동생과 은비에게 딱히 바라던 게 없으셨던 부모님이 간디학교 진학만은 끝까지 권유하고 주장했단다.

한은비(18) 양./권영란 기자

“수년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해, 이제는 아무 데나 갖다놓아도 그런가보다 하고 잘 적응하고 살아요. 이곳 진주로 오는 것도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고, 음, 아무런 문제없어요.”

은비는 제천 간디고 학부모로 진주에 계시는 분의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단다. 은비가 있는 곳이 짐작되는 곳이라, 무섭고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는데, 은비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혼자 있지만 딱히 문제 되는 게 별로 없다고.

은비는 아직은 어떤 계획도 없다고 했다. 제천 간디학교는 중·고 통합과정이고 비인가학교이다. 은비는 검정고시 2년 준비해서 대학을 갈까도 생각하지만 굳이 대학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두고 볼 생각이라고.

“대학을 간다면 음대에 가야지요. 지금도 피아노, 기타는 다룰 수 있고, 작곡을 하고 있으니까요.”

은비에게,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수레악기’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수레악기’는 PVC, 나무, 자동차 휠 등 폐자재로 만들어진 악기인데요, 악기 무게가 10㎏정도돼요. 두 바퀴가 달린 수레위에 악기를 붙여놓았는데, 공연 때마다 연주자가 굵은 허리띠를 자기 허리에 매어 끌고 다녀야 해요. 폼은 좀 안 나지요(하하).”

./권영란 기자

그러고도 다섯 가지로 구성된 ‘수레악기’에 대한 은비의 설명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두둥’은 생긴 그대로, 말 그대로 두둥거리는 소리를 내고요, ‘소동’은 길이가 다른 PVC 울림을 통해 소리를 내는데, 소리동굴이라는 뜻이에요. ‘감돌’은 자동차 휠 3개로 만들었는데 소리가 감돌아간다는 데서 붙여진 거래요. 또 ‘고몽’은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실로폰 같은 건데, 제가 맡아 배우고 있는 악기예요. 마지막으로 ‘은몽’은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 맑은 음을 내요. 지윤 언니가 맡은 악기예요.”

은비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해 했다. 사진찍기를 수줍어하던 은비도 자신이 맡은 ‘고몽’을 연주할 때는 자연스러웠고 당당했다.

마지막으로 은비에게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같이 다니다보니까,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환상도 없어요. 억울해요. 그래도 나중에 연애는 해야지요.”

막내 은비가 툭, 툭 던지는 말에 지윤도 제헌도 모두 와글와글 웃고 만다.

./권영란 기자

이들은 법정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 하고, 돈도 받는다’고 행복해 하는 청년들이다. 노동자문화센터 새노리가 자리잡고 있는 진주시 동돌개비 골짜기. 마을아래서부터 진달래 꽃망울이 차례로 터지고 있었다. 아, 봄이다.

./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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