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서후의 컬러풀 아프리카 7편

저녁이다. 노을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 이 바위산은 얼마나 오랜 세월 이 바람을 맞아 이렇게 부드러울까. 바위산 곳곳에 물이 고였다가 흐른 흔적이 있다. 우기가 되면 빗물이 이곳을 따라 바위 아래로 흘러내린다. 얼마나 오랜 세월 빗물을 흘려야 이런 물길이 생길까. 얼마나 같은 고통을 반복해야 내 상처도 이렇게 자연스러워질까. 바위산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스피치코프. 스피치코프. 노을이 짙어진다.

돌을 파는 사람들

6명이 떠나고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 이렇게 13명이 여행을 계속한다. 오전 10시 숙소를 출발. 안녕, 즐거웠어, 휴양도시 스와콥문드!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곧 사막이다. 쌀쌀한 밤이 지나고 쬐는 아침 햇살은 역시 달콤하다. 아프리카의 이 겨울 아침을 난 사랑한다. 어느새 우리 옆에 나타난 기차, 언제부터 따라왔을까. 우리는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달린다. 모래뿐인 사막에서 건초지대로 들어섰다. 우리는 스피치코프라는 곳으로 가고 있다.

오전 11시 20분. 트럭이 멈춘 곳은 난데없는 노점상들 앞. 노점은 작대기와 넝마로 만들어졌다. 각자 널따란 판자 온갖 모양과 색깔을 한 돌들을 팔고 있다. 한눈에 봐도 가난한 이들. 돌을 파는 이들은 모두 여성들이다. 나이도 그리 많이 않아 보인다. 여성들 옆에는 하나같이 아이들이 둘 셋 달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돌은 살 생각이 없으니, 아이들을 모아 사진을 찍고 놀았다.

돌파는 노점들./이서후
돌파는 노점의 수줍은 아이./이서후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유독 부끄럼을 많이 타는 여자 아이다. 6살을 됐을까. 사진을 찍자니까 엄마 치마를 잡고 눈치만 본다. 저 선하고 큰, 윤기 가득한 눈망울. 가만히 웃고 서 있으니 조금씩 다가오는 아이.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볼을 맞댄다. 순간, 마음이 온통 녹아내린다. 눈물겹도록 따뜻한 살갗이다. 나는 비로소 아프리카와 연결되었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12시 30분 스피치코프(Spitzkoppe) 도착. ‘코프’는 높고 뾰족한 바위를 말한다. 그러니까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그대로 산이다. 그런 덩어리가 크게 하나, 둘, 셋, 넷. 모두 7억 년이 넘었단다. 이젠 이런 숫자에는 감흥이 없다. 어차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대지가 지구만큼이나 오랜 것이므로. 주봉 높이는 최고 700m 정도. 그런데 해발로 치면 1800m 가까이 된다. 그래서 나미비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스피치코프 야영장./이서후
스피치코프./이서후
스피치코프./이서후

거대한 화강암 바위산 아래 드문드문 텐트를 친다. 사진가로서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신 론 아저씨는 이곳이 미국 유타주와 아주 비슷하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마치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다. 점심을 먹은 우리는 근처 암각화를 보러 나선다. 가는 길에 만난 긴 개미 행렬. 얼마나 다녔는지, 땅 위에 제법 선명하게 개미들만의 통로가 생겼다.

아프리카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주 사람 키보다 큰 개미집을 만난다. 놀라운 건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겨우 전체의 20% 정도라는 사실이다. 샤드웰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 이 개미집 아무 곳이나 뜯어내면 제일 먼저 병사개미가 나와 싸울 준비를 한다. 그동안 일개미들이 빨리 수리를 한다. 병사개미가 밖에 있더라도 그냥 입구를 막아버린단다. 안타깝게도 병사개미는 밖에서 그냥 죽는다.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에 도착. 초라한 간판에다 엉성한 울타리. 바위 평평한 면에 붉은색 그림이 있다. 무언가 동물을 그린 것 같다. 사냥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이 전부 붉은색인 건 동물의 피로 그린 까닭이다. 사실 벽화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보단 주위 풍경에 눈을 돌린다. 이곳이 나미비아 산 부족의 신성한 장소여서 그런가, 문득 수풀을 헤치는 산 부족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피치코프 암각화./이서후

암각화를 보고 다들 쉬는 시간 조용히 바위산을 오른다. 그냥 바위뿐이라 오르기가 차라리 쉽다. 해가 질듯해 정상까지 가다 말고 너른 바위에 자리를 잡고 책상다리를 한다. 노을이 지고 있다. 명암이 짙어지면서 바위는 더 붉어지고 메마른 풀은 갈색으로 빛난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속에 초원이 더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모두 모닥불에 둘러앉아 저녁을 기다린다. 샤드웰이 사람 팔 길이만 한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모닥불에 굽고 있다. 가만 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원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녁을 먹고 나니 완전하고 막막한 어둠. 전기도 샤워 시설도 없는 곳이라 딱히 할 일이 없다. 모닥불이야말로 오늘 밤 어쩌면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따뜻함 일 것이다.

힘바 마을 인근 야영장./이서후

힘바 마을 가는 길

다음날 새벽 6시. 혼자 일어나 다시 바위산을 오른다. 해는 아직 보이진 않지만, 날은 밝아 주위가 훤하다. 스피치코프 주봉에 서서히 햇살이 드리운다. 책상다리를 하고 잠시 너를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 영하로 떨어진 추운 밤을 지나고도 어떤 나무 아래, 어떤 수풀 속은 여전히 따뜻하다! 짐승들은 이런 곳에서 잠을 자겠구나.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긴 우리는 다시 트럭에 올라타고 길을 나선다. 이제 나미비아 전통 부족, 힘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가는 길에 도로 한옆에 나타난 노점상. 진열장에는 아프리카 전통 복장을 한 인형이 가득하다. 중년의 덩치 큰 아낙과 남자 아이가 달린 젊은 새댁이 물건을 팔고 있다.

치장을 하는 힘바 여인네들./이서후

아낙이 입은 옷은 헤레루 부족 전통 복장이라고 한다. 새댁은 상반신을 다 드러내고 허리에만 헝겊을 둘렀다. 우리가 오늘 찾아갈 힘바 부족의 전통 복장이다. 아이는 두 살인데 이름은 발라카. 친구도 없이 혼자 논다. 새댁은 검은색 손가방을 어깨에 맵시 있게 맸다. 그리고 애니콜 로고가 선명한 삼성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그 모양이 옷차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 새댁의 태도 때문이다. 마치 자신은 도시에 사는 사람인데 물건들을 팔려고 이런 복장을 하고 있다는 듯한 그 태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숲 속 공터다. 근처에 힘바 부족이 산다는 마을이 있단다. 스피치코프에서처럼 이곳이 캠프장이라는 아무 표시도 없다. 그저 2.5m 정도 되는 바위를 중심에 둔 공터. 허술해 보이는 간이 샤워장이 전부다. 바위 위에 올라보니 높이가 2m 정도 되는 나무들이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다. 360도 한 바퀴를 돌아도 풍경은 똑같다. 나무들은 물이 부족해 푸석해 보인다. 나무들은 푸른 혹은 노란 아니면 갈색의 잎을 달고 있다.

점심을 먹고 근처를 둘러본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게 하는 더위다. 평평한 나무 그늘을 찾아 가만히 눕는다. 낯선 숲 속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고 나니 스스로 잠이 온다. 저 멀리서 자동차가 자갈길을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아니, 바람 소리인가. 곧 눈앞의 나무가 흔들린다. 바람은 얼굴을 지나 귀를 스치면서 쏴~ 소리를 내고는 다시 자갈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내며 저쪽으로 사라진다.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도마뱀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힘바부족 아이들./이서후

옥구헵바, 힘바

힘바 마을은 매년 2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아니 더럽힌다고 한다. 해가 약간 약해진 오후 베르나라는 이름의 청년 안내자를 따라 드디어 힘바 마을로 간다. 사실 이 마을은 보육원 같은 곳이다. 마을에는 29명의 아이, 20여 명의 여성, 5~7명의 남성이 산다. 힘바 부족은 자기 자식 남의 자식 구분하지 않고 함께 기른다. 그러니 보육원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부족민을 만나기 전에 힘바부족의 인사법을 배운다. 먼저 악수를 하면서 ‘마로’, 악수한 손을 팔씨름하듯 올려 잡으며 ‘페리비’, 다시 악수하며 ‘나와’라고 해야 한단다. 사진을 찍게 되면 양해를 구하고 찍고 나면 꼭 ‘옥구헵바’라고 해야 한다. 고맙다는 뜻이다.

마을로 들어서니 붉은 피부의 여인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모여 머리를 땋고 있다. 목과 팔다리에 장신구가 주렁주렁하다. 한눈에 봐도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는 부족으로 알려졌음 직하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조금 역한 기름 냄새가 난다. 평생 목욕이란 걸 하지 않는단다. 대신 동물기름과 물감을 섞어 만든 것을 온몸에 바른다. 그들의 피부가 붉은 이유다.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우리가 신기하기보다는 재밌다는 표정들이다. 힘바 여인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한 여인에게 다가간다.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경험이 많은 듯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안내자가 우리는 한 집으로 불러들인다. 벽과 지붕뿐인 집이다. 어른 세 명 정도가 누우면 꼭 들어찰 것 같다. 바닥은 그냥 흙이다. 잠도 흙바닥에 그냥 누워 잔다. 없는 살림에도 장신구들이 꽤 진열돼 있다.

힘바 마을 아이들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벌떼처럼 모여든다.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귀엽다. 너도나도 안아달라고 난리다. 그 중 사내아이를 하나 덥석 안아 든다. 제법 안고 다니다가 무거워서 내려놓으려는데, 이 녀석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덜렁 떼어내어 내려놓으려 하면 다리를 최대한 들어 올려 땅에 닿지 않으려 한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머리 모양이 다르다. 여자 아이는 하나같이 앞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내렸다.

유독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머리를 길게 기르고 머리띠도 했다. 이름을 물으니 우논단도(12)라 대답한다. 우논단도는 학교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를 할 줄 안다. 그 아이에게 선물로 가져간 볼펜을 한 자루 준다. 똘똘한 눈으로 수줍게 미소 짓는 아이.

관광객에게 장신구를 파는 힘바 주민들./이서후

힘바 마을에 오면 주려고 한국에서 일부러 사무용 볼펜을 한 통 사갔었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다. 볼펜은 금방 동났다. 두 자루나 받아간 녀석도 있다. 그 아이는 그래도 욕심이 남았는지 자꾸만 쫓아다니며 볼펜을 더 달란다. 야, 인마! 이제 없다고! 안 보여? 그래도 다시 손을 내미는 아이. 그 아이의 손에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받은 선물이 들여 있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려는데 여인들이 마을 입구에 둥글게 모여 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그들이 쓰는 장신구를 늘어놓았다. 관광객들에게 파는 거다. 일행 몇 명이 물건을 산다. 어쩐지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부족. 며칠에 한 번씩은 관광객이 힘바 마을로 몰려온다.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은 온갖 병을 몰고 온다. 자연 그대로의 힘바 부족은 앙골라 남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한다. 돌아오는 길, 입맛이 쓰다.

저녁은 샤드웰이 만든 아프리카 전통 음식. 뭔가 쌀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샤드웰을 따라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원래 그렇게 먹는 거란다. 아까부터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주위를 어슬렁댄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후다닥 달려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고양이. 고개를 드니 초원에 노을이 진다.

밤이 깊어간다. 별빛이 다가온다. 네가 그립다. 굿나잇.

사바나의 노을./이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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