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18) 돝섬

30년 만이다. 지나간 유행가가 달떴던 사춘기 시절로 날 데려가듯이 희미하다 못해 이젠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돝섬, 그곳에 가면 아무 걱정이 없던 그때, 철부지 아이로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렌다. 어린 시절 돝섬은 최고의 나들이 장소였다. 부모님이 돝섬에 놀러 가자고 하는 날은 소풍날만큼이나 들떴다.

"엄마랑 배도 타고 갈매기도 보고 예쁜 섬에 갈 거야"라는 말에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지는, 그때 딱 내 나이였을 아이를 데리고 바쁜 세월만큼이나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추억 여행을 떠났다.

마산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표를 끊었다. 배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10분 남짓 가는 거리이지만 앉아서 창 밖의 바다만 보고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인다. 하얀 거품으로 갈라지는 바닷길을 내려다보며 바닷바람을 맞았다. 바닷바람은 육지의 그것과 확실히 다르다. 바다 냄새가 기억을 깨운다. 물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마창대교가 한 장의 사진 같은 프레임을 뽐낸다.

어릴 땐 무서워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흔들다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흘렀다. 돝섬은 그동안 이리저리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고 혹독한 태풍도 몇 차례 온몸으로 받아냈을 것이다.

돼지의 옛말인 '돝'을 상징하듯 황금 돼지 상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다.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청량한 바닷바람, 그리고 온전한 바다 기운으로 생명력을 틔운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온전한 바다 기운으로 생명력을 틔운 나무와 꽃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

아카시아 향이 코를 간질인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랑 산에 오르며 맡았던 그 달콤한 향이다. 갑자기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뭐가 그리 바쁜지, 같이 등산 한 번 한 적이 없구나.

"예전에 이곳에서 서커스 공연을 보고 꼭 책받침을 샀는데…. 동물들도 다 온데간데없네. 여기가 돗자리 펴 놓고 김밥 먹었던 곳 같은데 이렇게 변했구나."

추억의 흔적은 여기저기 묻어 있다. 오랑우탄, 호랑이, 낙타, 앵무새 등 없는 동물이 없었는데 이젠 희귀 닭과 공작 등 몇몇 조류만이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전망대에도 올라 사방으로 뻗은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한껏 쉬어본다. 잠시 쉬었다가 돝섬 정상에 올랐다.

넓은 공원이다. 마산과 합포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색색의 꽃들이 기하학 무늬를 만들어내며 봄을 알리고 있다. 도심의 흔적도 없고, 예전만큼 북적이지도 않는 여유로움 속에서 아이와 덩그러니 온전히 자연을 즐기는 기분이 좋다. 파도소리와 새소리, 쏴 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들과 바람을 타고 날아온 아카시아 향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여유 있게 바다를 옆에 끼고 한 바퀴 돌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어릴 땐 무서워서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흔들다리로 성큼 발을 내디뎌 선착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배를 타기 전 한 번 더 돝섬을 바라본다. 이젠 걷기 좋은 섬으로 추억될 듯하다.

바다를 옆에 두고 걷기 좋은 산책로가 돝섬을 둘러싸고 있다.

 

돼지 섬, 돝섬

마산항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는 돝섬은 합포만 가운데 낮고 부드럽게 누운 섬으로 섬 전체가 해상유원지로 조성되어 있다. 가락국의 왕이 총애하던 미희라는 후궁이 사라지자 신하들이 찾아 나섰는데, 무학산 바위틈에 숨어 있어 환궁하기를 청하자 한 줄기 빛이 되어 섬으로 날아가니 섬의 모양이 돼지 누운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섬을 돼지의 옛말인 돝을 따와 '돝섬'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산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서 있는 황금 돼지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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