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에서 난 사고(부정경선 사태)는 민주적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위원장의 독선적 리더십으로 똘똘 뭉친 새누리당이 과연 민주적 절차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한겨레〉 성한용(전 편집국장) 정치부 선임기자가 지난 5월 3일자에 쓴 칼럼 '통합진보당 당당하게 거듭나야 한다'의 일부다. 이 판국에 다소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나꼼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른바 "쫄지마!"로 유명한, 수백만 명이 청취한다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즐기는 프레임이었다. 정치인 등 '반가카'(반MB) 진영의 누군가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면 "문제는 너희가 더 많지! 너나 잘해!" 하는 식 말이다.

지난 4월 8일 서울광장에 모인 나꼼수 멤버들과 지지자들. /뉴시스

언젠가부터 온라인공간 등에선 이 같은 목소리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총선 나꼼수 일원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막말 파문 때, 비난의 화살을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 조선·중앙·동아에 돌리라는 메시지는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최선두엔 리더 김어준이 있었다. 그는 "이번 선거는 김용민을 심판하는 선거가 아니라 '가카'를 심판하는 선거"임을 분명히 했다. "조중동은 현 정부에서 지난 4년간 잘못한 일들을 김용민 뒤에 모두 숨겨 놨다"며 후보 사퇴 거론 등은 '조중동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논지도 폈다.

'나꼼수 프레임'이라 불릴 만한 이런 식의 대응 논리는 그 파급력이 막강한 듯 보인다. 수백만 청취자에, 유수의 정치세력·진보언론까지 '감화'를 받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얼마 전 총선 결과는 이들에 좋지 않았다. 프레임 대결구도로만 보면, "조중동 프레임을 거부해야 한다"는 나꼼수 프레임에 충실하다가 결국 조중동 프레임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게 결판(야권 참패)난 꼴이었다.

'총수'는 그러나 지지자를 배신할 생각이 전혀 없다. 야권과 진보언론에만 비판을 던질 뿐 나꼼수 책임론은 털끝만큼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쫄지마!" "너나 잘해!"다.

물론 나꼼수에게도 나름의 명분이 있다. 김어준은 "우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 또 거기에 필요한 자원은 무엇인가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했다.

정권교체, 그리고 MB정권·새누리당과 조중동에 대한 승리. 인정해 보자. 총선은 뜻한 대로 안됐지만 대선에서는 나꼼수의 방식, 프레임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길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은?

가카만 물러나면 세상이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나꼼수가 추구하는 대로라면, '가카 이후' 세상은 자기반성이나 자아성찰은 '비겁하다'는 딱지가 붙는 세상이고 서로 이견이 있으면 상대의 책임만 집중적으로 물어뜯는 세상이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에서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거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이 과연 다수가 행복한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오로지' 상대를 이기고 밟고 종국엔 '절멸'시키는 데 내 모든 걸 던져야 하는 세상 말이다. 우리는 그런 식의 행태가 '진보' 안에서도 횡행할 수 있으며 그 결말이 어떠할 수 있는지 최근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비당권파 여러분, 당신들을 불행하게 만든 게 진정 가카와 조중동입니까?

※이번 주부터 각종 사회·문화 현상과 대중문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는 문화칼럼 '아주 문화적인 세상 읽기'를 매주 새로 연재합니다. 〈경남도민일보〉 고동우(문화체육부장) 기자와 맛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박상현 씨가 필자로 참여하며, 관련된 주제라면 기고글도 받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