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개선 ‘여가 소외’는 경계해야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법정근로시간은 주 48시간이었지만, 오늘 우리는 8시간이나 줄어든 주 40시간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줄어든 8시간은 단순히 480분이 아닌 ‘하루’를 뜻하고, 또 기존의 휴일과 겹쳐져 ‘연휴의 일상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연휴가 하루 짜리 휴일과 얼마나 다른지 잘 알고 있다. ‘하루’와 ‘이틀’의 차이는 ‘소극’과 ‘적극’의 차이임과 동시에 ‘소풍’과 ‘여행’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5일 근무제가 일차적으로 관광산업과 여가산업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가산업의 성장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소비시장을 키우면서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리라고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봐야 한다. 현재 우리의 여가활동 실태를 두 배로 확대해보면 그 결과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먼저 여가활동의 내용을 살펴보자. ‘2000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일과 주말 모두 현재 ‘TV시청’이 수위를 달리고 있고(평일 20.3%.주말 17.0%), ‘집에서 쉬기’가 그 뒤를 잇고 있다(평일 13.8%.주말 13.5%). 이에 비해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될 경우 희망하는 여가활동은 주말의 경우 생활체육과 산책(22.7%), 여행(21.5%), 그리고 등산과 낚시 등(10.2%)이 압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같은 조사에서 여가활동을 제한하는 요소를 물어본 결과 평일은 시간부족(50.9%), 경제적 부담(33.3%) 순인 반면, 주말은 경제적 부담(41.0%), 시간부족(28.1%)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늘어날수록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이 결과를 놓고 추론한다면, 모르긴 해도 주5일 근무제로 인해 여가활동의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그 결과 새로운 ‘여가소외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소외는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에 교육주체들과 문화주체들의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먼저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계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접근성이란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교통 등 물리적인 접근성뿐만 아니라 시간적 여유.경제력.정보력 등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프랑스는 1936년에 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문화의 대중화’를 첫째되는 정책목표로 내세웠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인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루브르 박물관의 야간개장과 함께 노조회원에 한한 입장료 인하 정책을 실현시킨 것이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인 문제가 문화활동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중.단기적인 가격인하제도를 도입해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체육활동과 달리 문화활동은 최소한의 학습을 필요로 한다는 측면에서 교육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교육(혹은 평생교육)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지 않으면, 사회교육은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문화교육이 아니라 부수입을 마련하기 위한 또 다른 직업교육(혹은 부업교육)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무시당하는 예술교육으로 인해 지금의 청소년들은 문화에 무능한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다. 더구나 현행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틀간 연휴는 사교육 열풍을 더욱 부추길 것이고, 그 결과 공교육이 벼랑끝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삶의 질은 물론 교육의 질마저 악화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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