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52) 흑싸리를 찾아서

화투 4월 흑싸리를 손에 잡을 때 어떻게 잡아야 맞는 그림일까요? 싸리는 하늘 보고 위로 자라니까 위로 오도록 잡는데 새가 있는 화투짝은 싸리나무의 이파리 방향이 반대가 됩니다. 그렇다고 싸리가 하늘을 보도록 잡으면 새가 뒤집어져 거꾸로 날게 됩니다. 왜 이런 걸까요? 흑싸리와 새그림은 왜 이렇게 방향이 맞지 않을까요?

〈흑싸리 원형을 찾아서〉

흑싸리가 맞는다면 새 그림이 이렇게 뒤집어지진 않을 텐데 이 식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어찌 보면 아까시나무(아카시아의 바른말) 이파리를 닮은듯한데 참 아리송하네요. 그 원형을 찾아 일본 화투짝을 찾아봅니다. 일본 화투 원본을 보면 흑싸리가 아니라 초록 잎에 보라색 꽃이 달려있습니다. 그것도 거꾸로 땅을 향해 처진 그림입니다.

우리나라 흑싸리 화투패.

〈등나무와 흑싸리〉

바로 등나무가 4월 흑싸리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그러면 왜 일본 등나무가 한국에서는 흑싸리로 변신을 한 것일까요? 싸리도 아니고 아까시나무도 아닌 등나무가 화투짝 4월의 진짜 주인공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에서는 등나무에 두견이가 그려진 화투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흑싸리와 비둘기로 바뀝니다. 갈등(葛藤)의 등나무와 불운의 두견새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흑싸리와 비둘기로 바뀌게 되죠.

흑싸리방향에 맞춰 보면 새 모양이 뒤집힌다.

〈비둘기와 두견이〉

우리나라 화투에서는 비둘기인데 일본 화투에서는 두견이가 정답입니다. 두견이는 귀촉도(歸蜀道), 자규(子規), 두견(杜鵑), 망제(望帝), 불여귀(不如歸)라 부르죠. 생긴 것은 뻐꾸기와 똑 같이 닮아서 영어로 Little Cuckoo(작은 뻐꾸기)랍니다. 두견이와 뻐꾸기가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울음 소리가 '쪽박 바꿔죠'로 들리는데 주로 5음절로 울고 '홀딱 자빠졌네'하고 6음절로 울기도 합니다.

중국 촉나라 망제가 왕위를 잃고 죽어 봄마다 슬피 우니 두견이는 불행과 슬픔의 새가 되어 한 마디로 재수 없는 새가 되죠. 그래서 재수 없고 슬픈 두견이보다는 평화의 새 비둘기가 한국화투에 그려졌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흑싸리는 화투 점에서 재수 없는 패가 됩니다.

비둘기와 두견이 그림.
우리나라 화투의 원조 격인 일본 화투. 여기에 그려진 것은 등나무와 두견새다. 이로 미뤄보면 일본 화투 속 그림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변형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갈등 등나무〉

일이 얽혀서 풀기 어려울 때 갈등(葛藤)이란 말을 씁니다. 갈은 칡을 말하고 등은 등나무를 말합니다.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죠.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서로 먼저 감아 올라가려 하기 때문에 일이 얽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비들은 등나무를 그리 좋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는 등나무 축제도 있고 수많은 문학작품과 옛 그림에 등나무가 등장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등나무 문화가 있긴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화투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등나무가 싸리로 변신을 합니다.

등나무나 칡넝쿨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삶이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방통행은 스토커 수준이죠.

등나무는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지만, 정작 그 나무는 등나무에게 기둥만 되어 주고 자긴 죽고 마는 거죠.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무 등나무는 자기에게 기둥이 되어준 멘토 나무를 목 졸라 죽여 버리는 나무가 되고 맙니다.

우리 삶에도 등나무처럼 향기도 있고 꽃도 예쁘지만 꼭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있는 듯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나 서열과 성과 중심의 1등 문화가 사람을 자꾸 등나무나 칡넝쿨처럼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됩니다.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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