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김혜지(31)·한승훈(33) 부부

'인연'이라고 해도 좋고,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도 좋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 짝을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조건이 맞아떨어졌는지,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애매하기에 그런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인연', '운명' 같은 표현은 최소한 상대에게서 흠이 보이지 않을 때나 떠올릴 말일 것이다.

그런데 김혜지(31) 씨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만나자마자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니….

"1년 전에 아는 동생과 동생 남편과 만난 자리가 있었어요. 15분 정도 얘기했는데, 그 남편분이 제 인상이 좋았는지 정말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키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 좋고, 직장 좋고….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혜지 씨가 궁금한 것은 한 가지였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솔로일까? 돌아온 답은 '사람이 매우 좋아서'였다. 혜지 씨는 일단 연락처를 받아놓았다.

"창원 상남동에서 기다렸어요. 처음 만나니까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만나는데, 누군가 멀리서 전화기를 들고 오잖아요. 당연히 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점점 다가오는 거예요."

   
 

아는 동생 남편이 풀어놓은 친구 자랑은 순전히 주장이었다. 거짓말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지닌 매력 덕에 다른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주관적으로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 객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친구 한 명쯤 있지 않은가. 어쨌든 혜지 씨는 아직 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한승훈(33) 씨와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냥 맥주나 한 잔 하고 빨리 헤어지려고 했어요. 제 취향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우스운 게 보자마자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사람은 마음에 안 드는데, 결혼할 사람 같다는 느낌. 이상하잖아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혜지 씨는 자신은 물론 어른들도 결혼 상대자는 당연히 교회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연 결혼할 사람이 맞는가 싶어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면 이 사람을 피하기는 너무 쉬웠다. 그런데 한승훈 씨는 기독교인이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 남자, 구색이 맞기 시작했다.

"첫 만남 이후 6개월 동안 승훈 씨가 계속 잘해줬어요. 사람이 참 좋고 배려도 많이 해주거든요. 그런데 제가 못되게 많이 굴었어요. 상처도 많이 줬고요. 나중에는 감당이 되지 않았는지 승훈 씨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렇게 헤어졌지요."

사람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좋았다. 처음 만나자마자 '결혼할 사람'이라는 느낌도 강렬했다. 다만, 취향이 좀 아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취향은 결국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즈음 꿈을 꿨다.

"예배당에서 오빠가 기도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는 꿈을 꿨어요. 너무 애처로워 보였지요. 고개를 돌리는데 도망갔어요. 많이 울었나 봐요. 잠에서 깨니 눈물을 많이 흘렸더라고요.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떠난 사람 마음을 다시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승훈 씨는 혜지 씨가 만나자고 해도 애써 피했다. 하루는 일 때문에 서울에 다녀온 혜지 씨는 창원역에서 기다릴 테니 나오라고 했다. 끝까지 기다리겠다며…. 승훈 씨는 나갈 일 없을 테니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혜지 씨는 5시간을 기다렸다.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모습을 드러내야 했지만, 승훈 씨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오빠 집 앞에서 억지로 만났어요. 그래도 서로 얼굴을 보니까 많은 게 풀리더라고요. 오빠도 괜히 마음 약해질까 봐 계속 피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처음 만난 지 8개월 만에 둘은 서로 인정(?)하는 연인이 됐다. 승훈 씨 친구가 주장했던 거짓말 같은 매력은 그때부터 혜지 씨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연인은 실제 연애 기간 3~4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옆에서 오빠가 뒷바라지를 많이 해줬어요. 그때 결혼을 더 생각하게 됐지요. 게다가 오빠가 얼떨결에 집안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온 것 같아요."

승훈 씨가 6개월 동안 겪었던 수난(?)은 다시 6개월 남짓 혜지 씨가 겪고 있다. 물론, 혜지 씨 주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관계는 나중에 여성이 새 생명을 품는 순간 역전되는 게 다반사다.

"오빠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주변에 사람도 많고요. 사람들을 좋아하는 만큼 가족에게도 그 사랑을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부분은 흠잡을 게 없네요."

한승훈·김혜지 씨 부부는 오는 19일 결혼한다. 신혼집은 창원시 진해구 석동에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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