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생명 나고 지는 늪의 하루를 따라서

마을과 늪 안은 말 그대로 오리무중의 안개천국이다. 우포늪의 4월은 물안개로 새벽을 연다. 지금 잉어들을 비롯한 뭇 생명들이 늪 안의 수초주변에서 요동치며 산란을 준비한다. 후투티와 장끼의 울음소리가 마을 안에 울려 퍼지고 새벽에는 호랑지빠귀도 씨익 씨익 소리를 내며 마을의 새벽을 깨운다. 미루나무를 품은 물안개도, 뽕나무 가지에 걸린 아침 해도 자연의 순리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빛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물안개 자욱한 계절에는 모두 안개가 걷혀야 각자의 아름다운 빛깔을 나타낼 수 있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자리에서 무지개 빛깔을 낼 때 아름답지 않을까. 오늘도 모니터링을 위해 길을 나선다. 마을에서부터 늪까지는 10분 거리이다. 길을 잡으면 먼저 곳곳에서 개구리 울음소리와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철새들을 만난다. 큰기러기와 노랑부리저어새가 공존하도록 넉넉하게 품어주는 늪이 고맙다.

우포늪. /이인식

간혹 한낮에도 나타나는 고라니의 모습도 이채롭고 잉어들을 비롯한 뭇 생명들이 산란에 모든 에너지를 모아내는 봄철이다. 목포 늪의 고방오리 무리와 쪽지 벌의 청머리오리 무리들, 우포를 비롯한 곳곳에서 보이는 넓적부리오리들의 마지막 먹이활동이 끝나면 여름철새들의 보금자리와 곧 자리를 바꿀 것이다. 지금 늪은 연초록빛의 잎들로 눈부시다. 왕버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새순을 틔우고 있는 다시 일어서는 풍성한 봄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 속을 따라 걸으며 곳곳에서 자연으로 돌아간 주검들을 만난다. 늪 안에서 무수히 태어나고 사라지는 생명들을 보며, 그들도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는 햇살 따뜻한 시간이다.

지난 겨울철에는 추위와 먹이경쟁에서 낙오된 너구리 한 마리가 물억새 숲에 누워있기도 하고, 고라니도 여러 마리 추위에 견디지 못해 죽은 사체들을 보았다. 너구리와 삵에게 살점을 내어 주고 순한 눈만 남아있어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큰고니와 큰기러기들도 얼어 죽으면 어김없이 하늘에는 자연의 청소부인 독수리가 날면서 죽은 먹이를 노린다. 나도 잠시 자연 안에서 먼저 떠나간 뭇 생명들을 생각하며 잠시 살아있는 육신을 슬그머니 큰 나무 속에 넣어본다.

아침 모니터링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96세 된 이웃 집 할머니가 자연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을회관을 오가며 간혹 우리 집 마당에서 때로는 담벼락 댓돌에서 소벌(우포늪)에 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분이셨다.

오후에는 물에 잠긴 나무들을 살피면서 길을 나선다. 버드나무는 물속에 잠겨도 뿌리를 내린 흙 안에 물을 저장하고, 오염물질들을 영양분으로 활용하여 성장에 이용한다. 물고기의 산란장이 되고 뭇 생명들을 나무둥지에 집을 짓게 한다. 이산화탄소도 흡수하며 기후변화조절에도 기여한다. 봄에는 무성한 새순을 피우면서 새들에게 보약을 제공하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은 나무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물억새나 갈대숲에서 살아간다. 평소에는 갈대숲과 덤불사이로 빠르고 분주하게 움직여서 관찰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러나 봄이 되면 어김없이 버드나무 위에서 새순과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살기 때문에 생태를 관찰하기 쉽다.

해질 무렵에 큰오색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가 선버들로 날아든다. 이들은 그 곳에 둥지를 만들기도 하고, 벌레잡이를 하면서 하루해를 마감한다. 나도 저녁 식사를 위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시간이다.

/이인식(우포늪 따오기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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