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34) 거제 고현동주민센터 고현주 주무관

"연극은 나를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합니다."

천생 이웃집 아줌마인 고현주(42) 씨. 거제시 고현동 주민센터 민원창구를 지키며 시민들의 아쉬운 점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거제 유일의 극단 '예도' 배우다.

현주 씨는 연기인생 20년 만인 지난 4월 5일 경남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았다. 그녀는 〈선녀씨 이야기〉란 작품에서 '늙은 선녀'로 열연했다. 제대로 연극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녀가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연극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그녀의 연기 인생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시절 걸스카우트 학교연합회에서 단막극을 하게 되면서 막연하게 "나도 제대로 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연극영화과는 자신과는 멀다고 느껴 가슴속에 품고만 있었다.

   
 

거제대학 1학년이던 1990년 가을. 한 교수의 소개로 지역신문 기자와 알게 됐다. 그 기자가 거제도에 극단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이듬해 극단 '예도' 창단 공연 〈일요일의 불청객〉에 단역으로 참여한 것이 연기자로서 첫 공연이었다.

1992년 7월 공무원이 되면서 연극을 계속하는 것을 두고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졌다. 공무원이 '딴따라'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들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 연습에 매진했다. 거제시청 회계과에 근무할 때는 직원 한 명이 감사관으로 빠져나가면서 일손이 부족한 가운데서 저녁 공연 연습을 위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일을 하기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가 술을 한 잔 걸치고 공연 연습을 하는 극단에 찾아와 포스터를 찢으면서 연극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연극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라며 많은 고민을 했지만 오랜 꿈인 배우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무대에서 언챙이 곡마단, 광인들의 축제, 등신과 머저리, 작은 할매, 달빛 속으로 가다, 배비장전 등에서 그녀만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렇게 연기에 한창 물이 오를 무렵인 2002년 그녀는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에도 연극을 떠나지 않았던 현주 씨도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연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12월 배비장전 공연을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그렇게 셋째 아이까지 키우며 10년을 공무원과 주부로만 보냈다.

그러다 2011년 그녀의 깊은 가슴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 그 순간 연극이 떠올랐다. 연극은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고 유일하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해 12월 〈블루 아일랜드-거제도〉 공연으로 무대에 돌아왔고 지난 4월 〈선녀씨 이야기〉로 경남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았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열심히 땀 흘린 결과였다. 너무나 하고 싶은, 꼭 해야만 하는 절실함을 무대에서 연기로 그대로 보여준 결과이기도 했다.

그녀는 "연극은 오직 고현주 개인으로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연극을 정의한다. 현주 씨는 "연극을 하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을 살아본다는 것에 큰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하고 무대를 내려올 때 느끼는 수많은 감정과 관객들과의 감응은 힘든 연습과정도 일상생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기를 통해 나의 인생은 물론 부모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연극에서 참 인생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대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혼을 하고 연극을 쉬게 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힘의 원천이란다. 그리고 늘 미안하고 고맙단다.

그녀는 "문화예술은 언제나 아웃사이더다. 저변확대는 고사하고 그나마 시에서 지원하는 지원금마저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거제에 연극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거제시의 지원이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연극"이라는 그녀는 "연극을 통해 문화와 행정을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잘 알릴 수 있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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